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3.23. 《로동신문》 6면
《우리 인민은 사회주의제도가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것을 실생활을 통하여 깊이 체험하고있습니다.》
우리 인민은 사회주의제도가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것을 생활의 순간순간 체험하고있다.
인민을 위해 베푸는 시책이며 이 땅에 공기처럼 흐르는 미덕과 미풍, 행복이 넘치는 우리 생활의 갈피마다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는 우리 인민이다.
정양소에서 만난 대학교원들
얼마전 우리는 룡남산기슭에 자리잡은
좀더 빨리 왔더라면 교원들의 정양생활을 직접 볼수 있게 되였을것이라는 아쉬움을 내비치자 한 교원은 우리앞에 여러장의 사진을 내놓는것이였다.
《정양생활기간에 찍은 사진들입니다.》
사진에 담겨진 교원들의 얼굴마다에는 웃음이 한껏 어려있었다.
지난 2월 정양소에서는 모범적인 교원들의 정양생활이 시작되였다.정양생들은 여러가지 봉사를 받으며 쌓였던 피로를 말끔히 가시였다.
매끼 식탁에 오르는 갖가지 푸짐한 음식들과 포근한 잠자리, 다채로운 체육활동과 즐거운 오락회…
그런 속에 한 교원이 생일을 맞이했다.그날 남편의 생일음식을 마련해가지고 정양소를 찾아왔던 안해는 정양소 료리사들이 차려준 푸짐한 생일상에 감탄을 금치 못했고 저저마다 기념품들을 들고 찾아온 정양생들과 함께 그들부부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한 녀성교육자는 정양생활기간 건강도 좋아지고 사업의욕도 높아졌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평범한 로동자의 딸인 저를 교단에 세워주고 려명거리의 희한한 새 살림집도 안겨준 어머니당의 품속에서 정양생활까지 하고보니 더 높은 교육성과로 고마운 제도를 받들어야겠다는 결심이 굳어집니다.》
우리는 이어 수십년동안 정양소 소장으로 일해오고있는 리만실동무를 만났다.
그는 대학정양소에도 우리 교육자들을 위해 그 무엇도 아끼지 않는 어머니당의 사랑이 가슴뜨겁게 새겨져있다고 하면서 고난의 시기에도 정양소문은 한번도 닫겨본적이 없다고, 해마다 10여기의 정양을 정상화하니 교원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느라니 인민의 건강증진을 위하여 베풀어지는 국가의 인민적시책이 이 정양소의 자그마한 뜨락에도 가득차흐르고있다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잠시후 정양소를 떠나기에 앞서 교원들이 정양소의 종업원들과 함께 사진을 남기는 모습이 안겨왔다.
근로자들의 정양생활이 나라의 법으로 되여있는 우리의 사회주의제도의 고마움을 가슴뜨겁게 느끼며 모두가 마음속으로 보답의 새 결의를 가다듬는 정양소의 퇴소날은 이렇게 흘러가고있었다.
본사기자 송철
사랑과 정의 40여일
지난 1월 어느날 함경북도종합병원으로 의식을 잃은 한 처녀가 실려들어왔다.
상태는 매우 위급하였다.
경흥군의 어느한 단위에서 로동자로 일하는 처녀를 위해 즉시 의료일군들의 긴급협의회가 열리고 집중치료가 진행되였다.
의료일군들은 환자를 위해 온갖 심혈과 정성을 다 기울이였다.
환자가 입원하여 첫 열흘동안에 호흡이 멎은적만 하여도 4번!
하지만 매번 처녀는 의사, 간호원들의 지극한 정성에 의하여 기적적으로 소생되군 하였다.
아픔도 제대로 호소할수 없는 처녀의 곁에는 24시간 의사, 간호원들이 지켜서있었다.
가정일도 뒤로 미루고 환자의 침대곁에서 밤을 꼬박 밝히군 한 담당의사 주명심동무를 비롯한 병원의 의료일군들과 운신하지 못하는 환자의 손발이 되여 궂은일, 마른일을 가리지 않은 간호원들의 정성을 어찌 한두마디로 다 표현할수 있으랴.
처녀가 입원한 호실은 순간에 온 병원이 알고 누구나 관심하는 호실로 되였다.
출근길과 퇴근길에 호실에 들려 환자의 상태를 물어보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났고 환자의 곁에서는 언제나 고마운 손길이 떠날줄 몰랐다.
입원하여 20일째 되는 날 환자는 드디여 의식을 차리였다.
그 소식은 온 병원을 기쁨으로 설레이게 하였다.
의료일군들의 정성은 날이 갈수록 더해졌다.그가 감기에라도 들세라 두툼한 새옷을 마련해준 이야기며 각종 보약재를 가져다준 이야기, 환자의 영양보충을 위해 가정에서 성의껏 음식도 마련하여 안겨준 이야기…
이런 불보다 뜨거운 정성과 사랑속에 로동자처녀는 40여일만에 드디여 병원문을 나서게 되였다.
지성인
장수자로인가정의 37개 대학졸업증
며칠전 우리가 만경대구역 건국동 35인민반에서 살고있는 장수자인 리정녀로인을 찾아갔을 때였다.
장수자로인의 손녀가 우리를 반겨맞았다.
마침 이웃들과 인민반장, 담당의사도 와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방에 들어서니 많은 사람들이 장수자로인과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장수자인 자기에게 베풀어지는 국가적혜택에 대해 눈물을 머금고 이야기하던 로인은 자기 가정에 대학졸업증이 37개나 된다고 이야기하는것이였다.
알고보니 로인의 아홉명 아들딸들과 그 자식들중에 학위소유자들도 있으며 일군과 교원, 군인 등 각이한 직무와 초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수십명이나 되는데 어린 증손자들과 고손자들을 내놓고 거의 모두가 대학졸업생이였다.
그들이 다닌 대학을 쭉 꼽던 리정녀로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해방전에 우리
그러면서 그는 해방전 공부하고싶어하는 자기를 붙안고 눈물을 흘리던 부모에 대하여, 제힘으로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삯빨래를 하던 일에 대하여 눈물을 머금고 회상하였다.
그와 한가정을 이룬 남편의 신세도 다를바 없었다.
해방된 조국에서 로인의 소원은 비로소 풀리게 되였다.그는 자식들이 차례로 대학으로 갈 때면 이렇게 당부하군 하였다.
《평범한 사람들의 자식들도 대학으로 불러주는 우리 조국이 제일이다.공부를 잘해서 그 은덕에 보답해야 한다.》
대학졸업증은 나날이 늘어났다.
이렇게 손자손녀들도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는 증손자들도 대학공부를 하고있으니 장수자로인의 가정에는 대학졸업증이 계속 늘어나고있었다.
참으로 행복한 가정에 꽃피는 자랑이였다.하기에 리정녀로인은 당의 사랑속에 백번째 생일상을 받던 날 어머니조국은 나에게 삶을 주고 희망을 주고 끌끌한 자손들을 안겨준 고마운 품이라고, 로동당세상은 정말 좋은 세상이라고 절절히 말하였다고 한다.
세상에 둘도 없는 고마운 사회주의제도에서 세대를 이어 행복을 누려가는 우리 인민의 긍지높은 생활을 우리는 한 장수자가정에서도 가슴깊이 느낄수 있었다.
김현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