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3일 월요일  
로동신문
염분진이 전하는 27년전의 가슴뜨거운 이야기

2024.2.13. 《로동신문》 2면


걸출한 위인의 실록은 뜻깊은 하루, 한순간의 이야기도 전설처럼 전해지며 만사람의 흠모심을 불러일으킨다.그것은 위인의 비범한 사색과 실천의 어느것이나 인민을 위해 쌓아올린 불멸의 업적과 잇닿아있기때문이며 세월이 흐를수록 현실속에서 그 은혜로움이 부각되기때문이다.

염분혁명사적지의 어제날 녀강사가 한생토록 간직하고 사는 27년전의 이야기도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인덕의 세계에 대하여 감명깊이 전하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장군님의 애국의 마음에는 언제나 인민이라는 두 글자가 꽉 차있었습니다.》

우리 조국이 준엄한 고난의 행군을 하고있던 주체86(1997)년 11월말의 어느날이였다.세찬 바람에 진눈까비까지 흩날리는 그날의 날씨는 북방의 초겨울치고도 꽤 사나운편이였다.

그날 새벽 당시 염분혁명사적지 강사로 일하고있던 리영애동무는 희한한 꿈을 꾸고있었다.글쎄 그처럼 뵙고싶던 위대한 장군님께서 자기 일터에 찾아오신것이였다.너무도 큰 영광이여서 어쩔바를 몰라하는 그에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름까지 다정히 불러주시며 나이는 몇살인가, 추운 날에 일은 힘들지 않은가 일일이 물어주시는것이였다.결혼은 하였는가, 아이는 몇살인가고 물으시며 등을 다정히 두드려주실 때에는 그만 어려움마저 잊고 품고있던 생각도 무랍없이 아뢰여올리였다.그런데 이때 어디선가 아이울음소리가 들려와 그만 깨여나보니 자기곁에서 2살 난 아들애가 칭얼대고있는것이 아닌가.

그러고보니 앓고있는 아들애때문에 자기가 며칠전부터 휴가를 보내고있다는 사실이 뇌리를 치며 떠올랐다.너무도 아쉬워 녀강사는 한순간 속이 텅 빈것같은 허전함을 느끼였다.

(그렇게도 생생하게 보고 듣고 느끼였던것이 죄다 꿈이였단 말인가.이제라도 다시 잠들면 아버지장군님을 또 뵈올수 있지 않을가?)

하지만 꿈결에 받아안은 충격과 흥분이 너무도 강렬해서인지 오히려 정신이 더욱 새록새록 맑아지면서 리영애동무는 도저히 잠을 이룰수 없었다.전날 저녁 위대한 장군님께서 녀성해안포중대를 현지시찰하신 혁명활동소식을 TV로 접하였던지라 리영애동무는 머나먼 북방에서 어떻게 이 꿈이 현실로 되랴 하는 생각이 갈마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하지만 위대한 령장의 슬하에서 각별한 사랑과 정을 받으며 성장한 비행사남편의 생각은 역시 남달랐다.안해의 꿈이야기를 듣고난 남편이 위대한 장군님께서 정말로 이곳에 오시였다가 강사가 없는 혁명사적지에 들어서시면 얼마나 서운해하시겠는가고 의미심장하게 말하는것이였다.

남편의 목소리에서 정신을 번쩍 차린 리영애동무는 서둘러 차비를 하고 아침일찍 일터로 향했다.진눈까비 흩날리는 길을 따라 《기다렸습니다》의 노래를 부르며 사적지로 달리고달리는 그의 두볼로는 뜨거운 소원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정녕 그것은 그처럼 힘겨웠던 나날에도 오로지 위대한 장군님만을 하늘처럼 믿고 따르며 백옥같은 일편단심을 지켜온 우리 인민의 모습이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일터에 도착한지 얼마 안되여 한 일군이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제 곧 염분혁명사적지로 오신다고 알려주는것이 아닌가.

그처럼 간절한 마음 안고 달려온 길이건만 리영애동무는 눈앞의 현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설마 또 꿈을 꾸는것은 아닐가 하고 손등을 꼬집어보기까지 하였다.

사실 염분혁명사적지를 찾으신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부대들에 대한 현지시찰을 계획하고계시였다.하지만 새벽부터 날씨가 차지면서 진눈까비가 내리자 그이께서는 이런 추운 날에 우리가 가면 전사들이 감기에 걸릴수 있다고 하시면서 염분진에로 발걸음을 돌리시였다.일군들이 앞을 막아나서며 후에 들리셨으면 좋겠다고 말씀올리였으나 우리야 눈비를 좀 맞으면 뭐라는가, 염분혁명사적지를 잘 꾸렸다는데 어서 가보자고 하시며 떠나신 걸음이였다.

