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9월 8일 일요일  
로동신문
실화
새벽길

2024.5.18. 《로동신문》 5면


며칠전 하루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무렵 고원군 군내농장 경리 석금숙은 제2작업반의 구석진 곳에 있는 비탈밭에 올랐다.작업반에서 소출을 더 높이지 못해 애를 먹기에 관리일군들의 담당포전으로 정한 저수확지였다.

곳곳에 구뎅이를 파고 거름을 듬뿍 낸 다음 여러개체모아심기방법으로 강냉이를 심었는데 푸르싱싱하게 잘 자라고있었다.

강냉이잎을 만지며 포전들을 굽어보는 금숙에게는 한때 농사가 안된다고 제쳐놓았던 저수확지를 개량해온 나날이 새삼스레 돌이켜졌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농사를 잘 짓자면 나라의 쌀독을 책임진 농업부문 일군들과 농장원들이 자기의 책임과 본분을 다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연줄연줄 뻗은 높고낮은 등성이마다에 있는 비탈밭들, 석비레성분이 많아 색갈마저 희읍스름한 땅…

관리위원장(당시)으로 사업을 시작한 10여년전 그때 경지면적의 절반이상이나 되는 이런 저수확지를 돌아보던 금숙의 마음은 얼마나 무거웠던가.

이 땅에서 농사를 꽤 지어낼수 있겠는지.…

흙 한줌한줌을 소중히 안아보는 금숙의 가슴은 막 타드는듯하였다.이 포전에서 저 포전으로 이어지던 그의 발걸음은 저도 모르게 제1작업반으로 향해졌다.당시 이곳 작업반장이였던 박근록은 소문난 혁신자였다.

지력때문에 속을 썩이는 금숙에게 오랜 실농군인 근록이 자기 생각을 터놓았다.

《병든 사람을 돌보듯이 저수확지도 정성을 쏟아부으면 옥답으로 만들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고장에 오래 있은 연고로 땅물계에 환한 그가 주근주근 꺼내놓은 경험담은 금숙에게 있어서 가물에 단비와도 같은것이였다.

마음이 가벼워졌다.단지 지력개선방도를 찾았다는 기쁨때문만이 아니였다.농장의 농사가 추서지 못하고있는 근본원인이 어데 있는가를 알았던것이다.

금숙이 농장에 온 이듬해부터 지력개선을 위한 된바람이 일어번졌다.

지력개선을 위한 사회주의경쟁이 선포되던 그날 금숙은 말하였다.

한평한평이 그토록 소중한 이 땅에서 농사를 제대로 못짓고있으니 이게 얼마나 큰죄로 되는지 잊지 말자.

저수확지개량의 불길속에 농장원들은 그전에는 스쳐보던 산분까지 모아들이며 애썼다.

그러나 땅이 단번에 좋아질수 없듯이 모든 농장원들의 정신상태가 일시에 개변될수는 없었다.

어느날 한 작업반에 나갔던 금숙은 큰길옆에만 무지무지 쌓아져있는 거름더미를 헤쳐보다가 그만 아연해졌다.

(이것을 거름이라고 내다니.농사군이 어쩌면 이렇게까지…)

그의 얼굴에 무거운 그늘이 졌다.이런 그와 마주친 몇몇 농장원들은 자기들의 마음을 다 들여다보는것만 같은 금숙의 눈빛에 머리를 들지 못했다.

모두 자기가 딛고있는 땅을 보라.병들고 허약해진 땅이 주인들을 원망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우리가 이제라도 작심하여 달라붙지 않는다면 저수확지들은 영영 버려진 땅으로 되고만다.…

며칠후 한 농장원은 누구나 제일 척박한 땅으로 치부하는 포전에 거름을 내는 금숙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졌다.여기서도 농사를 지으려고 한다는 금숙의 말을 들은 그는 하필이면 왜 이런 땅을 맡아 고생을 사서 하려는가고 하는것이였다.

(그래, 고생을 사서 해서라도 이 땅을 살려내자.)

강심을 먹은 금숙은 량심으로 맡아안은 수백평의 저수확지에 도시거름까지 내려고 새벽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땅을 기름지우기 위해서라면 제뼈도 깎아내려는 그의 마음을 안 농장원들도 새벽길에 나섰다.

거름 한줌을 쌀 한줌처럼, 땅을 자기 살붙이처럼 여긴 그들은 미량성분을 보충해줄수 있는 원천도 모조리 찾아 리용하며 진심을 바쳐갔다.

땅은 주인들의 성실성에 열매로 보답했다.몇해후 농장은 마침내 알곡생산계획을 수행하였던것이다.하지만 그것은 첫걸음을 뗀데 불과하였다.

이때껏 농장이 나라의 쌀독을 채우는데서 제몫을 다 못하지 않았던가.

금숙의 머리속에서는 이 생각이 떠날줄 몰랐다.하여 지력개선을 위한 보다 통이 큰 계획을 세웠다.

사람들이 수군수군하였다.그 아름찬 일을 어떻게 해낸단 말인가.

금숙은 그에 대한 대답으로 새벽마다 읍지구에 나가 진거름을 실어왔다.여기에 낟알짚이나 풀 등을 섞어 만든 질좋은 거름짐을 아침과 오후에 일터로 나올 때마다 지고나왔다.

아침부터 밤늦도록 농장경영관리로 바삐 뛰고 새벽길을 걷자니 참으로 힘에 부쳤다.하지만 농장에 아직 병든 땅이 있다는 생각이 그의 새벽길을 계속 재촉하였다.

그를 따라 땅에 바치는 농장원들의 진심도 더 뜨거워지던 어느날이였다.

갑자기 관리위원회앞마당이 법석 끓었다.마을의 년로자들이 저수확지개량에 참가하겠다고 찾아왔던것이다.

눈물이 핑 돌만큼 고마왔지만 나이때문에 만류하는 금숙에게 그들은 장담하였다.

《우리 나이걱정일랑 말라구.젊은이들 찜쪄먹게 땅을 잘 걸구어 소출이 흠썩하니 나게 할테니.》

이 고장에 사는 사람들모두가 이렇게 떨쳐나 저수확지에서도 얼마든지 알곡을 증산할수 있음을 실천으로 증명하였으며 농장의 알곡생산계획수행률은 10여년전에 비해 훨씬 장성하였다.지난해 농장은 농사에서 군적으로 앞선 단위로 되였다.

그러나 금숙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언제인가 새벽에 읍지구에 나갔던 그를 마중하며 정윤철리당비서가 말하였다.

《이제는 일군들에게 과업만 주어도 되지 않겠습니까?》

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에 금숙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전국의 모든 농장 경리들만 제구실을 바로해도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안고계시는 농사에 대한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릴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늘 마음에 얹혀있어 이 길을 멈추지 못하겠습니다.》

우리 당에 언제나 풍작의 보고만을 드릴 충심을 안고 금숙은 오늘도 변함없는 헌신의 길을 걷는다.

본사기자 김성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