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9월 20일 금요일  
로동신문
애국자가 많은 나라
역시 새시대 천리마정신이 창조된 공업도가 다르다
당정책관철에서 전진의 보폭을 힘있게 내짚고있는 함경남도안의 여러곳을 돌아보고

2024.3.19. 《로동신문》 4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선혁명은 하늘이 주는 신비한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일편단심 당을 따르고 옹위하는 영웅적 김일성-김정일로동계급을 비롯한 우리 인민의 위대한 힘에 떠받들려 전진합니다.》

함남사람!

이렇게 불러보니 잊을수 없는 모습들이 눈앞에 어려온다.

새 조국건설시기 증산돌격운동의 앞장에 섰던 흥남의 로동계급, 당이 안겨준 대담성으로 보수주의와 기술신비주의에 철추를 내린 룡성사람들과 온 나라에 공산주의소대로 이름떨친 백금산의 7호굴착기영웅소대…

나라가 비약의 큰걸음을 내짚어야 할 때마다, 혁명앞에 조성된 준엄한 난국을 헤쳐나가야 할 때마다 앞장에서 우리 당을 충직하게 받들어왔고 오늘은 새시대 천리마정신을 창조한 나라의 공업도, 이 력사의 고장이 지금 애국열로 세차게 끓어번지고있다.

새시대 천리마정신의 봉화를 지펴올린 룡성은 물론 굴지의 대화학공업기지와 유색금속광물생산기지들에서도, 전국에 이름높은 과수와 축산, 수산기지들 그리고 평범한 농촌마을들에서도 당결정관철을 위해 온넋을 다 바쳐가는 애국자들을 만날수 있었다.

정녕 함남은 전체 인민이 《애국으로 단결하자!》는 구호를 높이 들고 국가부흥의 새 지평을 향하여 힘차게 전진해나가는 우리 조국의 축도와도 같다.

 

드높은 애국열로 끓는 로동계급의 도시에서

 

《기계를 낳는 어머니공장》, 《힘있는 기업소》라는 긍지높은 부름과 더불어 우리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져있고 오늘은 새시대 천리마정신의 고향으로 더더욱 그 이름 떨치는 룡성기계련합기업소,

함경남도에 대한 우리의 기행은 우리 나라 굴지의 기계공업기지인 여기 룡성에서부터 시작되였다.

구내에 들어서니 제일먼저 안겨온것은 룡성의 자랑찬 연혁사를 보여주는 대형직관판들이였다.

그 직관판들에 천리마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수십년간 기업소에서 배출된 영웅들과 공로자들 그리고 대형압축기생산에서 특출한 위훈을 세운 로력혁신자들의 사진과 위훈자료들이 소개되여있었는데 그것을 보느라니 여기 룡성이야말로 정말 애국자가 많은 기업소라는 생각이 절로 갈마들었다.

우리가 먼저 찾은 곳은 대형공작기계직장이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련합기업소의 김영진기사장을 만났다.대형압축기를 생산하여 당에 기쁨을 드린것을 축하한다고 하는 우리에게 그는 이 모든것은 다 당에서 믿어주고 내세워주었기때문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기술신비주의를 타파한다는것이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그 나날 우리는 남에 대한 의존심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제집에 못 하나 제대로 박을수 없다는것을 절감했습니다.이제는 자력갱생정신이 우리 룡성로동계급모두에게 체질화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한 종업원을 가리키며 저 청년이 보링반을 비롯한 7가지 기대를 능숙하게 다루어 온 기업소를 놀래운 보링공 최국진동무라고 하는것이였다.

최국진동무는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는것도 느끼지 못한채 작업에 열중하고있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에게 직장일군은 그의 아버지도 기업소에서 일한다고,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고 저렇게 애쓰는것을 보니 정말 기특하고 대견하다고, 더 기쁘게 생각되는것은 최국진동무만이 아닌 기업소의 모든 청년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생산에서 큰 몫을 해제끼고있는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선군압축기직장의 청년들도 다기대운동을 벌리고있다는 그의 말에 이끌려 선군압축기직장으로 간 우리는 그들을 만나보지 못하였다.직장에서 급한 일이 제기되자 모두 그리로 갔던것이다.

아쉬운 마음으로 현장을 돌아보는 우리의 눈가에 즐비하게 늘어서있는 압축기들이 보였다.직장일군은 그 압축기들에도 직장에서 제일 무거운 짐을 지고 달리는 우리 청년들의 깨끗한 애국심이 비껴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온 련합기업소가 대상설비생산으로 끓을 때 우리 청년들은 하루작업이 끝난 후에도 현장에 남아 다른 기대공의 선반을 동시에 돌리였습니다.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당정책을 관철하기 위해서라면 자기 수준과 능력도 초월하는것이 진짜충성이고 애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군 하였습니다.》

우리는 흥남비료련합기업소에로 기행길을 이어갔다.