이윽고 사적지에 도착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달음에 달려와 정중히 인사올리는 녀강사를 보시자 무척 놀라와하시였다.사적지에 오면 아무도 없을줄 알았는데 강사동무가 있다고 하시며 뜻밖이신듯 일군들에게 눈길을 돌리시는 그이를 우러르느라니 리영애동무는 본분과 사명을 자각하고 이른아침 자기 초소로 달려나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커다란 흥분속에 떠올랐다.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찬눈비를 한몸에 맞으시면서 오랜 시간 무엇보다 깊이 마음쓰신 문제는 혁명사적지관리운영에서 인민들의 편의를 철저히 보장할데 대한것이였다.강사의 해설을 들으시며 사적지에 깃든 잊지 못할 사연들을 감회깊이 회억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윽하여 허리에 손을 얹으시고 염분진의 경치를 부감하실 때였다.밀려드는 파도에 씻기여 볼수록 정갈한 백사장, 들쑹날쑹한 바위들이 키돋움을 하는 도래굽이, 기암들사이로 무지개마냥 뻗은 줄다리를 번갈아 바라보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염분진의 경치가 아주 좋다고, 오늘 날씨가 흐리고 비가 내리여 그렇지 맑으면 경치가 더 좋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강사는 물론 일군들모두가 좋은 날, 좋은 계절에 그이를 여기에 모시면 얼마나 기쁘랴 하는 안타까움을 금할수 없었다.그런데 위대한 장군님께서 문득 한해에 참관자들이 얼마나 오는가, 그들이 사적지를 참관하러 왔다가 휴식은 어디서 하는가에 대하여 물으시는것이였다.강사는 별생각없이 참관자들이 사적비앞에서 정중히 해설강의를 듣고는 멀리 사적구역밖으로 나가 주변의 솔밭에서 식사도 하고 휴식을 한다는데 대하여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생각깊은 어조로 이런 좋은데를 두고 다른 곳에 가서 휴식한단 말이지 하고 나직이 뇌이시는것이였다.강사가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마다 훌륭한 경치에 반하여 돌아서기 아쉬워하지만 사적비앞이여서 모두 휴식하기 저어한다고 그대로 말씀올리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왜 그렇지 않겠는가고 하시며 인민들이 즐겁게 휴식할 명승지 한복판에 사적비를 건설한것은 잘못되였다는데 대하여 일군들에게 일깨워주시였다.경치아름다운 염분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마음껏 휴식하게 해야 한다고, 위대한 수령님의 발자취가 어려있는 여기에서 바로 우리 인민들이 락을 누려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사적비를 사적지로 들어오는 입구쪽으로 옮겨세우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진정 우리 장군님 아니시라면 그 누가 인민들의 리익과 편의를 귀중히 헤아려 이런 결단을 내릴수 있었겠는가.이렇게 되여 후날 사적비가 있던 자리에는 누구나 찾아와 마음껏 아름다운 경치를 즐길수 있는 인민의 휴식터가 마련되게 되였다.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강사인 리영애동무에게도 대를 두고 잊지 못할 다심한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나이는 몇살인가,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 남편은 무슨 일을 하는가 일일이 물어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편이 비행사라는 그의 대답을 들으시고서는 그러니 인민군대후방가족이라고 못내 기뻐하시였다.

다심한 어버이정이 어린 말씀에 리영애동무는 찬눈비에 옷자락이 젖어들도록 오랜 시간 사적지를 돌아보신 그이의 로고에 대해서도 생각 못한채 지난 새벽의 꿈이야기까지 아뢰이였다.하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금도 그를 탓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정말 신통한 꿈을 꾸었다고, 좋은 꿈을 꾸었다고 하시며 그의 심정을 따뜻이 헤아려주시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 이곳 사적지를 찾아오시였던 감격의 그날처럼 리영애동무를 자신의 곁에 세우시고 영광의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떠나시기에 앞서 일군들에게 강사동무에게 점심식사를 잘 시켜보내야 하겠다고, 밖에서 해설을 하느라고 몸이 얼었겠는데 더운 국을 먹여보내야 하겠다고 당부하시였다.

리영애동무는 참고참았던 눈물이 왈칵 솟구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응당 할 일을 한것뿐인 평범한 강사로서 받아안기에는 너무도 크고 고귀한 은덕이여서였다.

어찌 그만이 그런 꿈만 같은 영광을 받아안으며 고마움의 눈물을 흘렸겠는가.우리 장군님께서 현지지도의 길에 만나주신 구봉령일가와 대홍단의 평범한 제대군인가정을 비롯하여 이 땅의 무수한 사람들이 그이의 한없이 자애로운 인정미에 끌리고 하늘같은 은덕에 감격의 눈물을 쏟으며 당을 따라 혁명의 천만리를 꿋꿋이 걸어오지 않았던가.

위대한 장군님께서 사적비를 옮겨 인민의 휴식터를 마련해주시였던 이 뜻깊은 고장에 오늘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은덕으로 천지개벽이 일어나고있다.위대한 장군님의 구상대로 염분진지구를 인민들의 문화휴식터로 이채롭게 꾸려주시려 현지에 오시였던 그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경치좋은 이곳에 훌륭한 봉사시설을 갖춘 해안공원까지 멋있게 건설하도록 해주시였다.몇해전 경애하는 그이께서 이곳 주변에 있던 공군기지를 철거시켜 일떠세워주신 중평온실농장에서는 해마다 사철 신선한 남새들을 생산하여 함북도인민들에게 공급하고있다.

위대한 장군님의 한량없는 인덕의 세계에 목메여 울던 어제날의 강사로부터 리영애동무는 오늘 어엿한 당일군으로 몰라보게 성장하였다.

그는 말하였다.

《이 땅의 사람들이 수놓아가는 아름다운 인생과 우리 인민이 누리는 모든 행복은 어느것이나 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 경애하는 원수님의 친어버이사랑에서 시작되고 천만가지 실체로 끝없이 열매맺고있습니다.

참으로 태양이라고밖에는 달리 칭송할수 없는 위대하신분들을 대를 이어 수령으로 높이 모시고있다는것, 이것이 바로 제가 27년전의 하루와 더불어 더욱 깊이 절감하는 우리 인민의 가장 큰 행복상입니다.》

본사기자 리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