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3.1. 《로동신문》 5면
《새땅을 얻기 위한 간석지건설에 계속 힘을 넣으면서 가능한 여러가지 방법으로 부침땅을 늘여나가야 합니다.》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전원회의 결정을 높이 받들고 올해 간석지건설목표를 기어이 점령하기 위한 투쟁으로 서해간석지건설전역이 세차게 끓고있는 속에 강령군에 위치한 양촌간석지건설장에서 혁신의 소식이 전해지고있다.
조선인민군 홍정남소속부대 군인건설자들이 간석지건설에서 중요한 1차물막이공사를 단 한달동안에 성과적으로 결속하였다.
그리하여 160여정보의 농경지를 얻어낼수 있는 돌파구를 열어놓았다.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조건에서 안아온 이 소중한 결실에는 간석지개간사업을 힘있게 벌릴데 대한 당정책을 어떻게 대하고 관철해야 하는가를 실천으로 보여준 이곳 군인건설자들의 결사의 투쟁정신이 깃들어있다.
여기도 전장이다
사실 양촌간석지 1차물막이공사를 한달동안에 끝낸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방조제를 형성하자면 량쪽에서 제방을 쌓아야 하는데 한쪽 공사장은 기동로가 막히다보니 발파자재, 연유를 비롯한 일체 공사용물동을 배로 실어날라야 하였다.
그만큼 공사조건이 불리하였다.
이런 속에서 군인건설자들은 불과 한달동안에 800여m의 도갱굴진을 진행하고 수십만㎥의 막돌과 흙을 운반하여 1 700여m의 방조제를 쌓았다.
과연 이들은 어떤 신념과 의지를 안고 이 위훈창조의 길에 뛰여들었던가.
지난해 봄부터 양촌간석지 1차물막이공사문제는 일정에 올랐다.
하지만 이 공사를 하자고보니 여러모로 제기되는것이 적지 않았다.
또 사나운 날바다를 막아야 하는 간석지건설은 일단 시작하면 막돌확보와 운반 등 모든 작업공정이 치차처럼 맞물려 추진되여야 하는데 부속품, 연유를 비롯한 자재보장조건도 어려웠다.
홍정남, 백성남동무를 비롯한 지휘관들의 가슴은 타는듯 안타까왔다.
간석지건설을 집중적으로 내밀수 있는 계절적공간인 겨울철에까지 1차물막이공사를 끝내지 못하면 당중앙전원회의 결정에 반영된 이 공사를 제기일에 끝낼수 없었다.
그리하여 지난해 10월 양촌간석지 1차물막이공사와 관련한 협의회가 열리였다.협의회에서 한 홍정남동무의 이야기는 참가자들을 세차게 격동시키였다.
물론 난관이 한두가지가 아닌것만은 사실이다.그러나 우리에게는 당이 제시한 간석지건설시간표가 정해져있다.조건때문에 공사기일을 보장하지 못한다는것은 인민군대의 기질에 맞지 않는다.만일 총포탄이 우박치는 전장이라면 조건을 따지겠는가.간석지건설장을 불과 불이 오가는 전장으로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방도가 나온다.
지휘관들은 정신을 번쩍 차리였다.
간석지건설은 단순히 경제실무적인 과업이 아니라
결국 협의회에서는 1차물막이공사를 년말까지 한달동안에 끝내기로 하였다.
최천일, 김철진, 김영성동무를 비롯한 책임성이 높고 능력있는 지휘관들이 현장에 파견되였다.
즉시 측량을 선행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조직사업과 함께 도로, 가설건물건설, 도갱굴진 등 준비작업이 진행되였다.
그러나 시작부터 난관이 막아나섰다.
제방의 한쪽 끝에는 도로가 개척되여 화물자동차들과 굴착기들이 현장에 와닿았지만 반대쪽으로는 건설장비들이 들어갈수 없었다.70여리나 되는 대부분의 구간은 길이 험한데다가 일부 구간은 바다물에 잠기였던것이다.
