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14. 《로동신문》 4면
《자력자강의 위력으로 승리에서 더 큰 승리를 이룩하며 활력있게 전진해나가는 사회주의조선의 영웅적진군을 가로막을 힘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애국으로 단결하자!》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온 나라가 전례없는 혁명열, 투쟁열로 부글부글 끓고있는 오늘 남포시의 일군들과 근로자들도 드높은 애국적열정과 기백에 넘쳐 당결정관철을 위한 투쟁에서 보다 큰 성과를 이룩하고있다.
천리마작업반운동의 선구자인 진응원영웅과 강서의 태성할머니, 애국농민 림근상영웅을 비롯하여 당과 조국청사에 그 이름 빛나게 아로새겨진 애국충신들을 배출한 력사적인 고장에서 살며 일하는 사람들이 어찌 달리 살수 있으랴.철의 기지에서, 굴지의 기계제작기지에서, 드넓은 전야에서 우리는 전세대들처럼 자기 힘에 대한 굳은 믿음과 무한대한 활력에 넘쳐 더 좋은 미래를 향하여 신심드높이 전진하는 충성스럽고 강직하고 열정적인 애국자들을 수많이 만나볼수 있었다.
선구자가 많은 로동계급의 고장에서
남포시에 대한 기행은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에서부터 시작되였다.
강선, 그 이름만 불러보아도
마침 2호초고전력전기로에서 출강작업을 막 시작하던 참이였다.주홍빛쇠물이 주위를 붉게 물들이며 쏟아져나오는 광경이며 련속조괴공정에서 시뻘건 강편들이 뻗어나오는 모습을 보느라니 이름할수 없는 흥분이 가슴속에 차오르는데 로장 김길성동무가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용해공들에게 있어서 이 시각처럼 기쁜 때는 없습니다.쇠물을 한차지한차지 받아낼 때마다 나라의 재부가 그만큼 늘어나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해집니다.》
알고보니 그는 30여년을 용해공으로 일해오고있었다.그가 중학교졸업을 앞두었을 때 강선의 오랜 로동계급이였던
어찌 그뿐이랴.우리와 만난 강철직장 일군인 최창일동무는 용해공들의 위훈뒤에 남모르게 고여지는 수많은 위훈이 있다고 하면서 지난 10여년간 용해공들을 위한 지원사업을 진행하고있는 어제날의 용해공식당 녀성취사원들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10여년전 12월 새로운 혁명적대고조의 봉화를 지펴주시려 련합기업소를 찾아주신
비록 나이는 많고 생활은 넉넉치 못해도 나라위한 마음만은 결코 로쇠를 모르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
만나볼수록 마음이 끌리는 강선사람들의 잊지 못할 모습을 뇌리에 깊이 새기고 금성뜨락또르공장에 들어선 우리에게 공장일군들이 내세운 사람은 기술과 가공실 실장 한학명동무였다.
당의 뜻을 받들어 뜨락또르의 기술적성능을 높이기 위한 사업에서 공로가 큰 기술자라고 하였는데 한학명동무자신은 두손을 내저으며 독불장군이라고 혼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였다고, 공장의 일군들로부터 기대공들에 이르기까지 한마음한뜻으로 떨쳐나섰기에 가능했다고 하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얼마전 2가공직장의 나어린 기대공이 그를 찾아와 종이 한장을 내밀었는데 거기에는 뜨락또르부속품가공의 정밀도를 높일수 있는 착상이 그림으로 그려져있었다.기발한 착상이라는 생각에 앞서 그의 가슴을 뜨겁게 울린것은 비록 나이는 어려도 당의 걱정, 나라의 고충을 자기의것으로 받아들일줄 아는 아름다운 마음이였다.
나어린 기대공의 심정도 그러할진대 한생을 뜨락또르생산에 바쳐온 오랜 기술자, 로동자들은 또 어떠했던가.수십년세월 한직종에서 일하면서 치차가공에서 없어서는 안될 기술인재로, 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성장한 공정원 백영민동무를 비롯한 공장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속에서도 기술혁신열의가 날이 갈수록 고조되고있었다.하거늘 그런 벅찬 현실을 두고 어찌 《누가 먼저 첫 뜨락또르를 몰고 수상님께로 달려갈것인가》라는 글발을 현장 곳곳에 내걸고 투쟁하던 천리마기수들의 후손들이 과연 다르다고 하지 않을수 있으랴.
