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9월 18일 수요일  
로동신문
미더운 당초급선전일군들

2024.1.21. 《로동신문》 3면


불같은 헌신은 가장 위력한 선동

조양탄광 월봉갱 채탄3중대 채탄공 김철룡동무

 

불같은 헌신은 가장 힘있는 선동이다.이것은 김철룡동무가 14년간 선동원으로 활동해오면서 찾은 경험이다.

선동원사업을 시작할 때만 하여도 그는 아침독보시간이나 작업의 쉴참에 신문이나 선동자료를 읽어주는것을 사업의 전부로 생각하였다.그러나 계속 출근률이 떨어지고 소대석탄생산실적도 제자리걸음을 하게 되자 그는 점차 고민에 빠지게 되였다.그러던 어느날 대오의 기수인 선동원의 위치와 본분에 대하여 새겨주는 당세포비서의 충고를 들으며 그는 깊이 자각하게 되였다.

그는 새 출발을 하리라 결심하고 분발해나섰다.늘 남먼저 일터에 나와 작업준비를 해놓았고 그날생산과제를 수행하기 전에는 막장을 뜨지 않았다.교대후에는 소대원들의 심장을 울릴수 있는 생동한 선동자료들을 준비하느라 밤을 지새우군 하였다.

언제인가 막장에 뜻하지 않은 난관이 조성되였을 때에는 소대원들의 앞장에서 헌신적투쟁을 벌려 3일이 걸린다던 작업을 몇시간동안에 해제껴 생산의 동음을 계속 울릴수 있게 한것을 비롯하여 그는 언제나 어려운 일에 남먼저 뛰여들군 하였다.때로는 수십점의 소공구를 자체로 마련하여 생산정상화에 적극 이바지하고 실천적모범으로 소대안에 기술기능수준을 높이기 위한 된바람을 일으키기도 하였다.그의 이런 불같은 모습은 집단적혁신을 일으키는 위력한 정치사업이 되여 소대는 해마다 석탄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하는 전투력있는 집단으로 되였다.

김철룡동무는 마음속고충과 생활상애로를 겪는 소대원들을 위해서도 헌신적으로 노력하였다.일터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소대원을 위해, 앓거나 집수리가 필요한 채탄공들을 위해 진심을 기울이며 왼심을 썼다.이런 헌신적이며 진정어린 모습은 소대원들의 심장을 울려 석탄생산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게 하였다.

김철룡동무는 모범선동원으로 내세워준 당의 믿음에 높은 사업실적으로 보답하기 위해 헌신의 자욱을 더욱 힘차게 새겨가고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주창호

 

진정을 기울이는것만큼

선교구역건설려단 3중대 선동원 정선영동무

 

지난 12년간 선동활동을 벌려오면서 정선영동무는 진정만이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것을 체득하고 중대원들을 위해 뜨거운 진정을 기울여왔다.

몇해전 부재작업반의 주동무가 자기 직업에 대한 애착을 가지지 못하고 거친 행동으로 사람들의 말밥에 자주 오른적이 있었다.아무리 말해주어도 자기 주장만 고집하는 그를 놓고 누구도 교양할수 없다고 도리머리를 저었다.이를 놓고 정선영동무는 생각이 많았다.

중대를 단합되고 전진하는 애국집단으로 만들자면 한명의 락오자도 있어서는 안된다.선동원이라는 의무감이 아니라 인간의 뜨거운 정으로 대하자.

이렇게 마음먹고 주동무를 찾아갔지만 사람들의 말대로 그의 마음을 돌려세우기가 쉽지 않았다.그렇다고 물러설수는 없었다.

당에서는 야간지원돌격대원이 되여 미래과학자거리건설장에 달려나가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자기를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제9차대회 대표로 불러주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의 자리에까지 내세워주지 않았는가.

정선영동무는 마음을 다잡고 주동무를 자주 찾아갔다.그 과정에 주동무가 가정사정으로 성격이 이지러졌다는것을 알고는 여러모로 마음을 썼다.생일때에는 자식된 심정으로 찾아가 지성을 기울였고 그의 딸이 시집갈 때에는 생활용품 등을 성의껏 마련하여주었다.아들이 인민군대에 입대할 때에는 기념품도 안겨주면서 병사의 의무에 충실하라고 당부하였다.

마침내 주동무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새 출발을 결심한 그는 맡은 일에 투신하여 로력혁신자로까지 성장하였다.집단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주동무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더없는 긍지와 보람을 느끼였다.

지난해 3월 수도의 생활용수문제를 하루빨리 풀데 대한 당의 의도를 높이 받들고 구역이 맡은 우수관공사장에 나가 선동활동을 힘있게 벌려 공사기일을 앞당기는데 적극 이바지하였다.어려운 일에 서슴없이 몸을 내대면서도 언제나 밝은 얼굴로 대중앞에 나서서 힘과 고무를 주고 아무리 힘들어도 밤늦게까지 중대원들의 작업복과 장갑 등을 빨아놓고서야 마음을 놓군 한 정선영동무였다.

이런 그를 두고 중대원들은 《우리 선동원》이라고 정담아 부른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조택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