우리와 만난 련합기업소일군은 지금 온 흥남이 룡성의 로동계급을 따라배워 비료생산에서 혁신을 일으키기 위해 끓고있다고 하면서 어느한 직장 종업원들의 운전공일지를 보여주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말씀을 첫페지에 정중히 모신 일지에는 시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 노래 《내가 지켜선 조국》의 가사와 함께 흥남의 로동계급이 사랑하는 유명한 시가 적혀져있었다.《다음교대를 위하여》라고 쓴 고정란에는 자기 교대의 운전정형과 함께 다음교대를 위하여 발휘한 소행들이 씌여져있었다.

흥남로동계급이 지닌 깨끗한 량심의 기록장, 애국의 기록장과도 같은 운전공일지, 그것을 보느라니 련합기업소에서 우리가 처음으로 만났던 한 종업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근 20년세월을 압축기운전공으로 성실히 일해오고있는 합성직장의 김원철동무, 그가 압축기운전공이 된데는 가슴뜨거운 사연이 있었다.

주체54(1965)년 2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흥남비료공장(당시) 합성직장 당세포총회를 지도해주시였다.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압축기운전공들은 비행사들처럼 귀중한 사람들이라고 하시며 압축기운전공들이 대를 이어 압축기를 운전하도록 할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

뜻깊은 그날의 이야기를 압축기운전공이였던 아버지에게서 들으며 자란 김원철동무는 자기도 앞으로 꼭 압축기운전공이 되리라 굳게 다짐하였다고 한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된 제2차 전국천리마작업반운동선구자대회에 참가하였던 천리마기수의 아들인 화학기계분공장 작업반장 김광성동무를 비롯하여 아버지가 섰던 초소에 아들이 서고 어머니가 돌리던 기대를 딸이 지켜가는 가정들과 비료증산을 위해 한생을 묵묵히 바쳐가는 참된 인간들을 우리는 련합기업소의 어느 일터에서나 만날수 있었다.

우리는 이런 훌륭한 인간들을 나라의 손꼽히는 대화학기지인 2.8비날론련합기업소와 성천강전기공장, 흥남전극공장을 비롯한 어느 공장, 어느 기업소에서나 볼수 있었다.일터는 서로 달랐지만 그들모두의 가슴마다에는 룡성에서 타오른 새시대 천리마정신의 봉화는 나라의 공업도인 함경남도에서 가장 세차게 타올라야 한다는 뜨거운 일념이 깊이 간직되여있었다.

항상 조국을 마음속에 안고 당의 구상과 의도를 맨 앞장에서 받들어온 이렇듯 충성스럽고 애국적이며 고지식하고 강직한 로동계급의 대부대가 있는 동해의 공업도시에서 새시대 천리마는 더 높이 나래쳐오르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으며 우리는 다음목적지에로 기행길을 이어갔다.

 

우리 고장, 우리 마을을 제일 눈부시고 훌륭하게

 

우리는 함주군으로 향했다.함주군에서 진행된 지방공업공장건설착공식에 대한 소식으로 온 함남이 끓고있었기때문이다.

지방공업공장건설장에서 우리와 만난 군의 한 일군은 《지방발전 20×10 정책》에 대한 인민들의 반향이 대단하다고, 군인건설자들이 도착하기 바쁘게 온 군이 애국열기로 세차게 끓고있고 모든 일군들은 원료기지조성을 위한 사업으로 발이 닳도록 뛰고있다고 격정에 넘쳐 이야기하였다.만나는 사람마다 당에서 제일먼저 우리 군에 현대적인 지방공업공장들을 건설하도록 하여주었는데 공장들이 앞으로 은을 내게 하는데서도 우리 군이 선구자가 되겠다고 결의다지는 불같은 목소리들을 새기며 우리는 평풍덕염소목장으로 향했다.

읍에서 목장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산길을 따라 차를 타고 얼마간 달려 고개마루에 오르면 더 높은 봉우리가 우리앞에 다가들었고 그런 고개를 넘고 또 넘어서야 목장의 한 분장에 이를수 있었다.