우리는 전세대 천리마로동계급의 전통을 이어 금성뜨락또르공장의 로동계급이 나라의 기계공업발전과 농촌기술혁명수행을 위한 투쟁에서 선구자의 영예를 높이 떨치리라는 확신을 안고 대안중기계련합기업소로 기행길을 이어갔다.
발전설비1가공직장에 들어선 우리의 눈가에 제일먼저 비껴든것은 현장을 꽉 채우다싶이 게시되여있는 구호와 표어들이였다.말그대로 일터가 통채로 구호집이 되고 교양마당이 되였으니 련합기업소가 지난해 국가적인 10대최우수기업들가운데서도 단연 첫자리를 차지한 비결이 과연 여기에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현장을 돌아보던 우리는 어느한 설비앞에서 나이많은 기대공과 중년의 기대공이 작업교대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였다.련합기업소가 창립된 초창기부터 일해온 오랜 타닝공인 김희동무가 80살을 넘긴 고령의 나이에도 기대를 다룬다는 사실도 놀라운것이였지만 교대성원인 김경영동무가 다름아닌 그의 아들이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큰 충격을 받았다.
과연 그들이 인계하고 인계받고있는것이 설비만이겠는가.아니였다.그들은 당의 부름에 언제나 결사의 실천으로 화답해나서고 남들의 열걸음, 백걸음을 단 한번에 도약하며 조국번영의 밑거름이 되는것을 둘도 없는 영예로 간직했던 애국의 넋과 정신을 이어주고 넘겨받고있었다.
우리는 선반공인 김은철동무도 만나보았다.
지난해 중요설비의 부분품가공문제가 긴급하게 제기되였을 때 누구나 선듯 맡아나서기 저어하는 과제를 20대청년인 그가 자진하여 맡아 짧은 기간에 훌륭히 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을 때 우리의 놀라움은 실로 컸다.하다면 그 비결이 과연 두려움을 모르는 청년특유의 용감한 기질과 배짱에 있는가, 아니면 남달리 특출한 기술이나 재능에 있는가.
김은철동무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나에게는 고마운 스승이였던 오랜 기능공으로부터 물려받은 한가지 지론이 있다.그것은 바로 하나의 부분품을 깎아도 그것을 직장장이나 작업반장이 주는 과제가 아니라 당과 조국이 나를 믿고 맡겨주는 믿음으로 여길줄 알아야 하며 그렇게 할 때 그것이 거대한 발전기축이든 자그마한 나사이든 정성을 쏟아붓게 된다는것이다.…
이것은 고압전동기를 높은 질적수준에서 개발하는데 이바지한 기술과의 김봉철동무와 중형기계직장의 고급기능공인 선반공 필광일동무를 비롯한 대안로동계급모두의 한결같은 심정이였다.
천리마와 강서 그리고 대안,
우리 혁명앞에 준엄한 난국이 가로놓일 때마다, 조국이 큰 산을 넘어야 할 때마다 언제나 앞장에서 당을 충직하게 받들어온 로동계급의 대부대가 있는 력사의 고장들이다.이렇듯 뜻깊은 곳에서 얼마나 많은 시대의 선구자들이 태여나 우리 당과 조국청사에 그 이름 빛나게 아로새겼던가.
당과 조국의 부름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설 때 못해낼 일이 없으며 얼마든지 시대의 선구자로 될수 있다는 그들의 자신심은 오늘날 새세대들의 가슴마다에도 깊이 새겨져 시의 발전을 떠미는 거대한 추동력으로 되고있었다.
당정책대로만 하면 그 어떤 난관도 두렵지 않다
대안을 떠난 우리는 와우도구역 대대남새농장으로 향했다.지난해 농사를 잘 지어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전원회의가 보내는 감사를 받아안은 애국농민들을 한시바삐 만나고싶은 생각에 차보다도 마음이 먼저 달리는듯하였다.
