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9월 20일 금요일  
로동신문
고향에 보낸 녀병사의 편지

2024.2.28. 《로동신문》 6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의 앞날을 떠메고나갈 후대들을 키우는 어머니로서의 녀성들의 역할은 누구도 대신할수 없습니다.》

지난해 12월초 어느한 초소의 병실창가에는 녀병사가 고향하늘을 바라보며 점도록 서있었다.

그는 방금전에 TV화면으로 제5차 전국어머니대회의 높은 연단에서 토론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던것이다.

정든 집을 떠나 조국보위초소에 탄원한 때로부터 수년세월 그리도 보고싶던 어머니가 뜻밖에도 온 나라 아들딸들의 축하의 마음이 달려가는 대회장의 연단에 선 긍지스러운 모습으로 나서게 될줄 어이 알았으랴.

그의 귀전에는 한 녀맹원이 남기고 간 오누이의 어머니가 된 함흥시 흥남구역 류정3동 초급녀맹위원장 최장숙녀성이 어머니들부터가 공산주의적품성을 지니고 새세대들을 대바르고 참되게 키우기 위해 성심을 다할 때 자식들이 미래의 기둥감들로 억세게 자라날수 있다고 토론한데 대하여 전하던 방송원의 목소리가 쟁쟁히 들려왔다.그 최장숙녀성이 바로 녀병사의 어머니였다.

나의 어머니!

이렇게 외우는 녀병사의 눈가에 추억의 빛이 짙어갔다.

10여년전 어느날 그의 어머니가 뜻밖에도 두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들어섰다.

《천지야, 너에게 오빠와 동생이 생겼단다.정철이와 일심이, 이제부터 이애들과 함께 살자.》

늘 오빠와 동생이 그리웠던 천지는 기쁘기 그지없었다.하지만 그 기쁨은 점차 자기보다 데려온 아이들을 더 위해주는 어머니에 대한 야속함과 가정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녀동생에 대한 고까움으로 변해갔다.

어머니는 그애들의 병치료를 위해 의사선생님들을 찾아 자주 집을 떠나군 하였고 밤새워 약을 달이고 많은 빨래를 하느라 늘 손이 젖어있었다.녀맹돌격대활동도 할래, 집일도 할래 일감을 놓을새없이 뱅글뱅글 돌다나면 언제 한번 발편잠을 자본적이 없었다.친자식인 자기보다 먼저 데려온 애들에게 새옷과 신발을 사주어 불만을 터뜨린적은 그 얼마였던가.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는 그를 외할머니네 집으로 떠나보내며 이렇게 말했다.

《천지야, 네 오빠와 동생이 자주 앓으니 엄마는 정말 속상하구나.당분간 외할머니네 집에서 살거라.인츰 데리러 갈게.》

그날 천지는 이웃집녀인의 손목에 이끌려 멀어져가는 자기를 바라보며 어머니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미처 알수 없었다.

그는 매일 저녁 외가집마을 앞도로에 나가 이제나저제나 어머니를 기다렸다.그렇게 몇달이 지난 어느날 구역의 한 일군이 그를 찾아왔다.그에게 오빠와 동생이 생긴 다음부터 자주 집에 들려 맛있는 간식도 안겨주고 살림살이형편도 알아보던 일군이였다.

천지와 함께 집으로 가는 길에서 일군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정철이와 일심이는 어머니와 함께 녀맹생활을 하던 녀맹원의 자식들이라는데 대하여, 나라를 위한 좋은 일에 앞장서던 그가 뜻밖에 곁을 떠나자 녀맹일군인 어머니는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그애들을 맡아안았다는데 대하여…

어린 천지였지만 어머니가 무척 돋보였다.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다 알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훌륭히 키우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정철이와 일심이를 그들의 친어머니가 일하다가 순직한 현장에 데리고가 훌륭한 어머니를 자랑으로 여기고 어머니처럼 애국의 길을 걸어가라고 일깨워주군 하였으며 액틀에 정히 끼운 사회주의애국희생증을 애들의 책상우에도 놓아주었다.

그리고 충성과 보답의 일지를 만들어놓고 매일 좋은 일을 한가지씩 찾아하는 경쟁을 벌리도록 하였다.

그 나날 천지는 조선소년단 제7차대회에 참가하여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을 지니였고 정철이와 일심이는 공부도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르는 모범학생들로 자라나게 되였으며 집벽면에는 표창장과 지원증서들이 늘어나게 되였다.

어머니는 뭐니뭐니해도 몸이 튼튼해야 군대에 나가서도 지휘관들의 짐이 되지 않고 초소를 잘 지킬수 있다고 하면서 닭과 토끼를 길러 곰을 만들어먹이며 영양보충에 많은 품을 들이였다.그리고 몸단련도 맹렬히 시키였다.

이렇게 름름하게 자라난 정철이가 조국보위초소로 떠나고 그로부터 몇해가 흘러 천지도 중학교졸업을 앞두게 되였다.

공부 잘하기로 소문났던 천지는 대학에 갈것을 지망했지만 부모의 생각은 달랐다.

아버지로부터 어머니가 처녀시절 군복을 입게 된 사연에 대해 전해듣고서야 천지는 자기의 생각이 얼마나 짧았는가를 깨달았다.

군사임무수행중 부상당한 한 병사를 위해 정성을 바친 어머니의 소행을 기특히 여겨 소망대로 그 병사가 섰던 초소에 서도록 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속에 어머니는 18살에 혁명의 군복을 입었고 제대후에는 대학공부까지 하게 되였던것이다.

천지는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어머니의 뒤를 이어 혁명의 군복을 입었고 일심이도 조국보위초소에 섰다.

세 자식을 군대에 내보낸 긍지를 안고 어머니는 사회와 집단을 위한 좋은 일을 적극 찾아하였고 다자녀세대들의 생활도 친혈육의 심정으로 도와주었다.

그런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자식들의 성장에 묵묵히 밑거름이 되여주고 나라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애써온 어머니의 남모르는 수고와 정성을 깊이 헤아리시여 뜻깊은 어머니대회에 불러주시고 사랑의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실줄 꿈엔들 생각했으랴.

그는 철없던 시절 그런 훌륭한 어머니를 리해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펜을 꺼내들었다.

《어머니, 이 딸이 조국보위초소로 떠나던 날에도 어머닌 구역안의 부모없는 아이들을 위해 먼길을 떠나셨지요.이 딸은 저 하나만이 아니라 수많은 자식들의 어머니로 사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리고는 편지마감에 이렇게 썼다.

《어머니의 실천적모범은 우리들에게 참다운 인생의 교본으로 됩니다.사회주의애국공로자인 어머니처럼 당과 조국을 받들어 초소를 굳건히 지켜가겠습니다.》

고향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녀병사의 편지, 그것은 한가정의 울타리를 뛰여넘어 조국과 인민, 사회와 집단을 위한 헌신과 복무의 길에서 인생의 보람과 행복을 찾는 이 나라 어머니들에게 드리는 축하의 인사, 그 애국의 삶을 꿋꿋이 이어갈 보답의 맹세였다.

본사기자 강효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