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9월 20일 금요일  
로동신문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한 자욱 오늘도 조국강산에 빛난다
만수대창작사 창작가들과 나눈 이야기

2024.4.15. 《로동신문》 5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더욱 간절해지는 4월, 우리는 얼마전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거룩한 현지지도자욱이 어려있는 세계적인 대미술창작기지인 만수대창작사를 찾았다.

이날 우리는 기념비조각창작에서 공적을 세운 김일성상계관인 인민예술가 로익화동지와 만수대창작사 창작가들과 함께 당의 령도밑에 새겨온 수령형상창조의 성스러운 려정의 갈피를 감회깊이 돌이켜보며 위대한 수령님의 천출위인상에 대하여 가슴뜨겁게 새겨안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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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야기는 만수대창작사 혁명사적관의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건립과정을 보여주는 전시대앞에서 시작되였다.

수십년전 기념탑건립에 참가하였던 백발의 로익화동지는 추억깊은 어조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건립과정은 우리 창작가들에게 있어서 어버이수령님의 위대성과 불멸의 업적을 더욱 깊이 새겨안게 한 잊을수 없는 나날이였습니다.》

1960년대초 창작가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령도하신 성스러운 항일무장투쟁을 반영한 기념탑건립을 위해 량강도에 갔다.

그들은 기념탑건립에 들어가기에 앞서 력사적인 보천보전투가 진행된 혁명전적지를 답사하며 위대한 수령님의 만고불멸할 업적을 생생히 체감하였다.

더우기 보천보전투를 직접 목격한 체험자들의 목소리는 창작가들의 심금을 세차게 울리였다.

력사의 그날 백두의 뢰성마냥 보천보의 밤하늘가에 울려퍼진 위대한 수령님의 연설은 도탄에 빠져 신음하던 보천보인민들을 무한히 격동시켰다.

조선은 죽지 않고 살아있으며 자기 손으로 기어이 침략자들을 무찌르고 나라의 해방을 이룩하고야말것이라는 억센 의지를 엄숙히 선언하시는 항일의 청년장군 김대장을 우러러 목청껏 만세를 부르던 그날의 그밤의 하많은 사연들을 이곳 인민들은 어제일처럼 자세히 들려주었다.

전투승리후 인민들에게 조국해방의 신심을 안겨주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하신 영상과 유격대원들이 배워준 혁명가요를 부르던 보천보인민들의 모습은 창작가들에게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의 주제사상적내용을 어떻게 심화시켜야 하는가를 온넋으로 절감하게 하였다.

하여 창작가들은 우리 인민들이 간직한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열화같은 흠모심을 담아 기념탑에 항일빨찌산 김대장의 거룩한 모습을 형상하기 위하여 지혜와 정열을 다 바치였다.

로익화동지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그 여운은 오래도록 우리의 심금을 울려주었다.

수령형상창조사업은 재능과 열정으로 하는것이기 전에 수령의 위대성에 대한 열렬한 매혹과 흠모, 혁명적신념과 의지, 순결한 도덕의리로 하여야 한다는것을 새겨주는 이야기는 새세대 창작가들이 영원히 잊지 말고 끝없이 이어가야 할 성스러운 교본과도 같은것이였다.

이런 생각을 하며 우리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주체86(1997)년 4월 27일 만수대창작사를 현지지도하시면서 높이 평가하신 영상미술작품들이 모셔진 곳에 이르렀다.

감격의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창작가들이 창작한 《항일의 혈전만리》, 《풍년든 포전마다》, 《몸소 불타는 고지에 오르시여》를 비롯한 작품들을 보시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풍요한 가을날 농촌에 대한 현지지도를 하시는 내용을 반영한 조선화 《풍년든 포전마다》를 내놓은 조선화창작단 단장 리성근동무에게 창작경위에 대해 물었다.

그는 《나는 부모와 함께 창성군에서 오래동안 살았습니다.그때의 추억가운데서 제일 잊혀지지 않는것은 마을사람들이 들려주던 우리 수령님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수수한 농촌살림집에서 망으로 타갠 잡곡밥을 드시면서도 창성인민들에게 많은 식량을 보내주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전후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창성군의 험한 산발을 오르내리시면서 산골인민들의 생활을 유족하게 할수 있는 방도들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그 사랑의 이야기들을 매일같이 들으며 성장한 성근동무이기에 앞으로 미술가가 되여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한 현지지도자욱을 화폭으로 형상하여 길이 전해갈 결의를 다지였다.

이렇게 되여 그는 미술창작활동을 하면서 대부분 위대한 수령님께서 농촌을 현지지도하시는 작품을 창작하였다.

조선화 《풍년든 포전마다》를 창작할 때에도 그는 한평생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며 인민을 찾고찾으신 수령님의 로고속에 인민의 행복이 꽃펴났다는 사상적내용이 잘 살아나도록 하기 위해 심혈을 다 바쳤다.

하여 인민의 행복넘친 모습에서 제일 큰 기쁨을 찾으시고 인민을 위한 고생을 락으로 여기신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뜻과 고매한 풍모를 감명깊게 보여주는 명화폭을 내놓을수 있었다.

유화창작단 단장 조광식동무도 우리에게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 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신뢰심은 더욱 뜨거워진다고 하면서 몇해전 영상미술작품을 창작하게 된 동기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언제인가 그는 도서 《인민들속에서》에서 회상실기 《〈조선사람은 장이 없이는 살지 못합니다〉》를 읽게 되였다.

주체51(1962)년 온천군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책임일군과 식료공장일군을 몸가까이 부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온천장을 먹어본 사람들이 맛이 없다고 하기에 자신께서도 가져다 여러 음식에 써본데 대하여 교시하시면서 일군들이 장에 대한 관점을 바로가지도록 일깨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사람에게 있어서 간장, 된장은 한끼도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식료품이라고 하시면서 인민들의 식생활문제를 두고 못내 가슴아파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양에서 기술자를 부르시여 군일군들과 함께 공장에 나가 원인을 규명하게 하시고 장맛을 개선하는데 필요한 대책도 다 세워주시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온천장맛이 좋아졌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더없이 기뻐하시였다.

회상실기를 읽으며 조광식동무는 눈굽이 젖어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우리 수령님께서 인민생활향상을 위해 기울이신 심혈과 로고를 생각할수록 평범한 고장의 장맛에 깃든 가슴뜨거운 사랑의 이야기를 화폭에 담아야 한다는 강렬한 창작적흥분에 휩싸이였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손길아래 온천장맛이 달라진 사연을 화폭으로 전하고싶어 유화 《몸소 장맛도 보아주시며》를 창작하였다.

창작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며 조광식동무는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세월의 눈비를 다 맞으시며 헌신의 길을 걷고 또 걸으신 위대한 수령님의 고매한 풍모를 담은 회상실기도서 《인민들속에서》에는 영상미술작품의 종자와 형상세부가 참으로 많다고 진정을 토로하였다.

진정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과 사랑의 이야기는 오늘도 온 나라 강산에 력력히 어려있고 인민의 가슴을 세차게 울려주고있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을 영원히 높이 우러러모시려는 인민들의 신념과 의지로 하여 우리 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생애와 고귀한 업적은 천만년 길이 빛날것이라는것을 확신하며 창작가들과의 이야기를 마치였다.

본사기자 차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