농산제2작업반 반장 차원철동무는 우리가 찾아온 사연을 이야기하자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우린 당에서 하라는대로 농사를 지었을뿐인데 그렇게 값높이 내세워주니 그 고마움에 눈물만 납니다.》
대대남새농장으로 말하면 간석지농장으로서 지난 시기 농사가 잘 안되여 많은 사람들이 정을 붙이지 못하고 떠나가고싶어했던 곳이였다.하지만 그는 주저앉지 않고 농장에서 추진하는 관개공사에 있는 힘과 열정을 다 바쳤으며 질좋은 거름을 포전마다 충분히 내고 앞선 농법도 적극 받아들이였으며 축사도 번듯하게 일떠세워 작업반을 다수확집단으로 만들었다.
이렇듯 오늘날 작업반이 다수확작업반으로 되게 된것은 결코 하늘덕도, 땅덕도, 다른 그 누구의 덕도 아니였다.오직 당정책을 굳게 믿고, 자신을 믿고 일떠서서 하나부터 열까지 당에서 하라는대로 했기때문이였다.
하기에 차원철동무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그 무엇도 두렵지 않습니다.당에서 하라는대로 하면 그 어떤 난관도 두렵지 않습니다.》
이런 확신에 넘친 목소리는 온천군의 여러 농장에서도 들을수 있었다.
지금도 농사경험을 배우기 위해 전국각지의 농장들에서 찾아오고 전화도 수없이 걸려온다는 송현농장 제6작업반, 그 비결에 대하여 묻는 우리에게 반장 리창길동무가 한 말은 뜻밖이였다.사실 자기는 그전에 화학비료광신자라고 할만큼 비료에만 매달려 농사를 지으려 했다는것이였다.
그런데 어느해부터인지 알곡수확고가 점점 감소되였다.그것은 화학비료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지력을 높이는데 관심을 돌리지 못한데 원인이 있었다.리창길동무는 작업반원들을 땅을 걸구기 위한 투쟁에로 불러일으켰다.부족되는 거름원천을 해결하기 위하여 벼겨로 발효퇴비를 만들어 논과 밭에 냈는데 벼농사와 강냉이농사는 물론 논에서는 풍작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하던 밀농사에서도 장훈을 불렀다.
그는 온 나라 농민들에게 호소하고싶다며 이렇게 말하였다.땅을 무한히 아끼고 사랑하며 애써 걸구라고, 효능높은 화학비료도, 앞선 농법도 비옥한 땅 다음에 있다고.
다음으로 우리가 찾은 곳은 금성농장이였다.두해전 밀농사를 잘 지어 당중앙의 값높은 평가를 받아안은 이 농장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농사를 알심있게 지어 포전마다에 흐뭇한 작황을 펼쳐놓았다.
원래 비배관리를 잘한데다가 때맞춰 내린 단비까지 맞아 더욱 푸르싱싱해진 밀밭에서 제6작업반 반장 려정복동무가 들려준 이야기들가운데서 가장 인상적인것은 지난 시기 농사일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고 집안일에만 극성을 부리던 한 농장원부부가 지난해 밀농사를 짓고 올곡식분배까지 듬뿍 받아안고나서는 아예 딴사람이 되였다는 이야기였다.
지금 그들부부의 포전도 작황이 대단히 좋다고, 당정책은 산천도 사람도 달라지게 만든다고 하며 그는 이렇게 동을 달았다.
《우리 농장이 밀농사에서 전국적으로 앞선 단위들의 대렬에 들어선것도 자랑스러운 일인데 우리 군에서 만든 밀된장이 그 맛이 하도 좋아 온 나라에 소문나고있으니 이 얼마나 또 기쁜 일입니까.》
그의 말을 듣느라니 지난해 온천군에서 생산한 밀된장이 주민들속에서 호평을 받고 전국적으로 진행된 품평회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은 사실이 떠올랐다.그와 더불어 인민들의 식생활구조를 바꿀데 대한 당정책을 받들어 자체의 힘으로 짧은 기간에 밀된장생산공정을 꾸려놓고 그 맛을 더 좋게 하기 위해 아글타글 애쓰던 어느한 공장의 녀성지배인 한애숙동무와 종업원들의 모습도 눈앞에 선히 어려왔다.
