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3.22. 《로동신문》 5면
사진속의 녀성은 얼마나 행복한 모습인가.
비록 특류영예군인의 몸이지만 귀여운 딸애의 어머니가 되여 사람들의 열렬한 축하속에 밝게 웃고있는 황해제철련합기업소 용광로직장 선동원 김청동무, 그 모습을 보고 어찌 10년전에 벌써 의학적인 사형선고를 받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할수 있으랴.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서로 돕고 이끌며 단합된 힘으로 전진하는 우리 사회의 본태와 대풍모를 적극 살려나가야 합니다.》
남이야 불행하든, 고통을 겪든 상관없이 오직 자기자신만을 생각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라면 어떻게 하반신마비에 난치성질병까지 겹친 김청동무에게 오늘과 같은 기적이 일어날수 있겠는가.
남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여기고 고락을 함께 나누는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미덕의 화원, 우리의 사회주의사회에서 살기에 그는 그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혈육과도 같은 뜨거운 사랑과 정속에 복받은 인생을 누려가고있는것이다.
당보를 품고 찾아온 제대병사
몇해전 특류영예군인의 몸으로 황철로동계급을 철강재증산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는 선동길을 이어가고있는 김청동무에 대하여 소개한 당보의 기사를 본 각지 일군들과 근로자들은 감동을 금치 못해하였다.그중에서도 기사를 읽고 또 읽으며 특별히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는 한 인민군군인이 있었다.그가 바로 정광명동무였다.
보통사람같지 않은 자기의 육체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병사시절의 그 정신과 기백으로 당과 조국을 위한 복무의 길을 변함없이 이어가고있다는 처녀, 온몸을 파고드는 아픔을 남몰래 감추며 억척같이 노래를 부르고있을 처녀의 모습이 눈앞에 삼삼히 어려올수록 그는 군기앞에서 다졌던 엄숙한 맹세를 변함없이 실천해가고있는 어제날 녀병사에게 힘을 보태주고싶은 마음을 금할수 없어 전우의 심정으로 편지를 썼다.
그가 보내는 편지는 달마다 김청동무에게 전해졌다.그렇게 1년 6개월이 흘러 어느덧 제대명령을 받은 정광명동무는 고향보다 먼저 송림시로 찾아갔다.얼마나 보고 또 보았는지 보풀이 일대로 인 신문을 품속에서 꺼내보이며 김청동무의 노래는 철의 기지 사람들뿐 아니라 방선초소를 지켜선 우리 병사들의 가슴도 세차게 울려주군 하였다고 격정에 넘쳐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는 얼마나 절절했던가.
그가 어떤 결심으로 찾아왔는가를 알게 된 김청동무와 부모는 눈물이 나도록 고마왔다.하지만 김청동무의 일생의 길동무가 되려는 정광명동무의 요구를 쉬이 받아들일수 없었다.금시라도 그를 한품에 덥석 안아주고싶었지만 김청동무의 부모는 두부모를 자르듯 일축해버렸다.
《자네 맏아들이라지.그러니 부모의 기대가 정말 클거네.그런 남의 집 귀한 아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변변치 못한 딸을 맡길수 있겠나.》
하지만 정광명동무는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그 어떤 동정심에서 김청동무와 한생을 같이하려고 결심한것이 아닙니다.김청동무야말로 정신도 마음도 가장 아름다운 녀성이라고 생각되기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한생의 배우자를 선택하는것은 인간의 권리이다.누구나 훌륭한 사람과 사랑을 나누며 인생의 먼길을 아름답게 수놓아가기를 원한다.
비록 육체는 불구가 되였어도 당과 조국앞에 지닌 자기의 의무앞에 끝까지 성실하려는 김청동무의 고결한 인격에 저도 모르게 끌리는 마음을 억제할수 없었기에 정광명동무는 그와 일생을 같이할 쉽지 않은 결심을 하게 되였던것이다.아들의 장한 결심에 정광명동무의 어머니도 전적으로 공감했다.