만일 륜전기재가 바다물에 잠긴 이 구간을 통과하자면 썰물때에 기동해야 하는데 자칫 잘못 들어서면 돌이킬수 없는 후과가 초래될수 있었다.
모두가 안타까움으로 모대기고있던 그 시각 감탕층의 상태를 알아보고 돌로 도로표식을 하며 륜전기재가 다닐 길을 개척해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수송대 대장 리현철동무였다.그가 표식한 길을 따라 굴착기, 삽차 등 륜전기재들이 한치한치 전진하였다.
그무렵 채석장에서는 첫 대발파를 위한 소갱굴진이 치렬하게 벌어지고있었다.
발파구멍 한개를 뚫는데 정알 두개가 소비될 정도로 굳은 암반층이 앞을 가로막는가 하면 진득진득한 질메흙층도 나졌다.
대부분의 군인들이 처음 착암기를 잡다보니 일자리를 내기 헐치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싸우는 고지에서 갱도를 뚫으며 전투를 진행한 전화의 화선병사들의 그 정신과 투지로 합리적인 착암방법을 배우면서 낮과 밤이 따로없이 끊임없는 공격전을 들이댔다.
그러던 어느날 이른새벽 막장으로 들어서던 군관 최금성동무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이미전에 어느한 갱에서 발파구멍을 다 뚫은 박경일, 김은광동무를 비롯한 군인들이 다른 갱에서 착암을 하고있었던것이다.
발파후 버럭처리를 하자면 2~3시간 걸리는데 그 시간마저 아까왔던것이다.
그때부터 갱에서는 련속천공, 련속발파소리가 날마다 높이 울리였으며 하루 발파회수가 종전보다 2회나 더 늘어났다.채석장의 1분1초는 이렇게 흘러갔다.
마침내 첫 대발파를 보장한 군인건설자들은 사기충천하여 방조제쌓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들은 앞으로 얼마나 더 어려운 시련과 난관들이 자기들의 앞길을 가로막아나서게 되겠는지에 대해서는 다 알수 없었다.
명령관철, 이는 우리의 생명
우리가 군인건설자들의 투쟁과정을 취재하면서 커다란 격정속에 느낀것이 있었다.
이들의 일당백의 공격정신이야말로 사나운 날바다를 휘여잡을만큼 굳세고 강렬하다는것이였다.
평균 3일에 한차례씩 진행된 대발파의 폭음이 건설장을 련속 들었다놓는 속에 하루에 60여m, 최고 80여m씩 기세좋게 뻗어나가는 방조제를 따라 붉은기들이 나붓기고 그 기발아래서 맹렬한 공격전이 벌어졌다.
운전사들이 매일 평균 20시간씩 만가동하며 수백리를 달릴 때 다른 군인건설자들은 병실로 오가는 시간마저 아까와 칼바람부는 채석장주변에 천막을 치고 소갱굴진을 다그쳤다.
날마다, 시간마다 새 기록, 새 혁신이 창조되는 속에 방조제는 하루가 다르게 뻗어나갔다.
그러한 때 뜻밖의 난관이 기세차게 내닫던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무른 감탕층에 의한 압출현상으로 방조제가 내려앉으면서 그우로 달리던 자동차가 갑자기 바다물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하였다.
분초를 다투는 위급한 찰나 운전공 김명조, 김경남동무들이 굴착기와 삽차를 몰고와 바다물에 점점 깊숙이 들어가는 화물자동차를 한치한치 끌어내기 시작하였다.악전고투끝에 마침내 바다로 빠져들던 화물자동차가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였다.
난관이 막아나설수록 하루빨리 당에 완공의 보고를 드리려는 이들의 충성의 열도는 더더욱 높아만 갔다.
그러던 어느날 밤이였다.그날따라 세찬 눈보라까지 몰아치면서 한치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제방에 나왔던 군관 호명철, 김창혁동무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토량을 실은 자동차가 막돌을 부리기 위해 뒤로 움직일 때마다 전지불빛을 비쳐주며 운전사에게 신호를 하고 큰돌도 치우는 군인건설자가 있었다.가까이에 가보니 입대한지 얼마 안되는 병사인 함위력동무였다.
