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3일 월요일  
로동신문
농촌마을들에서 울려나오는 격정의 목소리

2024.3.3. 《로동신문》 2면


《나날이 행복이 커만 갑니다》

 

어머니당의 사랑속에 외진 산골인 우리 갑산군에도 농촌진흥의 새시대가 펼쳐지고있다.

사실 수도 평양에 새 살림집들이 우후죽순처럼 일떠서고 새집들이를 하는 근로자들의 모습을 TV화면으로 볼 때마다 못내 부러워하면서 우리 군에도 언제면 저런 희한한 새집들이 일떠설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공연한 왼심이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호소를 받들고 우리 농장에 수도 평양의 당원대대가 진출하여 지금 두해째나 희한한 새 살림집들을 련이어 일떠세우고있으며 올해부터는 문화회관과 종합편의, 병원을 비롯한 교양건물, 봉사건물과 같은 40여동에 달하는 생산건물과 공공건물들도 본보기로 일떠서게 된다.

한 일보다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나에게도 지난해에 새 살림집이 차례졌다.

꿈만 같은 행복을 받아안은 격정의 그날 나는 축복받은 이 땅에 보답의 가을을 안아올 결심을 다지고 또 다지였다.나는 지난해에 이악하게 일하여 그전에는 다수확을 기대할수 없었던 저수확지에서 논벼는 정보당 10t, 강냉이는 정보당 13.5t이나 내게 되였다.

얼마전 우리 집에 귀여운 아들이 태여나 기쁨은 더욱 커만 가고있다.

정녕 어머니당의 한량없는 사랑의 손길은 두메산골인 우리 고장에도 속속들이 미치여 나날이 행복이 더해만 가고있으니 위대한 그 품에 안겨사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가.

불밝은 새 살림집을 바라볼 때면 나는 심심산골에서 사는 우리 갑산군인민들도 모두 한품에 안아 한없는 사랑으로 따뜻이 보살펴주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대해같은 은정에 기어이 보답할 결의를 가다듬군 한다.

갑산군 사평농장 제3작업반 분조장 리억철

 

《어머니당의 품에선 모든 꿈이 다 이루어집니다》

 

우리 문양리에 새 농촌마을들이 건설된지 이제는 1년이 되였다.

구배가 급하던 도로도 시원하게 뻗었고 들썩이던 건설장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크나큰 감격과 흥분속에 새집을 받아안던 그날의 격정만은 오늘도 나의 가슴에 그대로 높뛰고있다.

솔직히 우리 부부는 농장마을에 희한한 문화주택들이 일떠서고 그 배정이 시작될 때 새집의 주인이 되고싶은 은근한 마음을 도저히 눅잦힐수 없었다.

갓 살림을 이루고 다른 집에 얹혀살다보니 이모저모로 불편한 점이 없지 않았으며 새집에서 새살림을 아담하게 꾸려보고싶은 생각이 자꾸 갈마들었던것이다.

그러나 농장의 발전을 위해 내가 한 일은 너무도 적었고 더우기 불리한 조건에서도 힘있게 진행된 살림집건설에 막돌 한개, 흙 한삽 기여하지 못한 나였다.

그런데 글쎄 우리 가정에도 당의 따사로운 해빛이 비쳐들줄 어찌 알았겠는가.

나라에서는 우리에게도 아담하고 현대적인 문화주택을 다른 사람들과 꼭같이 한날한시에 안겨주었다.

새집으로 들어서며 우리는 이 나라의 천만자식들을 모두 안아 보살펴주는 어머니당의 품에서는 바라는 모든 꿈이 다 이루어진다는것을 다시금 깊이 절감하였다.

새집에 보금자리를 옮긴 그날 밤 우리 가정은 남들보다 열배, 백배 더 많은 일을 하여 나라의 은정에 꼭 보답하자고 맹세를 다지고 또 다지였다.

우리는 농사를 잘 짓는것으로 새집들이의 그날에 다진 맹세를 기어이 실천해나가겠다.

곡산군 문양농장 제5작업반 농장원 홍일심

 

가셔진 아들의 부러움

 

얼마전 군관학교를 졸업한 우리 아들이 휴가를 받고 집에 들리였다.

그날 오후에 도착한다던 아들은 어둠이 깃들어서야 집에 들어섰다.

알고보니 마을앞산에 올라가 변모된 고향의 모습을 보느라 늦어졌다는것이였다.

집에 들어서기 바쁘게 아들은 새집들이풍경이 펼쳐진 우리 마을의 모습을 TV화면으로 보았었는데 이렇게 직접 와서 전변된 고향마을의 모습을 보고나니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다고 하면서 연방 감탄을 터치는것이였다.

우리 부부도 희한한 살림집을 받아안은 소식을 아들에게 제일먼저 알리고싶었는데 이렇게 휴가를 받고 집안에 척 들어서는 끌끌한 아들의 모습을 보게 되니 기쁨을 금할수 없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아들에게 새집에 입사하여 있은 일들에 대하여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날 아들은 자기는 군대에 입대하기 전에 한학급동무의 집에 가보고 나도 이렇듯 넓은 집에서 살아보았으면 하고 부러워하였는데 이렇게 우리 부모도 새집을 받았으니 이제는 더 부러운것이 없다고 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우리 아들의 그 부러움을 어머니당에서 가셔주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휴가기간을 보내는 아들과 함께 우리는 집주변에 과일나무들도 새로 더 심었고 창가에 화분도 놓아 생활환경을 일신시켰다.

나는 자기가 사는 집과 마을을 자기 손으로 훌륭히 꾸려야 고향에 대한 자식들의 긍지가 영원한것으로 된다는것을 명심하고 새집을 알뜰히 관리하며 평범한 농장원들에게도 도시부럽지 않은 새 생활을 마련해주고있는 당의 사랑에 다수확으로 기어이 보답하겠다.

강남군 장교농장 제3작업반 분조장 김명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