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월요일  
로동신문
사회주의조국은 진정한 어머니품
30년전 전설같은 사랑과 더불어 온 나라에 널리 알려졌던 오누이의 성장을 두고

2023.10.19. 《로동신문》 6면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의 사회주의조국은 우리 인민의 진정한 어머니품이며 참된 삶과 행복의 요람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0년전 9월 《로동신문》에는 부모잃은 최학문, 최혜정오누이가 어머니조국의 품속에서 세상에 부럼없이 자라고있는 내용의 기사가 실리였다.

이 한편의 기사가 사회에 준 충격은 대단했다.많은 사람들이 그들오누이의 복된 삶을 두고 사회주의제도에 대한 고마움으로 눈굽을 적시였고 화목한 대가정에서 사는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으로 가슴을 들먹이였다.인민이 받아안은 흥분과 격정이 그대로 노래 《세상에 부럼없어라》에 실려 온 나라 강산에 메아리쳤다.

그후 그들을 원형으로 한 예술영화 《나의 아버지》가 나와 사람들의 감동은 더욱 컸다.

당시 조선체육대학 학생이였던 그들오누이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몰라보게 성장했다.부모잃은 오누이의 성장과정은 우리 인민이 안겨사는 조국의 품이 얼마나 따사로운가에 대하여 그리고 그 품에 운명을 맡기고 사는 우리모두의 삶이 얼마나 복된것인가에 대하여 다시금 새겨준다.

* *

최학문동무는 오늘도 위대한 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만경대구역 금성2동의 살림집에서 살고있다.

《우리 오누이가 만사람의 축복속에 이 집에 들어선지도 수십년세월이 흘렀습니다.하지만 그날의 감격을 지금도 잊을수가 없습니다.사회주의조국은 우리를 먹여주고 입혀주고 공부를 시켜주고 또 걸음걸음 키워주었을뿐 아니라 존엄있고 보람찬 삶을 꽃피워준 어머니품입니다.》

얼마전 우리와 만났던 최학문동무는 이렇게 말하며 30년전의 일을 깊은 감회속에 더듬었다.

뜻하지 않은 일로 부모와 막내동생을 잃고 눈앞이 캄캄했던 일이며 자기들을 저저마다 맡아키우겠다고 나섰던 고마운 사람들의 모습…

졸지에 크나큰 슬픔을 당한 어린 오누이의 모습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자기들을 친자식처럼 맡아키우겠다고 나서는 친척들과 많은 사람들의 진정이 고마왔으나 그들오누이는 평양을 떠나는것이 무척 섭섭하였다.특히 어릴 때부터 집단체조의 여러장에 출연하여 남다른 특기를 보여준것으로 하여 11살에 벌써 공로메달까지 받은 최혜정동무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고 한다.

그때 그들의 이런 심정을 헤아려준것이 평양철도국의 일군들이였다.혁명동지가 남기고 간 오누이는 자기들이 친혈육처럼 돌봐주어야 한다고 하면서 그들은 진지한 토의를 거듭했다.

그런 속에 평양철도합숙에 오누이를 위한 《살림집》이 새로 생겨났다.그 호실로는 때없이 많은 사람들이 사랑과 정을 가득 안고 찾아왔다.

이렇듯 고마운 사람들속에서 최학문동무는 조선체육대학에서 재능의 나래를 활짝 펼치였고 최혜정동무는 집단체조에 참가하여 위대한 수령님들을 모시고 사랑의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을 받아안았다.

이뿐이 아니다.최혜정동무는 조선청년의 최고영예인 김일성청년영예상을 수여받았고 얼마후에는 소원대로 오빠가 공부하는 대학에 입학하였다.

무릇 고아라고 하면 불행과 외로움의 대명사로 불리워왔다.그러나 최학문, 최혜정동무들은 결코 불행하지도 외롭지도 않았다.그들의 곁에는 언제나 친부모와 같은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고 우리 당이, 사회주의조국이 그들을 한품에 안아 따뜻이 보살펴주었다.

학부형회의에 아버지를 대신하여 꼭꼭 참가하군 하던 평양철도국의 일군들이며 추석날이면 부모의 산소를 찾는 자기들이 잠시라도 쓸쓸해할세라 갖가지 음식들을 해가지고 따라나서던 평양철도합숙의 녀인들, 이 고마운 사람들이 그들오누이에게는 아버지였고 어머니였다.