한겨울의 바다바람을 막을데가 없는 제방우에서 온몸이 꽛꽛이 얼어드는것을 알면서도 막돌하차를 위해 신호수의 임무를 책임적으로 수행하고있는 병사의 모습을 바라보는 지휘관들의 눈굽은 뜨거워졌다.
그럴수록 지휘관들은 수시로 현장에 내려와 병사들의 생활에 깊은 관심을 돌리였다.무엇이 하나 생겨도 그들에게 안겨주며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었다.그런 소중한 동지애가 있었기에 군인건설자들은 살을 에이는듯한 강추위속에서도 공사를 중단없이 내밀수 있었다.
드디여 마감막이의 날은 다가오고있었다.
지난해 12월 26일 마감막이시작을 알리는 3만산발파의 폭음이 간석지건설장을 들었다놓았다.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 공격명령을 기다리고있던 화물자동차들이 연방 막돌을 실어날랐다.
1m 또 1m… 방조제는 한치한치 전진해나갔다.
그런데 물흐름을 막고 낮아진 구간에 성토공사를 한창 진행하고있을 때에 세찬 파도와 물압력에 의해 애써 쌓아놓은 60여m의 제방이 뭉청 끊어졌다.갓 입대한 병사들이 주먹으로 눈물을 닦았고 지휘관들의 조갈이 든 입술에서도 신음소리가 새여나왔다.
이대로 주저앉는단 말인가.그렇게 되면 한달동안에 1차물막이공사를 끝내겠다고 당앞에 다진 맹세를 지킬수 없었다.더우기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심하게 나타나는 바닥패임현상으로 하여 마감막이공사완공의 기일은 기약할수 없이 처질수 있었다.
하루를 열흘, 백날맞잡이로 내달리려는 이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도저히 허용될수가 없었다.
군인건설자들모두가 한몸이 그대로 육탄이 되여서라도 다시 방조제를 쌓고 공사기일을 앞당기기 위해 떨쳐나섰다.
바로 그날은 새해의 첫아침이였다.
만단의 준비를 갖춘 화물자동차운전사들은 여느때보다 더 많은 돌과 흙을 싣고 방조제우를 달리고 또 달리였다.
10m, 5m, 1m…
드디여 마감막이공사가 성과적으로 결속되여 사품치던 바다물이 흐름을 멈추었다.
방조제우로 달려나온 지휘관들과 군인건설자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평양의 하늘가를 우러르며 충성의 보고를 드리였다.
그들의 얼굴마다에는 당결정을 관철하였다는 크나큰 긍지와 자부로 하여 뜨거운것이 흘러내렸다.
그 시각 이들에게는 공사속도를 높이기 위해 아글타글 애쓰던 나날의 사연들이 감회깊이 돌이켜졌다.
발파구멍을 다 뚫기 전에는 아예 갱밖으로 나올념을 하지 않는 군인건설자들이 늘어난 이야기, 썰물때에 한㎥의 토량이라도 더 실어나르기 위해 운전사들이 점심시간마저 잊고 경쟁적으로 물동을 실어나르다보니 점심식사가 저녁식사로 되였다는 이야기, 굴착기고장으로 막돌운반이 지장을 받고있다는것을 알고 그 밤중으로 수백리길을 달려와 부속품을 보장해준 부대지휘관들의 남모르는 수고에 대한 이야기…
치렬한 격전을 방불케 하는 이들의 헌신적투쟁의 이야기들을 어찌 글로 다 표현할수 있으랴.
정녕 양촌간석지 1차물막이공사의 하루하루는 당결정을 어떻게 관철해야 하는가를 영웅적실천으로 보여준 긍지높은 나날이였다.
한몸이 그대로 방조제가 되여서라도
이들은 지금 그 어떤 난관이 막아나서도 당에서 구상한 간석지건설목표를 반드시 점령할 필승의 의지에 넘쳐 위훈의 자욱을 더욱 힘차게 내짚고있다.
글 본사기자 정성일
사진 리동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