정광명동무와 김청동무의 결혼식은 온 송림시의 경사로 되였다.
송림시당위원회 책임일군의 방에서는 특류영예군인처녀의 결혼식문제를 놓고 여러번이나 협의회가 열렸다.황철의 자랑인 김청동무도 우리의 친딸이고 그의 영원한 길동무가 되겠다는 고마운 제대군인총각도 우리의 친아들이라고 하면서 송림시당위원회 일군들이 결혼식과 가정생활에 필요한것을 빠짐없이 준비해나갈 때 시안의 기관, 기업소의 일군들과 주민들은 또 그들대로 떨쳐나 모든것을 다하자고 하며 성의껏 기념품을 마련하였다.
얼마후 온 송림시의 관심속에 특류영예군인처녀의 결혼식이 진행되였다.
뜻깊은 결혼식날에 자기들의 일터에 찾아온 김청동무를 맞이한 황해제철련합기업소 용광로직장의 용해공들은 그가 앉아있는 사륜차를 번쩍 떠받들고 출선을 앞둔 용광로가까이로 다가갔다.그리고 장쾌한 출선의 불보라로 그들의 결혼식을 축하해주었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송림시사회급양관리소 황철용해공국수집에는 행복한 새 가정을 이루는 정광명, 김청동무에게 열렬한 축하의 인사를 보내주기 위해 달려온 수많은 사람들이 어깨성을 쌓고있었다.그날 제대군인신랑신부에게 술을 부어주며 송림시당위원회의 책임일군은 말하였다.
《검은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아들딸 많이 낳고 행복하게 사시오.동무들이야말로 누구보다도 더 큰 행복을 누려야 할 사람들이요.》
책임일군의 말에 결혼식에 참가했던 모든 사람들이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정광명, 김청동무는 그들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행복한 생활을 꾸려나갈 마음을 담아 병사식으로 힘있게 경례를 하였다.그들의 경례, 그것은 미덕과 미풍이 공기처럼 흘러넘치는 사회주의 내 조국, 사랑과 정으로 굳게 결합된 사회주의대가정에 드리는 뜨거운 인사였다.
그에게 내가 필요하다
지난해 6월 어느날 김청동무에 대한 진찰을 진행하던 송림시병원 소아과 과장 박은실동무는 흥분된 마음을 걷잡을수 없었다.그는 저도 모르게 기쁨에 넘쳐 방안이 떠나갈듯 소리쳤다.
《우리 청이의 몸에서 새 생명이 자라고있어요!》
김청동무는 그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영영 이룰수 없다고 생각했던 꿈, 자기를 위해 모든 고생을 달게 여기며 밤낮으로 지성을 바쳐가는 남편을 볼 때마다 자기들에게도 자식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고 마음속으로 바라고바라던 그 꿈을 드디여 이룰수 있게 되였다는 생각에 김청동무는 오열을 터쳤다.
그러는 그의 손을 꼭 잡고 머지않아 우리 청이도 어머니가 된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고 진정을 터놓는 박은실동무의 모습을 바라보는 정광명동무의 눈가에도 뜨거운것이 맺히였다.
김청동무가 제대되여온 그날부터 친혈육의 심정으로 건강과 생활을 각근히 돌봐준 의료일군, 때없이 심하게 앓는 그의 소생을 위해 식솔들보다 더 안타까와하며 발이 닳도록 뛰여다닌 그의 지성이 꿈속에서도 믿어지지 않을 기적과도 같은 현실을 안아왔던것이다.
박은실동무는 김청동무의 건강에 더 각별한 관심을 돌리는 한편 그의 해산에 필요한 준비도 착실히 해나갔다.귀한 약초들을 구해다가 보약제도 만들어주고 새 아기에게 입힐 옷들도 마련했다.그렇게 온갖 지성을 다하며 혈육과 같은 뜨거운 사랑을 기울이던 박은실동무가 뜻밖에 세상을 떠날줄이야 어이 알았으랴.