그런 외지고 험한 곳에서 당의 육아정책을 받들어가는 사람들가운데는 동봉분장 분장장 리선희동무도 있었다.사실 그는 함주군이 고향이 아니였다.평안남도 은산군에서 태여난 그는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에 당시까지만 하여도 무인지경이나 다름없던 이곳에 탄원하였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생산한 젖제품을 먹으며 우리 군의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는것을 볼 때, 함주군이 육아정책관철에서 앞장서고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가 나에겐 제일 행복하고 또 긍지스러운 때입니다.태를 묻어야만 고향이겠나요.마음을 묻어야 고향이지요.》

그 말을 들으니 련포온실농장 종업원이 했던 말이 되새겨졌다.그는 처음 온실농장에 가게 되였을 때는 고향을 떠난다는 생각에 서운했지만 정작 와보니 고향의 집보다 더 좋은 집이 기다리고있었다고, 남새를 더 많이, 더 싱싱하게 키워 우리 당의 은덕에 꼭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온 나라에 유명한 금진강6호청년발전소가까이에서 우리는 그 주변지역에 푸른 숲을 펼쳐놓은 선덕과수농장 조림분조 분조장 한순혜동무를 만났다.

그가 이곳에 처음 온것은 지금으로부터 근 20년전이였다.

당시 금진강청년돌격대원이였던 그의 남편은 발전소건설장에서 순직하였다.남편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돌격대제복을 입은 한순혜동무는 그때부터 언제주변의 산에 나무를 심기 시작하였다.그 나날 무슨 일인들 없었으랴.어린 자식들때문에 한생토록 조림공으로 일해온 어머니의 어깨에 무거운 짐만 더해주는것같아 괴로움의 눈물을 흘린적은 그 몇번이였던가.

하지만 그는 한해가 다르게 나무들이 커가는 모습에서, 나날이 젊어지는 고향산천의 모습에서 행복을 찾았다.

《위대한 장군님의 거룩한 자욱이 새겨진 우리 고향산천을 나라에서 제일 멋있는 고장으로 만들고싶은것이 저의 소원입니다.그날까지 나는 년로보장을 받지 않으렵니다.》

자기 고향에 대한 사랑과 그것을 영원히 빛내여가려는 굳은 결심이 비낀 그의 말에 감동을 금치 못하며 우리가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우리식 농촌문명창조의 본보기로 훌륭히 솟아난 금야군의 선경마을들이였다.

《우리 금야사람들은 이 새 살림집들을 가리켜 〈금야의 경루동〉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와 만난 금야군 사룡농장 농장원들이 한 말이였다.정말이지 온종일 보아도 또 보고싶은 아름다운 농촌풍경이였다.하지만 그보다 더 기쁘게 생각된것은 도의 곳곳에서 이런 천지개벽을 안아오기 위해 애쓰는 나날에 함경남도인민들의 가슴마다에 자기 고향, 자기 일터의 전변은 바로 당정책을 철저히 관철하는 길에 있다는 굳은 신념이 간직된것이였다.

우리는 그것을 북청군 청해농장을 돌아보면서도 잘 알수 있었다.

농장은 10여년전까지만 하여도 뒤떨어진 단위였다고 한다.하지만 최근년간 농사를 잘 지어 농장살림이 날로 윤택해지고있다.그쯘하게 꾸려진 축산반이며 기계화작업반에 즐비하게 늘어선 각종 농기계들과 운수수단들, 수영장까지 갖춘 편의봉사기지인 청해원은 군은 물론 린접지역들에도 소문이 자자하다.

이렇듯 놀라운 변화를 가져온 비결에 대하여 농장경리 조광히동무는 말하였다.당의 축산정책을 관철하는것으로부터 시작되였다고, 축산으로 일떠서던 나날 당정책의 정당성을 깊이 절감한 농장원들이 이제는 농사를 지어도, 건설을 해도, 나무를 심어도 당에서 하라는대로만 하는 당정책신봉자들로 되였다고.

이런 목소리는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전원회의가 보내는 감사를 받아안은 허천군의 농업근로자들속에서도 울려나왔다.

지난해 농사를 짓는 과정에 《척박한 땅에서 이 정도 소출만 내도…》, 《우리야 산골농장인데…》라는 관념을 싹 털어버리고 당정책대로만 하면 설사 모래땅이 아니라 돌밭이라 해도 다수확을 낼수 있고 심심벽촌에 산다 해도 자기 사는 고향을 남부럽지 않게, 제일 멋있게 꾸릴수 있다는 신념을 간직한 이들의 열의와 각오는 정말 대단하였다.

당정책에 대한 절대적인 신념을 지니고 자기 고향과 일터를 당이 바라는 높이에서 제일 눈부시고 훌륭하게 꾸려갈 일념에 넘쳐있는 애국자들의 모습을 망막에 깊이 새기고 우리는 산악협곡도시가 펼쳐진 검덕지구로 기행길을 이어갔다.

 

희한한 산악협곡도시의 주인들

 

검덕으로 가는 길은 정말 멀고 험했다.올려다보아도 깎아지른 절벽이요, 아래를 보아도 아찔한 벼랑이였다.굽이굽이 산길을 돌며 한동안 달리니 드디여 웅장하게 일떠선 산악협곡도시의 자태가 안겨왔다.깊은 협곡을 따라 다양한 형태의 소층, 다층살림집들이 즐비하게 펼쳐진것이 정말이지 희한하기만 했다.

