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 《로동신문》 6면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뀔수록 순간도 늦추거나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입니다.》
새해의 첫주 일요일, 은산군 룡흥로동자구에 자리잡은 어느한 고급중학교의 운동장에는 한 녀교원이 못박힌듯 서있었다.분과장 리영실이였다.
그는 학교의 창공높이 휘날리는 공화국기발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이때 교장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영실선생이 여기 있을줄 알았습니다.래일 교직원들에게 3대를 이어 전해진 공화국기발에 대해 다시한번 들려주십시오.아마 선생의 이야기가 우리 교직원들을 계급의식으로 더욱 튼튼히 무장시키는 중요한 강의로 될겁니다.》
리영실의 가정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교장이였다.
얼마후 멀어져가는 교장의 뒤모습을 바라보던 리영실은 조용히 이렇게 외웠다.
(3대를 이어 전해진 공화국기발…)
불현듯 철들자부터 어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들이 화폭처럼 펼쳐졌다.눈물겹기도 하고 가슴벅차기도 한 추억의 첫 페지는 외할아버지 윤민식이 해방과 함께 새땅을 분여받은 그날로부터 시작되였다.
…해방된 이듬해 봄 무연하게 펼쳐진 재령벌에 메질소리가 떵떵 울려퍼졌다.윤민식이 나라에서 분여해준 옥토에 표말을 박는 소리였다.메질을 할 때마다 그의 눈가에 그렁그렁 맺혀있던 주먹같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이게 정말 내 땅이란 말이지.)
생각할수록 꿈만 같았다.나라없던 그 세월 제땅이 없어 지주놈의 종살이를 하고 봄내여름내 피땀흘려 지은 낟알을 가을철에 모두 빼앗긴 원통함에 으스러지게 틀어잡은 주먹으로 피가 나오도록 땅을 두드리군 하던 그였다.
이무렵 토지개혁에 의하여 전국적으로 일제와 친일파, 민족반역자 및 5정보이상의 땅을 가진 지주들의 토지가 몰수되여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분여되였다.
토지개혁, 이것은 저절로 이루어진것이 아니였다.지주를 비롯한 착취계급을 청산하는 준엄한 계급투쟁의 산물이였다.
악질지주와 친일분자들은 핵심일군들을 살해할 음모까지 꾸미였으며 지어는 농민들이 대회를 열고 몰수토지와 토지분여안을 발표하자 장총을 휘두르며 농촌위원회를 습격하려고 기도했다.이렇게 계급적원쑤들은 칼을 벼리고있었다.
윤민식은 계급적원쑤들과의 투쟁에 언제나 앞장섰다.
그는 지주놈의 가혹한 착취의 대상으로, 노예가 되여 지지리도 못살던 자기를 땅의 주인으로 내세워준 나라의 은덕에 기어이 보답하리라 굳은 맹세를 다지며 표말을 힘차게 박고 또 박았다.
그해 윤민식은 가족과 함께 있는 힘껏 농사를 지었다.
제땅에서 마음껏 농사를 지어 풍요한 가을을 맞이한 어느날 그는 집마당에 가득 쌓아놓은 쌀가마니들을 눈물속에 바라보았다.나라가 있고서야 땅의 주인인 농민도 있고 농사짓는 보람도 긍지도 있다고 생각한 그는 자기가 거두어들인 낟알을 나라에 바칠것을 결심하였고 달구지채가 휘도록 쌀가마니를 싣고 평양으로 떠났다.
해방과 더불어 그의 행복은 나날이 무르익어갔다.그런 속에서 그는 주체37(1948)년 9월 커다란 환희를 안고 공화국창건의 날을 맞게 되였으며 존엄높은 공화국의 당당한 공민으로 되였다.
어느날 군에서 돌아온 그는 우리 나라의 기발을 어서빨리 마을사람들에게 보여주고싶어 안해와 함께 집에 있던 천으로 공화국기발을 만들기 시작했다.흰 천을 물들이고 재봉기로 한뜸한뜸 박으며 기발을 만드는데 밤늦도록 정성을 쏟아부었다.
공화국기발을 다 만든 그는 자식들을 앉혀놓고 이렇게 말했다.
《이 기발이 바로 우리 공화국기발이다.이 기발이 우리의 행복을 지켜주고 우리를 보살펴준다.너희들은 앞으로 어디 가서 무엇을 하든 이 기발을 목숨바쳐 지켜야 한다.》
이른새벽 재령군 부덕리 당세포위원장인 윤민식은 집앞마당에 기발대를 세우고 밤새워 만든 공화국기를 높이 띄워놓았다.
날이 밝자 마을사람들이 세차게 펄럭이는 우리 공화국기발을 난생처음 보며 환희에 넘쳐 만세를 부르고 또 불렀다.
그때부터 그의 집에서는 공화국기가 나붓겼다.
맑고 푸른 하늘아래서 펄펄 휘날리는 공화국기를 바라보며 온 마을사람들이 땅의 주인된 기쁨, 래일에 대한 희망으로 가슴을 들먹이였다.