정광명, 김청동무와 그의 부모는 미처 알지 못하고있었다.박은실동무가 이미전부터 불치의 병이라는 진단을 받고서도 김청동무의 곁에는 내가 꼭 있어야 한다고 하며 모진 아픔을 참아왔다는것을.
박은실동무와 영결하던 날에야 그의 가족을 통해 모든 사연을 알게 된 김청동무는 하염없이 쏟아져내리는 눈물을 삼키며 조용히 속삭이였다.선생님이 바라던대로 꼭 아이를 낳겠다고, 어머니가 되여 더 강해지겠다고.
그후 한 의료일군이 국가자료통신망 《건강》홈페지에 올린 글을 통해 김청동무에 대하여 알게 된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위해 마음을 합치였다.
그들속에는 평양시의 어느한 단위에서 의학연구사로 일하고있는 유설화동무도 있었다.난치성질병에 의한 심한 근위축에 당뇨병까지 겹쳐 임신은 했지만 도저히 순산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학적결론에 완강히 도전하며 몸안의 아기에게 영향을 줄것같아 약도 먹지 않고 심한 아픔을 가까스로 이겨낸다는 특류영예군인에 대한 소식에 접하니 도저히 밤잠을 이룰수 없었다.아직 한번도 본적은 없었지만 그에게는 송림시의 특류영예군인이 마치 피를 나눈 동생처럼 여겨졌다.
지금 그에게 내가 필요하다.그가 행복한 생활을 누릴수 있게 찾아가서 도와주자.
이렇게 결심한 유설화동무는 서둘러 길을 떠났다.그는 피부질병은 물론 당뇨병치료에도 효과가 있는 천연원료로 된 약물을 가지고 김청동무의 치료에 달라붙었다.
그의 적극적인 방조밑에 김청동무는 또다시 예전처럼 선동길에 나서게 되였다.김청동무와 함께 선동길을 걸으며 그가 어머니가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황철로동계급의 뜨거운 진정을 후덥게 새겨안을수록 유설화동무는 더욱 지성을 기울이였다.
특류영예군인의 치료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의료일군들이 떨쳐나섰던가.하루에도 몇차례씩 의사협의회를 조직하며 해산에 유리한 몸상태를 유지해주기 위해 노력하던 송림시병원과 련합기업소의 병원의료일군들, 송림시에까지 찾아와 치료를 도와준 남구주택건설사업소진료소 의사 고혜순동무, 고려약재들을 구체적인 사용방법과 함께 따로따로 포장한 봉지마다 날자와 시간까지 기록하여 보내준 청진시고려병원 의사 김광국동무…
어찌 그들뿐이랴.자기도 김청동무의 친혈육이 되여주겠다고 하면서 치료에 도움이 되는 물자들을 성의껏 마련해준 신의주시의 최향동무와 태탄군의약품관리소 로동자 고옥천동무, 평성시 두무1동의 문상희녀성, 지금도 특류영예군인가정과 한식솔처럼 정을 나누는 중구역 련화2동 76인민반 리진화동무의 가족, 때없이 자주 찾아와 가정일을 보살펴주며 치료에만 전심하라고 극진히 이르던 송림금속기술대학의 교직원, 학생들과 한인민반의 다정한 이웃들…
그렇듯 수많은 사람들이 김청동무의 집문을 두드렸고 하루에도 수없이 전화를 걸어왔다.직무와 이름도 미처 알수 없는 전국각지의 그 하많은 고마운 이들의 뜨거운 지성에 받들려 김청동무의 몸에서는 새 생명이 하루하루 커가고있었다.
어머니당의 은정어린 조치에 의하여 해산하기 몇달전부터 김청동무는 김만유병원으로 후송되여 치료를 받고 한결 호전된 몸으로 평양산원에 입원하였다.
그가 평양산원으로 옮겨온 후에도 김만유병원에서 그를 담당치료했던 과장 리영철동무와 의사 리진희동무는 자주 찾아와 필요한 방조를 주군 하였다.치료사업으로 바쁜 의료일군들에게 부담을 주는것같아 김청동무가 걱정할 때면 그들은 웃으며 이렇게 말하군 했다.
