2024년 12월 26일 목요일  
로동신문
미더운 당초급선전일군들

2023.9.23. 《로동신문》 3면



《붉은기》와 기수

단천청년기관차대 운전대대 1중대 1소대 오은철동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선전원, 선동원들은 뒤떨어진 사람,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더 왼심을 써야 합니다.》

얼마전 모범선동원의 영예를 지닌 오은철동무에게는 남다른 긍지가 있다.

《붉은기》1호전기기관차소대의 선동원이라는것이다.

10년전 당조직의 믿음에 의해 운전대대의 기준소대인 1중대 1소대 선동원으로 임명된 오은철동무는 크나큰 영예감과 함께 막중한 중압감도 느끼였다.우리 나라 철도운수부문의 본보기기관차로서의 영예를 계속 빛내이는가 그렇지 못한가 하는것이 바로 선동원의 역할에 달려있기때문이였다.

(우리 《붉은기》1호전기기관차가 두줄기 궤도우에 휘날리는 영원한 붉은 기발이 되게 하자.그러자면 소대에 한명의 락오자도 있어서는 안된다.)

이렇게 결심한 그는 뒤떨어진 사람, 힘들어하는 사람들과의 사업에 각별한 힘을 기울였다.

소대에는 일찌기 아버지를 여읜 기관조사가 있었다.성격이 이지러진 그는 어머니의 말도 잘 듣지 않고 일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일부 사람들은 《붉은기》1호에 그런 사람을 둘수 없다면서 내보내자고 하였지만 오은철동무는 찬성할수 없었다.진심만이 그의 마음을 움직일수 있다고 생각한 오은철동무는 그와 한승무조가 되여 늘 곁에 끼고다니면서 여러모로 마음을 썼다.소대의 초급일군들과 토론하여 기관조사의 결혼식을 집단이 달라붙어 치르어주었으며 집수리도 해주면서 진정을 기울였다.자그마한 소행도 소개하면서 소대앞에 내세워주었다.집단의 믿음과 사랑속에 그는 혁신자로, 청년동맹초급일군으로, 어엿한 기관사로 성장하였으며 당에서 청년들을 서포지구 새 거리건설장으로 부를 때에는 제일먼저 탄원하였다.

그 기관사만이 아니다.합숙생활에서 애로되는것이 있을세라 늘 왼심을 쓰고 명절과 휴식일은 물론 집에 별식이 생겨도 찾군 하는 친형같은 선동원의 정에 이끌려 김동무 역시 몰라보게 성장하였다.집단보다 자기를 먼저 생각하던 그가 소대앞에 철길고착품과제가 제기되자 수십리 밤길을 걸어 해결해오는 미풍의 소유자로, 혁신자로 자라나기까지 선동원이 바쳐온 진정을 어찌 한두마디로 다 이야기할수 있으랴.

붉은기가 세차게 나붓기자면 기수가 내달려야 한다.뜨거운 인정미로 소대원모두를 억세게 키워가는 선동원의 진정이 있어 오늘 《붉은기》1호전기기관차는 두줄기 궤도우에 휘날리는 붉은 기발로 자기의 고귀한 영예를 빛내이고있는것이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김향란

 

내가 설 자리

강서구역 청산농장 농산제11작업반 2분조 김영순동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당의 목소리를 전하는 초급선전일군들은 언행이 일치하고 이신작칙하여야 합니다.》

김영순동무는 늘 어려운 모퉁이에 자기가 설 자리를 정하고 앞장에서 헌신하는것을 선동원으로서의 응당한 본분으로 여기고있다.

올해 봄철에 있은 일을 놓고도 그에 대해 잘 알수 있다.

벼모판씨뿌리기를 앞두고 준비작업을 진행하던 분조원들앞에는 긴급정황이 조성되였다.다음날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전해졌던것이다.

씨뿌리기를 성과적으로 보장하자면 준비작업을 그날중으로 무조건 끝내야 한다는것이 명백해진 이상 누구나 두몫, 세몫을 해제껴야 했다.

아름찬 일감앞에서 분조원들이 손맥을 놓고있을 때 김영순동무는 언제나 그러했듯이 자기가 설 자리를 스스로 찾았다.

그것은 바로 제일 힘든 모판재료운반이였다.설상가상으로 포전가까이에 운반수단을 대기가 힘든것으로 하여 모판재료를 어차피 등짐으로 날라야 했다.김영순동무는 분조원들의 앞장에서 마대를 메고 달렸다.

작업반장, 당세포비서, 선동원을 비롯한 초급일군들은 한덩어리가 되여 대중을 이끌었다.

대중의 앞장에서 헌신하는 선동원의 이신작칙이 있어 분조원들은 아름찬 과제를 그날중으로 끝내고 씨뿌리기를 적기에 질적으로 하게 되였다.

그뿐이 아니다.

올해 여름 찌는듯한 폭염속에서도 제일먼저 분무기를 지고 포전에 나서군 한 사람도, 폭우로 농작물이 피해를 받을수 있는 정황이 조성되자 솔선 앞장선 사람도 김영순동무였다.

이처럼 진격의 돌파구를 열어제끼는 첫자리가 바로 선동원인 김영순동무의 위치였으며 그의 헌신적노력에 의해 분조는 모든 측면에서 농장의 앞자리에 서군 하였다.

그 나날에 그는 모범선동원의 영예를 지니게 되였다.

언제나 전진하는 대오의 앞장, 어렵고 힘든 모퉁이에 자기 위치를 정하고 후더운 땀을 아낌없이 뿌려온 김영순동무의 이신작칙은 열백마디를 대신한 위력한 선동이였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