그러나 미제침략자들이 몰아온 전쟁의 불구름은 이 모든 희망과 기쁨을 여지없이 삼켜버렸다.
조국앞에, 가정앞에 준엄한 시련이 닥쳐온 순간 윤민식은 공화국기발부터 깊이 간수하였다.죽어도 우리 공화국의 상징인 기발만은 기어이 지키려는 마음에서였다.전략적인 일시적후퇴가 시작되자 목을 움츠리고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있던 계급적원쑤들, 정체를 숨기고있던 반동분자들이 제세상이 온것처럼 날뛰기 시작했다.미제침략자들이 조작한 《치안대》 등 반동단체들에 가담한 놈들은 사람들을 마구 잡아들이고 학살하였다.
원쑤들의 살인마수는 윤민식의 집에 제일먼저 미쳤다.토지개혁의 앞장에 섰고 애국미도 선참 바친 그에 대해 앙심을 품고있었던것이다.
당시 그는 인민군대원호물자를 실어보내고 뒤늦게 후퇴의 길에 올랐다가 뜻하지 않게 다리를 부상당하여 집에서 치료를 받고있었다.놈들이 대문을 부시며 달려드는 위급한 순간 그가 먼저 생각한것은 깊이 간수한 공화국기였다.그는 방안 한구석에 숨어 오돌오돌 떨고있는 7살 난 막내딸 윤화매에게 남기고싶은 말이 많았지만 공화국기발을 감춘 장소를 알려주면서 당부하였다.
《화매야, 공화국기는
그리고는 빨리 피하라고 등을 떠밀었다.나어린 윤화매는 울바자의 틈새기로 빠져나갔다.
윤화매는
바람이 불자 공화국기는 더욱 세차게 나붓겼다.
(외할아버지의 마지막당부가 자기의 가슴에 죽어도 살아도 값높은 삶의 터전인 공화국을 지켜야 한다는 자각을 깊이 새겨주었다고 어머니는 늘 말하군 했었지.)
리영실의 추억은 계속 이어졌다.
…가렬한 3년간의 조국해방전쟁은 우리의 승리로 끝났다.전승의 날 윤화매는 가족과 함께
공화국기발이 우리의 행복을 지켜주고 우리를 보살펴준다고 하던
그후 가정을 이룬 그는
수십년간 간수해오는 한폭의 귀중한 공화국기발을 보기 위하여 그의 집으로는 이웃들은 물론 인민군대에 입대하는 청년들과 표창휴가를 받고 고향으로 온 군인들이 찾아오군 했다.그럴 때마다 윤화매는 기발에 깃든 사연에 대해 들려주었다.
오랜 병환끝에 림종을 앞둔 윤화매는 리영실을 곁에 불러앉히고 당부하였다.
《지금 사람답게 부러운것없이 사는것이 뉘 덕이냐.우리 공화국정권의 혜택이라는것을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이제부턴 네가 이 기발을 간수하거라.》
그러면서 공화국기발을 딸에게 넘겨주었다.
수십년전 외할아버지가 만든 공화국기발을 어머니로부터 넘겨받은 리영실은 후대들을 투철한 계급의식을 지닌 나라의 역군으로 키우기 위해 있는 지혜와 정열을 다 바치였다.명절때마다 그의 집에는 공화국기발이 나붓겼다.
지금으로부터 몇해전 어느날 리영실의 집으로 계급교양부문의 한 일군이 찾아왔다.사연깊은 공화국기발때문이였다.수십년세월 가보처럼 간직해온 공화국기발을 내놓기가 무척 아쉬웠지만 그 기발이 반제반미교양의 거점으로 새롭게 꾸려지는 중앙계급교양관에 응당 전시되여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일군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의 외할아버지와 어머니는 후대들에게 공화국기발을 목숨처럼 귀중히 여기고 지켜가야 한다는 당부를 남기였습니다.저도 새세대들에게 그렇게 당부하고싶습니다.》
하여 공화국기는 중앙계급교양관에 전시되였다.
3대를 이어 전해진 공화국기발, 거기에는 참된 삶을 주고 값높은 인생의 행복을 안겨준 어머니조국의 귀중함을 가슴깊이 새기고 공민의 본분을 다하려는 한 가정의 신념이 비껴있었다.…
추억의 상념에서 깨여난 리영실은 국기게양대에서 나붓기는 공화국기발을 바라보았다.세찬 퍼덕임과 더불어 외할아버지와 어머니가 남긴 당부가 메아리되여 그의 귀전에 울려왔다.
그것이 조국을 지켜 한몸 서슴없이 바쳐 싸웠고 조국을 빛내이기 위해 값높은 삶의 자욱을 수놓아온 전세대들이 후대들에게 남기는 영원한 당부임을 교직원들에게 말해주리라 굳은 결심을 다지며 리영실은 걸음을 내짚었다.
본사기자 신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