동무가 아이를 무사히 낳고 건강한 몸으로 퇴원해야 우리의 임무가 끝나게 된다고.
평양산원에서는 그의 담당의사, 담당간호원이 따로 없었다.모두가 친혈육의 심정으로 그의 치료를 도와나섰다.원장부터가 그를 위해 직접 영양식사표까지 작성하며 두팔을 걷어붙이고 치료에 달라붙었으며 2부인과와 6산과의 의료일군들도 그가 가정적인 분위기에서 마음놓고 치료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 늘 왼심을 썼다.
어느날 그가 안전하게 해산할수 있는 치료방법들을 탐구하며 문헌자료를 연구하는 6산과 과장 리철호동무에게 한 의사가 심중한 기색으로 다가왔다.우리 산원이 생겨 저런 몸상태를 가진 환자는 처음이 아닌가고, 자기도 문헌자료들을 좀 보았는데 그런 환자가 아이를 낳았다는 기록은 없더라고 하는 그에게 리철호동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녀성들이 왜 평양산원을 두고 친정집이라고 부르겠소.모든 근심은 자기 가슴에 묻고 자식의 얼굴에는 언제나 웃음만 피워주는것이 어머니가 아니요.우리 이 나라 녀성들의 친정집을 지켜선 의사들이라는것을 잊지 맙시다.》
6산과의 의료일군들은 그런 신념을 안고 김청동무의 치료에 전심했다.
너도나도 김청동무의 입맛을 돋구어주기 위해 집에서 별식을 마련해왔고 낮과 밤이 따로없이 교대로 마싸지를 해주었다.그가 신심을 잃을세라, 나약해질세라 한시도 마음을 늦추지 않고 김근혁, 안혜성동무만이 아닌 모두가 담당의사, 담당간호원이 된 심정으로 온갖 정성을 다하였다.
평양산원 의료일군들의 이렇듯 뜨거운 정성에 떠받들려 김청동무는 드디여 건강한 아이를 낳을수 있게 되였다.
새 생명을 받아안은 어머니보다 더 기뻐하며 평양산원의 의료일군들과 금성제1중학교 교원 최혜경동무를 비롯한 많은 수도시민들이 김청동무와 아기를 위해 퇴원후에 쓸 물자들까지 성의껏 마련해주었다.
아이를 낳은 다음부터 김청동무한테서는 전에없던 변화가 일어났다.창문가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가는 눈물을 쏟으며 우는것이였다.어디가 불편한가, 걱정되는것이 있는가고 묻는 의료일군들에게 그는 울먹이며 마음속진정을 터놓았다.
《너무도 죄스러워 그럽니다.내가 누굽니까.내가 무슨 큰일을 한것이 있다고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아낌없는 진정을 부어주는것입니까.그처럼 고마운 사람들을 보내주신
김청동무가 퇴원하는 날에도 그 소식을 알고 수많은 사람들이 축하의 꽃다발을 안고 찾아왔다.저마다 정말 고맙다고 거듭 인사하는 그들에게 의료일군들은 말했다.
《황철로동계급이 그처럼 사랑하는 특류영예군인이 어머니가 되였다는것을 아시면 우리
그것은 김청동무의 친혈육이 된 모든 사람들의 한결같은 심정이였다.
* *
우리는 여기에 김청동무를 위해 지성을 바친 하많은 사람들에 대하여 다 담지 못하였다.김청동무가 오늘과 같은 행복을 어떻게 맞이할수 있었는가에 대하여 미처 전하지 못한 사연들도 많다.
정녕 사회주의 이 땅에서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남이 아파하면 함께 울어주고 남이 고생하고 어려워하면 가까이 다가가 부축해주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사회주의대가정, 사회주의 우리집에는 이렇듯 미덕과 미풍을 체질화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온 나라 천만자식을 따사로운 한품에 안아 외로움도 불행도 가셔주시고 운명과 미래도 다 맡아 보살펴주시는
글 본사기자 조경철
사진 신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