오누이는 자기들을 따뜻이 품어안아 보살펴주는 사회주의조국에 대한 한없는 고마움을 안고 위대한 장군님께 삼가 편지를 올리였다.그런데 위대한 장군님께서 그들의 소박한 편지를 친히 보아주시고 최학문, 최혜정오누이가 광복거리의 덩실한 살림집에서 살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실줄 어이 알았으랴.

새집에 보금자리를 편 그 순간부터 그들오누이에게는 아버지, 어머니들이 또 늘어났다.인민반사람들과 동사무소와 구역당일군들은 이제는 자기들이 오누이의 친부모가 되겠다고 하면서 온갖 성의를 다하였다.명절날이면 인민반적으로 제일 흥성이는 곳이 바로 그들오누이의 집이였다.

언제인가 부모잃은 10대의 대학생들이 광복거리의 새 살림집을 배정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외국의 많은 기자들이 찾아온적이 있었다.오누이에게 외국인들은 진짜 부모가 없는가, 사실이라면 혹시 많은 돈을 유산으로 남기지 않았는가고 거듭 물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살아온 그들은 사실 새로 일떠선 광복거리의 현대적인 살림집을 부모잃은 오누이에게 무상으로 안겨주었다는것이 잘 리해되지 않았던것이다.더우기 한 나라의 령도자가 평범한 대학생들에게 궁궐같은 보금자리를 안겨주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쉬이 믿을수 있겠는가.

그날 많은 의미가 담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오누이는 노래 《세상에 부럼없어라》를 불렀다고 한다.

새 보금자리에서 최학문동무는 자기들을 혈육의 정으로 돌봐주던 한 처녀와 일생을 약속했다.뜻깊은 결혼식날에도 그는 사회주의제도의 품속에서 사는 긍지와 기쁨을 담아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를 불렀다.

조선체육대학을 졸업한 후 청년동맹중앙위원회 일군으로 사업하던 최학문동무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백암군에 일떠서는 발전소건설을 청년들에게 통채로 맡겨주시였다는 감격적인 소식에 접하고는 남먼저 발전소건설장으로 탄원했다.

건설장에서 보답의 구슬땀을 아낌없이 바치는 나날에 최학문동무는 꿈에도 소원하던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였다.이날 그는 부모잃은 자기를 품에 안아 희망을 꽃피워주고 당원의 높은 영예를 안겨준 해빛같은 당의 사랑에 눈굽이 젖어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후 그는 당의 배려로 인민경제대학에서 공부하였으며 현재는 법기관에서 사업하고있다.

나라의 은덕을 받기만 한다면 어이 인간이라고 하랴.

최학문동무는 보답의 길에 깨끗한 량심을 바치였다.얼마전에도 그는 가족과 함께 성의껏 마련한 지원물자를 안고 평양철길대에서 일하는 중등학원졸업생들을 찾았다.이미전부터 중등학원졸업생들의 생활을 혈육의 정으로 돌봐주고있는 그들이였다.이날도 그는 중등학원졸업생들과 함께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노래 《세상에 부럼없어라》를 목메여 불렀다.

최혜정동무도 마찬가지이다.집단체조를 창작하는 단위에서 사업하다가 군관의 안해가 된 그는 남편이 제대된 후에는 사연깊은 칠골역에서 근무하고있다.그도 오빠와 함께 사회와 집단을 위한 좋은 일을 스스로 찾아하고있다.

우리와 만난 자리에서 그는 말했다.

《우리 오누이가 즐겨부르던 노래 〈세상에 부럼없어라〉를 오늘은 저 중등학원졸업생들이 부르는것을 보니 생각이 깊어집니다.당의 품, 사회주의조국의 품이 있어 저 청년들도 우리처럼 세상에 부럼없이 긍지높은 삶을 누려갈것입니다.》

이 세상에 나라는 많아도 사람들모두가 세상에 부럼없다고 그리도 절절히, 목청껏 노래부르는 그런 나라가 어디에 또 있는가.

세상에 부럼없어라! 이것은 위대한 당, 고마운 조국의 품속에 안겨사는 우리 인민만이 심장으로 부를수 있는 사회주의찬가인것이다.

작은 가슴에 우리 당과 국가의 혜택을 새겨안으며 성장해온 최학문, 최혜정오누이, 그들이 자기 운명의 은인인 고마운 당과 사회주의제도를 위하여 빛나는 위훈의 길을 걸어가리라는것을 우리는 믿어의심치 않는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신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