흐뭇한 마음으로 풍요한 밀포전을 돌아보는데 밭머리에 노란 꽃이 활짝 피여 땅을 한벌 쭉 덮은것이 보이였다.그것은 유채였는데 《지방발전 20×10 정책》에 따라 군에 건설되고있는 지방공업공장운영에 필요한 원료를 보장하기 위해 심은것이였다.그 사업에도 역시 모든 농업근로자들이 발벗고나섰다고 하니 그것만 놓고보아도 당정책을 대하는 남포시일군들과 근로자들의 관점과 태도를 다시금 가슴후덥게 새겨안을수 있었다.
온천과수농장에서 우리의 눈길을 끈것은 수십년전
수만그루의 나무들이 마치 자를 대고 그은듯 키를 부쩍 솟구며 곧게곧게 자라는 모습이 꼭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같았지만 그보다 우리 마음에 더 뜨겁게 안겨온것은 당의 은정이 깃든 그 한그루한그루 나무마다에 고여진 제4작업반 반장 강영수동무를 비롯한 이곳 일군들과 종업원들의 지성이였다.한겨울에 수십km의 전호식구뎅이를 파고 먼곳에서 많은 진거름과 소금밭이끼를 끌어들여 호원의 지력을 높여나가던 나날에 기울인 눈물겨운 노력을 어떻게 한두마디로 다 표현할수 있으랴.
돌우에도 꽃을 피울 정성이 밑거름으로 된듯 어떤 나무들에서는 심은 첫해에 벌써 열매가 달렸는데 어찌나 크고 그 맛도 달고 독특한지 사람들은 누구나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지배인 임준혁동무는 지금 농장에서는 기둥형배나무의 그루수를 늘이기 위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있는데 앞으로 이 나무를 더 많이 심게 되면 과일생산량이 훨씬 늘어나는것은 물론이고 농장이 더욱 살기 좋고 일하기 좋은 무릉도원으로 전변될것이라고 자신심에 넘쳐 이야기하였다.
축산과 양어도 힘있게 내밀고 남새온실도 잘 꾸렸을뿐 아니라 공장구내를 수림화, 원림화, 과수원화할데 대한 당정책도 꾸준히 집행하여 온 나라에 일 잘하는 단위로 소문난 온천대성식료공장에서 80명의 종업원들모두가 혁신자이고 알뜰한 살림군이다나니 과연 누구를 내세워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던 책임기사 신명성동무의 이야기도 깊은 여운을 안겨주었지만 룡강민속공원과 시농촌경리위원회 종금장 검은고니분장을 비롯하여 최근년간 몰라보게 변모된 단위들 어디서나 들을수 있었던 시설계연구소일군들과 설계원들에 대한 이야기는 또 얼마나 감동깊었던가.
하나의 창조물을 일떠세워도 당이 바라는 높이에서, 앞으로 후대들에게 떳떳이 물려줄수 있게 하자!
이것은 하나의 점과 선에도 고향에 대한 불같은 사랑을 담으며 고심어린 노력을 기울이는 김창선, 박원혁동무를 비롯한 그곳 일군들과 설계원들만이 아니라 자기가 사는 고장을 자기 힘, 자기 손으로 보란듯이 변모시켜가는 남포시일군들과 근로자들의 한결같은 지향이였다.
그뿐인가.
생각해보면 최근년간 남포시는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그러나 남포시인민들은 주저앉은것이 아니라 오히려 용기백배하여 난관을 다스리며 전진의 큰걸음을 내짚고있다.당에서 하라는대로만 하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 자신심과 배짱을 안고 온 남포시가 드높은 애국열로 세차게 약동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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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남포시에 대한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데 차창에 시예술극장이 비껴들었다.극장의 웅장한 자태를 바라보느라니 시당위원회일군이 했던 말이 되새겨졌다.
《5.1절을 맞으며 우리 예술극장에서는 시안의 예술인들과 학생들이 출연하는 공연이 진행되였습니다.공연의 마지막에 노래 〈친근한
남포시를 떠나는 우리의 눈앞에는 취재길에서 만났던 자신심과 락관에 넘쳐있는 잊지 못할 사람들의 모습이 한명한명 어려왔다.그와 더불어 남포시의 더 좋은 래일이 환하게 안겨왔다.
본사기자 김송이
특파기자 주령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