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6일 목요일  
로동신문
실화
따뜻한 넘치는 우리

2024.4.21. 《로동신문》 5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서로 돕고 이끌며 단합된 힘으로 전진하는 우리 사회의 본태와 대풍모를 적극 살려나가야 합니다.》

어둠이 소리없이 깃들던 며칠전 저녁 락랑구역 충성2동 42인민반 4층 1호집은 류달리 흥성거렸다.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휴가를 받은 손수림은 이웃들과 함께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에 안고갈 지원물자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는 어머니의 일손을 돕고있었다.

《수림이 어머닌 좋겠어요.소원대로 어엿한 군관이 된 외동딸과 함께 강선으로 가게 되였으니 말이예요.》

인민반장의 말에 이웃들도 감심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손수림은 어머니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치며 행복의 미소를 짓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도 모르게 수림의 눈앞에 핑 하고 물안개가 서렸다.

처녀시절부터 평양가죽이김공장에서 혁신자로 떠받들리우던 어머니가 뜻밖의 병으로 로동능력상실이라는 진단을 받은것은 10여년전이였다.

상태가 너무 심하여 몇해를 넘기지 못한다던 어머니가 생의 희열에 넘쳐 한껏 웃고있었던것이다.

그 웃음이 바로 사회주의 우리집에 공기처럼, 숨결처럼 흐르는 사랑과 정이 피워올린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손수림이였다.

우리 집,

이 글자를 되뇌이며 그는 조용히 추억의 실꾸리를 풀어나갔다.

다섯해전 5월 어느날 평양역은 조국보위초소로 떠나는 중학교졸업생들에 대한 환송열기로 끓어번지고있었다.

역앞마당은 절절하게 하는 부탁과 굳은 맹세의 열기로 설레였다.

그 인파속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군복을 입은 손수림도 있었다.

얼굴에 수심이 짙게 어린 그를 류달리 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고있었다.

그들속에는 손수림의 부모가 없었다.그의 아버지는 지방출장길에 있었고 어머니는 병이 심하게 도지여 자리에 몸져누웠던것이다.

《수림아, 집걱정은 말아라.우리가 있지 않니.》

《어머니의 건강은 념려말고 군사복무를 잘하거라.》…

손수림에게 성의껏 마련한 기념품들을 안겨주며 인민반장을 비롯한 이웃들이 저저마다 하는 말이였다.

그는 이렇게 정다운 이웃들의 바래움을 받으며 초소로 떠났다.

보람찬 군사복무의 나날은 벅차게 흘러갔다.

하지만 손수림의 마음속한구석에서는 늘 사회보장자인 어머니에 대한 근심이 떠날줄 몰랐다.

어머니의 병이 더 심해지지 않았는지, 약은 제때에 잡숫는지 이런저런 생각으로 모대기며 뜬눈으로 새날을 맞이한적은 그 얼마였던가.

하지만 그는 미처 알수 없었다.자기가 어머니걱정으로 바재이던 그 시각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병사의 얼굴에 비낀 그늘을 가셔주기 위해 마음쓰고있는줄.

어느날 고향에서 기다리던 편지가 날아왔다.기쁜 마음을 안고 편지를 받아보니 아버지가 보낸것이였다.

아버지로서 조국보위초소로 떠나는 외동딸을 바래워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과 함께 어머니의 병이 많이 호전되였다는것, 이제는 밖에 나가 산보도 하고 식사도 꼭꼭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편지의 글줄을 따라 달리던 그의 시선은 문득 한곳에서 멈춰섰다.

《…수림아, 며칠전에 너희 중대장이 어머니의 병치료에 좋은 보약재를 가지고 집에 찾아왔댔다.그러면서 하는 말이 신심을 가지고 병치료를 하자고, 그래야 수림이가 기뻐한다고 하지 않겠니.어찌나 다정한지 꼭 혈육을 만난 심정이였다.…

병사가 근심이 많으면 총대가 흔들린다.어머니곁에는 고마운 사람들이 항상 있으니 집걱정은 말고 초소를 굳건히 지키거라.》

손수림은 편지에 얼굴을 파묻고 어깨를 들먹이였다.

그는 활기를 되찾았다.

