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21. 《로동신문》 4면
우리 가정에는
《애국은 조국과 인민에 대한 헌신이고 투신입니다.》
20여년전 나의 어머니는 본의아니게 나라의 법을 어기게 되였다.조국이 어려움을 겪던 나날 제딴에는 자식들의 뒤바라지를 한다고 하면서 잠시나마 공민의 본도를 망각하였던 어머니는 그후 자신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나라를 위한 좋은 일을 한가지라도 찾아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그때 나는 사람들이 어머니일로 하여 나를 색다른 눈으로 보지 않는가 하는 생각에 빠져 마음의 안정을 잃게 되였다.린접군의 어느한 단위에서 일하던 나는 불리한 작업조건을 등대고 맡은 일에 성수를 내지 않았고 얼마후에는 도망치다싶이 일터를 떠나왔다.직업에 대한 애착이 없다나니 이 직장, 저 직장 떠돌아다니면서 어떤 때는 몇달동안 출근도 하지 않고 자기만을 위한 일감을 찾아 허송세월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오래동안 집을 떠나있는 나에게 어머니가 찾아왔다.어머니의 수척해진 모습을 보느라니 속이 좋지 않았다.하지만 나는 나라앞에 진 죄를 씻기 위해 아글타글 노력하는 어머니에게 오히려 그렇게 애쓴다고 누가 알아주는가고, 괜한 수고를 하지 말라고 걱정 아닌 《걱정》까지 하였다.그러자 어머니는 내 처지에 무슨 체면으로 자식을 교양한다고 여기까지 찾아왔댔는지 모르겠다며 눈물이 글썽한채로 돌아갔다.
마음이 뒤숭숭해진 나는 며칠후 집으로 돌아왔으나 공장일로 드바쁜 어머니는 여러날째 들어오지 않았다.빈방에 홀로 앉아있느라니 어딘가 집안이 달라진감이 들었다.예전에 없던 책장이 생겨났던것이다.
어머니의 진정을 가슴에 새기며 나는 한권, 두권 책을 꺼내보았다.그런 가운데 지난날 잘못된 길을 걸었던 청년들이 품어주고 키워준 어머니당과 사회주의제도를 위해 어렵고 힘든 초소에서 어떻게 인생을 빛내이고있는가를 서술한 도서를 보게 되였다.읽을수록 감동이 컸다.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그 모든것을 단순히 책의 글줄로, 자신의 생활과는 무관한것으로 여기며 그들곁에 자신을 세워보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후 나의 이 잘못된 생각을 흔들어놓는 일이 벌어졌다.군안의 로력혁신자, 공로자들과 함께 어머니가 국가수훈의 영예를 지니였던것이다.그날 우리 자식들에게 하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잊을수 없다.
이 어머니는 지난날 평범한 가정의 아들딸 8남매를 모두 대학교정으로 불러준 조국의 고마움을 잊고 살았다.그러다나니 결국은 부모형제앞에도 아들딸앞에도 떳떳치 못한 존재가 되고말았다.부모구실이란 번쩍거리는 재산이 아니라 나라의 은덕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유산으로 물려주는것임을 오늘 다시금 깨달았다.
그날 나는 량심의 거울앞에 자신을 세워보았다.남들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겠는가를 속으로 저울질하며 자포자기하고 허송세월하던 일, 앞으로 가정을 이루고 자식들이 생겨도 밑천이 든든해야 한다며 리속을 챙길수 있는 일에만 급급하며 동분서주하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그럴수록 어려웠던 나날에도 언제나 열려있던 학교문이며 철따라 받아안던 교복과 학용품에 대해 감감 잊고 살았다는 자책감이 갈마들었다.
그후 나는 인생의 새 출발을 하였다.저 하나만의 리기적목적을 위해 터득했던 기술기능을 사회와 집단을 위해 아낌없이 바쳐가는 나날에 비로소 사는 멋과 보람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였다.
조국은 보답의 첫걸음을 뗀데 불과한 나의 크지 않은 성과도 소중히 헤아려 공로메달을 안겨주었다.그날 나의 앞가슴에 번쩍이는 메달을 어루쓸며 어린 아들은 말했다.자기도 공부를 잘해서 후에
지금 우리 주위에는 자식들을 잘 먹이고 잘 입혀 내세우는것만으로 부모구실을 다하는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그들에게 나는 우리 가정의 교훈과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의 의무에 대해 다시금 새겨주고싶다.우리가 자식들에게 넘겨줄수 있는 가정의 진짜재부는 나라의 은덕을 언제나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고원군중소하천관리소 로동자 김철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