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6일 목요일  
로동신문
사회주의생활의 향기

2024.1.27. 《로동신문》 6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온 나라에 서로 돕고 이끄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미풍이 차넘치게 하여 우리 사회를 화목하고 단합된 일심단결의 대가정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사회주의 우리 제도, 우리 생활속에서는 만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미담들이 끝없이 꽃펴나고있다.

온 나라가 화목한 대가정을 이루고 서로 돕고 이끌며 덕과 정으로 단합되고 사랑의 힘으로 전진하는 우리 인민, 그것으로 하여 나날이 더욱 아름다와지는 우리 생활이다.

 

고마운 청년

 

며칠전 저녁 과학자려관앞을 지나던 한 청년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길가에서 홀로 울고있는 처녀애를 보게 되였던것이다.

청년은 그에게 다가가 사연을 물었다.알고보니 그애의 집은 송화거리에 있었는데 학급동무의 집에 놀러 왔다가 돌아가자고보니 집으로 가는 길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것이였다.

청년은 처녀애의 손목을 잡고 발걸음을 옮기였다.

송화거리에 도착하여서는 내내 그애가 가리키는 길을 따라걸었다.퍼그나 시간이 흘러서야 처녀애의 집을 찾았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청년은 처녀애가 추워할세라 자기 솜옷도 입혀주고 간식도 안겨주었다.

얼마후에야 발자국소리가 울리더니 처녀애의 어머니가 집앞에 이르렀다.

딸을 통해 사연을 알게 된 녀인은 거듭거듭 고맙다고 인사하며 청년에게 이름과 주소를 물었다.

하지만 청년은 조용히 웃음을 짓고는 그 자리를 떴다.

후에 알려진데 의하면 고마운 그 청년은 평양건축대학 건설공학부 학생 오정수동무였다.

 

농촌지원기간에 맺어진 인연

 

지난 1월 어느날 락랑구역 류소남새농장 농장원 오영진동무의 집에 한 의료일군이 들어섰다.어느한 병원 의사 양창근동무였다.

딸애의 건강이 념려되여 찾아왔다는 의료일군의 말에 집사람들은 뜨거운것을 삼켰다.오영진동무와 그의 가족이 양창근동무와 인연을 맺게 된것은 지난해 농촌지원기간이였다.

낮에는 농사일도 함께 하고 저녁에는 농장원들의 집집을 찾아 치료사업도 진행하던 양창근동무는 어느날 오영진동무의 딸이 선천성질병으로 앓고있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그날부터 양창근동무는 작업의 여가시간은 물론 깊은 밤에도 때없이 찾아와 치료대책도 세워주고 병치료에 필요한 보약재도 안겨주었다.그런 나날속에 마침내 환자의 건강은 회복되여갔다.

농촌지원기간이 끝난 후에도 한 농장원의 딸을 위하는 양창근동무의 정은 끝없이 이어지였다.그는 중요대상건설장에 현장치료대로 나가있는 속에서도 짬만 있으면 전화로 안부를 물었고 여러가지 생활용품들도 마련하여 보내주군 하였다.

한 평범한 농장원가정을 위해 진정을 바치는 의료일군의 모습은 오영진동무로 하여금 나라의 쌀독을 책임진 주인으로서의 본분을 다해갈 결의를 가다듬게 하고있다.

 

작업반원들을 위하는 마음

 

얼마전 하루일을 마치고 휴계실로 들어선 라진수산사업소 신해양식작업반의 종업원들은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매 사람의 이름이 씌여진 글쪽지가 붙은 새 솜옷들이 나란히 놓여있었던것이다.

몸에 꼭 맞는 솜옷들을 보는 종업원들의 뇌리에는 누구라 할것없이 최홍희동무의 모습이 떠올랐다.

며칠전부터 자기들의 몸치수를 수첩에 적어넣군 하던 최홍희동무였다.그들이 영문을 물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웃음짓던 최홍희동무의 모습을 되새기며 누구나 가슴뜨거움을 금치 못하였다.

작업반에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고 나이도 젊은 녀성이지만 언제나 작업반원들을 친혈육의 심정으로 돌봐주군 하는 그였다.

일터에 정을 붙이지 못하는 한 종업원을 위해 그는 수십리 밤길을 걷기도 하였고 생활이 어려운 가정을 찾아 진정을 바치기도 하였다.

작업반원들을 한식솔처럼 여기는 그의 마음이 한벌한벌의 새 솜옷마다에 력력히 어려있었다.

그날 작업반원들은 화목한 정이 넘치는 집단에 대한 애착을 더욱 뜨겁게 느끼였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