그가 명사수의 영예도 지니였을 때 제일 기뻐한 사람이 중대장이였다는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었다.

어머니가 보내온 편지의 내용은 또 얼마나 감동적이였던가.

어느날이였다.매일이다싶이 찾아와 건강상태를 알아보던 구역병원의사가 집문을 두드렸다.

《수림이 어머니, 료양권을 받으십시오.이건 나라의 시책입니다.》

료양권을 정히 쓰다듬는 어머니의 손등에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나라에 큰 공헌을 한 영웅도 과학자도 아니고 오히려 부담을 주는 사회보장자에게 와닿는 사랑의 끝은 과연 어디인가.)

어머니가 사회보장을 받은 때부터 지금껏 나라에서 받은 혜택은 헤아릴수 없는것이였다.

사회보장자라는 한가지 리유로 어머니는 어디에 가나, 누구에게나 관심사로 되였다.

구역병원과 진료소에서는 매주 꼭꼭 찾아와 진찰을 하고 필요한 대책을 세워주었다.

그 사려깊은 사랑속에 본인도 감촉하지 못한 병도 미리 발견하고 치료를 받았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만약 병을 조기에 발견하지 못하였더라면 생명이 위험하였다는것이였다.

이뿐이 아니다.

인민반에서는 색다른 음식이 생겨도 인민군대후방가족인 어머니를 먼저 찾았고 좋은 물건이 하나 생겨도 사회보장자인 어머니에게 안겨주었다.

어느날 병이 도지여 갑자기 병원에 구급으로 실려갔을 때에도 밤새도록 침상곁에 있어준 사람들이 다름아닌 인민반장을 비롯한 이웃들이였다.평양가죽이김공장 일군들과 종업원들도 어머니의 병치료에 좋은 약재를 안고 자주 찾아와 신심을 안겨주었다.

이 소식을 전해주면서 어머니는 이런 아름다운 인간들을 키워준 고마운 조국을 굳건히 지키라는 당부를 편지에 담았다.

그즈음 손수림에게는 많은 편지가 전해졌는데 그 대부분은 이웃들이 보내오는것이였다.

그 하나하나의 편지를 통해서 어머니가 두해전부터 파철을 수집하여 강선에 보내주고있다는것, 불편한 몸이지만 마을주변은 물론 시안의 여러 건설장을 돌고돌면서 길가에 떨어진 작은 나사못으로부터 시작하여 못쓰게 된 콩크리트속의 철근, 강물속에 잠겨있는 쇠붙이에 이르기까지 다 걷어모으고있다는것, 이렇게 첫해에 수백kg의 파철을 수집하였고 그 이듬해에는 더 늘어났다는 사실도 알게 되였다.

참된 삶의 보람을 찾은 어머니에 대한 긍지로 그의 가슴은 뿌듯해졌다.

지난해 7월 어느날 손수림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보답의 길을 이어갈 불같은 결의를 담아 어머니가 삼가 올린 편지를 보아주시였다는 감격적인 소식에 접하였다.딸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머니는 평범한 사회보장자가 해놓은 자그마한 일도 값높이 내세워주는 나라의 은덕에 군사복무를 잘하는것으로 보답해야 한다고 당부하였다.…

손수림은 추억의 상념에서 깨여났다.그는 다시금 방안을 정겨운 눈길로 둘러보았다.

방에는 번쩍거리는 사치한 재산이 없었다.그러나 억만금을 주고도 바꿀수 없는 따스한 사랑과 정이 가득 넘치고있었다.정녕 그것은 이 땅의 모든 가정에 속속들이 와닿고있는 나라의 혜택과 한식솔과도 같은 수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정이였다.

사회주의제도에 대한 고마움이 그의 가슴을 뜨겁게 적셔주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온 나라 대가정의 어버이로 높이 모시고 모두가 한식솔, 친형제로 사는 사회주의 우리집을 총대로 굳건히 지켜가리라.)

창가로 비쳐드는 은은한 달빛은 어머니곁에서 사랑과 정을 기울여주는 정다운 이웃들의 모습과 함께 강선으로 보내려고 한가지한가지 지성을 기울여 마련한 지원물자들을 어루쓸고있었다.

글 본사기자 신철

사진 김주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