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4. 《로동신문》 6면
《온 나라에 서로 돕고 이끄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미풍이 차넘치게 하여 우리 사회를 화목하고 단합된 일심단결의 대가정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세해전 당보에는 동해학원 원아의 친어머니가 되여 뜨거운 사랑과 정을 기울인 한 처녀어머니에 대한 기사가 실리였다.
뜻하지 않게 몸을 심하게 다친 원아를 맡아안아 온갖 정성을 다한 처녀어머니 최선희동무와 그의 소행에 감복하여 일생의 길동무가 된 한 제대군인대학생청년에 대한 이야기는 독자들의 심금을 뜨겁게 울려주었다.
그후 많은 사람들이 본사편집국으로 전화를 걸어와 원아인 안정심이가 살고있는 최선희동무의 집주소를 물었다.
그속에는 아름다운 소행의 주인공들의 결혼상을 보란듯이 차려주고싶다고 한 어느한 단위의 일군도 있었고 자기들도 원아의 혈육이 되겠다며 정심이의 나이며 건강상태를 일일이 알아본 녀인들과 청년들도 있었다.
이렇게 되여 정심이에게는
그 나날에 꽃펴난 감동깊은 이야기는 그 얼마인가.
그해 겨울 어느날 최선희동무가 정심이의 거주등록을 하기 위해 중구역안전부 동흥분주소를 찾아갔을 때였다.
그가 내미는 문건을 받아든 녀성안전원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20대의 녀성에게 16살 난 딸이 있다니?!
한동안이 지나서야 최선희동무가 얼마전 신문과 방송, TV를 통해 널리 소개되였던 그 처녀어머니라는것을 알게 된 리춘희안전원은 반가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장한 처녀어머니를 한번 보고싶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될줄은 몰랐군요.》
이렇게 말하며 리춘희동무는 마치 친동생이라도 만난듯 최선희동무의 두손을 잡고 놓을줄 몰랐다.그러는 그의 가슴속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끝없이 울리였다.
(어린 처녀가 당에서 그토록 관심하는 원아를 맡아안고 애쓰고있는데 인민의 안전원인 나는…)
그때부터 리춘희동무는 수년세월 정심이의 생일은 물론이고 명절과 휴식일에 남먼저 집에 찾아가 물심량면의 지성을 아끼지 않았으며 최선희동무에게 귀여운 딸자식이 태여났을 때에는 친혈육의 심정으로 돌생일도 차려주었다.
그뿐이 아니다.정심이에게는 나날이 그런 큰어머니가 늘어만 갔다.
중구역연료사업소의 일군들과 종업원들, 련화2동의 식료품상점 봉사자들, 정심이의 치료를 도맡아해준 평양의학대학병원의 의료일군들, 인민반의 정다운 이웃들…
그들은 정심이는 물론 최선희동무와 친척도, 아는 사이도 아니였다.하지만 그들의 가슴속에는 한결같이 사람들모두가 한식솔로 사는 사회주의대가정에는 결코 불행한 사람이 단 한명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그런 고마운 사람들이 있어 정심이의 얼굴에서는 언제나 웃음꽃이 피여났다.
지금 정심이의 가족은 중구역 동성동에서 살고있다.그들이 본래 살던 중구역 련화2동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온데도 가슴뜨거운 사연이 있다.
최선희동무가 정심이의 어머니가 되고 얼마후 그에게 귀여운 아기까지 태여나자 그가 일하는 단위의 책임일군들은 기쁘기도 하고 마음이 무겁기도 하였다.한것은 그가 단칸짜리 집에서 부모와 함께 살고있었던것이였다.
사회와 집단을 위해 좋은 일을 찾아한 최선희동무, 단위의 자랑이기도 한 그에게 편리한 생활조건을 마련해줄수 없을가 하는 생각이 그들의 머리속에서 떠날줄 몰랐다.
하여 그들은 진지한 토론끝에 여러칸짜리 집을 마련해주기로 하였던것이다.