눈앞에 펼쳐진 천지개벽의 모습에 못지 않게 놀라움을 자아내는것은 이곳 사람들의 성장이였다.

검덕광업련합기업소의 한 일군은 우리에게 최근 몇해동안 광부들의 일본새와 투쟁기풍이 눈에 띄게 달라졌는데 새세대 젊은 혁신자들이 속속 태여나 이제는 고경찬영웅소대와 같이 이름난 소대들에 경쟁을 거는 정도라고 이야기했다.

그들을 만나기 위하여 우리는 금골광산으로 향했다.

인차를 타고 20리를 가고 수직승강기를 타고 또 수백m를 내려가니 금골광부들이 일하는 막장이 나졌다.

우리는 그곳에서 4.5갱 리성일제대군인청년굴진소대원들을 만났다.지난해 전승 70돐을 맞으며 5년분계획을 완수하여 온 나라에 알려진 그 소대에서는 올해에 들어와서도 2월말까지 상반년계획을 완수하고 매일 300%의 굴진실적을 기록하고있었다.그 비결을 묻는 우리에게 리성일소대장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막장년한이 얼마 안되는 우리도 오랜 광부들과 나란히 당의 은정이 깃든 살림집에서 삽니다.당의 사랑을 같이 받았으면 보답도 꼭같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그는 굴진명수 유은철동무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유은철동무는 지난해 12월 안정민영웅을 비롯한 오랜 광부들이 사는 《혁신자아빠트》에 보금자리를 폈다.그후부터 소대원들은 유은철동무가 그들을 닮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는것을 한두번만 보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는 그들이 일하는 막장에서 소대경쟁도표를 보았다.유은철이라는 이름우의 붉은 줄은 놀랍게도 8월까지 쭉 뻗어있었다.그런데 그것을 보며 리성일소대장은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뒤떨어진 동무들의 생산실적을 높여주기 위해 피타게 노력해서 그렇지 사실 그가 한 일을 그대로 옮겨놓으면 벌써 12월까지 붉은 줄이 오르고도 남았을텐데.》

고귀한 집단주의적인생관의 체현자만이 오늘의 선구자, 혁신자가 될수 있음을 그의 말에서 다시금 새겨안으며 우리는 룡양광산으로 향했다.

검덕에서 리성일제대군인청년굴진소대가 두각을 나타내고있을 때 룡양광산에서는 그전에는 별로 이름없던 4.5갱의 최국채준소대가 기세를 올리고있었다.이에 대하여 최국소대장이 들려준 이야기는 참으로 감동적이였다.

그들이 살고있는 살림집들은 지난해에 건설된것으로서 그곳에서 제일 멋있는 다락식살림집들이였다.검덕지구에 건설하는 살림집들이 해마다 멋있어지다나니 광산에서 제일 늦게 살림집을 배정받은 이들이 제일 좋은 집에서 살게 된것이였다.집구경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고 오는 사람마다 부러움을 금치 못해하였다고 하며 소대장은 그때의 심정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그때마다 부끄러웠습니다.내가 정말 그런 집에서 살 자격이 있는가 하는 생각으로 잠을 이룰수 없었습니다.소대원들의 심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렇게 분발한 소대원들이였다.

그런 가슴뜨거운 사연들을 전해들으며 우리는 생각했다.

검덕의 로동계급에게 문명하고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주시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바쳐가신 로고와 헌신을 떠나 어찌 희한한 산악협곡도시가 펼쳐질수 있으며 지방이 변하는 위대한 변혁의 시대가 펼쳐질수 있었겠는가.

그 은덕이 너무도 크고 너무도 고마와 보답하지 않고서는 견딜수 없고 더 많은 일을 하지 않고서는 잠들수가 없는것이 검덕사람들을 비롯한 함남인민들의 한결같은 심정이였다.

하기에 우리의 눈에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펼쳐주신 이 산악협곡도시가 애국자를 키우는 거대한 교정과 같이 안겨왔다.그 교정에서 애국자들의 대부대가 끊임없이 태여날것이라는것을 확신하며 우리는 기행길을 마치였다.

* *

그 어디에 가도, 그 누구를 만나보아도 당결정관철을 위한 투쟁에서 기수가 되고 선구자가 되려는 하나의 열의로 고동치는 함경남도,

역시 새시대 천리마정신을 창조한 공업도가 다르긴 달랐다.

당의 믿음을 삶의 명줄로 간직하고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한 길에서 생의 희열과 보람을 찾는 충신, 애국자들이 무성한 숲을 이루었기에 함남은 언제나 새로운 시대정신창조의 앞장에서 힘차게 달릴것이다.

본사기자 김송이

특파기자 김경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