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월요일  
로동신문
동해기슭의 제염공가정

2023.10.19. 《로동신문》 4면



이 땅에는 누구나 선뜻 서기 저어하는 어렵고 힘든 초소에서 참된 생의 자욱을 새겨가는 수많은 가정들이 있다.탄부가정, 용해공가정, 신발수리공가정…

그 하많은 가정들중에는 동해바다가의 제염공가정도 있다.그들은 고성군식료공장 소금작업반 반장 한금철동무와 그의 안해 그리고 딸과 사위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나는 무엇을 바쳤는가라는 물음에 늘 자신을 비추어보면서 애국의 마음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한금철동무는 동해기슭에 삶의 닻을 내리였다.

조선인민군 군관으로 복무한 그는 제대후 동해에서도 소금을 생산할데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교시를 높이 받들고 현대적으로 일떠서는 원산만제염소(당시)건설장으로 탄원하여 갈대만이 무성하던 바다가에 대규모의 소금밭을 만들기 위한 투쟁의 앞장에 섰다.그는 돌격대원들과 함께 사나운 파도와 허리치는 감탕속에서 제방을 쌓고 손에 피가 지도록 갈뿌리를 들춰내며 소금밭을 만들었다.숙소에 들어가 식사하는 시간마저 아까와 현장에서 돌격대원들과 주먹밥을 나누어먹은적은 그 얼마였던가.

청춘의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바쳐가는 길에서 그는 일 잘하고 마음씨고운 제염공처녀와 가정을 이루었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맏딸 한선경동무가 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되였을 때였다.

딸자식의 전망문제를 놓고 생각을 거듭할수록 그들부부의 마음속에는 당의 은정이 깃든 소금밭을 대를 이어 지켜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갈마들었다.하여 그들은 딸에게 제염공으로 일했으면 하는 의향을 내비쳤다.

하지만 한선경동무는 제염소가 아닌 다른 일터에서 일하겠다고 하였다.

그 리유는 뜨거운 해볕과 바다바람에 얼굴을 태우며 늘 소금물에 절은 옷을 입고 일하는 부모처럼 소금밭에서 청춘시절을 보내고싶지 않다는것이였다.

순간 한금철동무의 노한 목소리가 딸의 고막을 세차게 울리였다.

《뭐, 소금밭이 어떻다고? 바로 그 소금밭은 우리 장군님의 거룩한 발자취가 새겨진 곳이다.》

그날 그는 자기들의 일터에 찾아오시였던 위대한 장군님께서 제염소로동자들의 건강을 념려하시면서 특히 녀성로동자들인 경우에는 무조건 장화를 신고 일하게 하여야 한다고, 장화를 신지 않고 일하다가는 병에 걸릴수 있다고 못내 걱정하시였다는데 대하여 눈물속에 이야기했다.

그리고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한것밖에 없는 자기가 분에 넘치게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표창장을 수여받은데 대하여, 평범한 제염공의 딸을 조선소년단대회에까지 불러준 당과 국가의 크나큰 은덕에 대하여 다시금 절절하게 이야기하였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한선경동무의 눈에서 자책의 눈물이 흘러내렸다.하여 그는 아버지, 어머니처럼 영광의 일터에서 청춘의 자욱을 값높이 새겨갈 불같은 일념을 안고 소금밭에 사회생활의 첫 발자욱을 찍었다.

그후 그의 가정에는 군사복무를 마치고 제대되여 제염공으로 일하는 끌끌한 청년이 사위로 들어왔다.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조국을 위해 자기를 깡그리 바쳐가는 나날에 한금철동무는 도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성장하였으며 공화국창건 70돐 경축행사와 공화국창건 75돐 경축행사에 참가하는 크나큰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동해바다가의 평범한 제염공가정, 그들은 조국을 위해 특출한 공적을 세운적도, 요란한 성과물을 내놓은적도 없다.

허나 한 가정의 행복보다 먼저 나라를 생각하는 티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일터에 자기의 성실한 땀방울을 묻어가는 그들의 애국의 세계야말로 얼마나 고결한것인가.

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평범한 제염공가정을 두고 한결같이 말한다.참된 애국자가정이라고.

본사기자 김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