동성동에 보금자리를 펴는 날 최선희동무와 정심이는 솟구치는 격정을 금치 못하였다.아늑하고 밝은 방들과 책상이며, 창문, 세면장 등에 자기들을 위해 기울인 진정이 속속들이 어려있었던것이였다.
그날 새집을 마련해준것만도 고마운데 이렇게 모두 찾아와 제집일처럼 기뻐하며 꾸려주니 송구함을 금할수 없다고, 우리가 무슨 큰일을 했다고 이렇게까지 마음을 써주는가고 하는 최선희동무에게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말하였다.
《정심이는 우리모두의 딸이고 선희동무네는 사회주의대가정의 한식솔이 아닙니까.》
우리모두의 딸이고 사회주의대가정의 한식솔!
그래서였다.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정심이를 위해 친혈육의 정을 아낌없이 쏟아붓고있는것은.
최선희동무는 지금도 지난해 어느날 갑자기 정심이가 병이 도져 쓰러졌을 때의 일을 잊지 못하고있다.
의료일군들의 뜨거운 정성에 의하여 다행히도 급한 고비는 넘겼지만 최선희동무는 마음을 놓을수가 없어 정심이의 침상곁을 뜨지 못하였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 찾아왔다.그들은 최선희동무에게 나무람섞인 어조로 이렇게 말하였다.
《선희동무, 정말 섭섭하오.이런 일을 왜 우리에게 알리지 않았소.동무에게는 그래 우리가 남이란 말이요?》
그러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최선희동무와 그의 가족은 눈시울을 적시였다.
(정말 고맙습니다.)
최선희동무는 마음속으로 이 말을 몇번이나 곱씹었다.
그런 고마운 사람들의 진정속에 정심이가 병을 털고 퇴원하는 날 한 부부가 그들을 따라섰다.평천구역 간성동에 살고있는 조영복, 정남희부부였다.
최선희동무의 소행이 널리 알려진 후 그의 가정을 찾아와 뜨거운 정을 기울이던 그들은 그날 정심이의 건강을 위해 지성을 바칠 마음 안고 그의 집으로 함께 떠난것이였다.
첫물과일이 생겼다고 퇴근길에 들리기도 하고 혹 출장을 가서도 멀리에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오던 조영복, 정남희부부, 그들과 같은 고마운 사람들속에서 정심이는 가슴속에 한점 그늘없이 행복한 생활을 누리였다.
지난해 4월 정심이는 많은 고마운 사람들의 축복속에 대학생이 되였다.
그날 그에게 축하의 꽃다발을 아름벌게 안겨주는 사람들속에는 평양의학대학의 일군들도 있었다.
공부를 잘하면 꼭 대학에 갈수 있다며 참고도서들과 학습에 필요한 학용품까지 안겨주었고 학습방조를 하도록 교원들도 붙여주던 그들을 보느라니 정심이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솟구쳤다.
원아라는 단 한가지 리유로 하여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항상 류다른 관심속에서 성장하여 대학생으로까지 자란 정심이, 세상에 이렇듯 고마운 제도, 아름다운 사회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날 최선희동무는 정심이를 품에 꼭 안고 이렇게 속삭였다.
《정심아, 우리 사회주의제도의 고마움을 언제나 잊지 말자.그리고 꼭 보답하자.》
어머니의 진정이 담긴 이 말을 가슴에 새기며 정심이는
그러는 정심이의 눈가에는 어머니당의 사랑에 보답할 일념 안고 얼마전에 사회주의전야에 탄원한 동해학원 졸업생들의 미더운 모습이 어려왔다.
하는 일도, 사는 곳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제날의 원아와 맺은 아름다운 인간관계,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뜨거워지는 혈연의 정은 정녕 모두가 사회주의대가정의 한식솔로 사는 우리 제도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축도와도 같다.그것으로 아름답고 그것으로 전진하는 사회가 바로 우리가 안겨사는 사회주의제도이다.
글 본사기자 오은별
사진 신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