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5일 수요일  
로동신문
로동당의 품이 있어 땅의 청춘이 빛난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전위거리 준공식장에서 만나주신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원들에 대한 이야기

2024.5.25. 《로동신문》 4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애국열로 충만된 청년들의 기개와 풍모는 자기 세대의 력사적사명을 다하기 위한 실천과정, 단련과정에 승화되고 공고해지게 됩니다.》

수백만 청년들 아니 온 나라 인민들이 격동되였다.

뜻깊은 준공의 날 전위거리건설에 참가한 수많은 청년들을 대표하여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만나뵈옵고 뜨거운 축복과 고무격려를 받아안은 청년혁신자들, 그들은 어떤 사연을 안고 새 거리건설장으로 달려왔으며 어떤 위훈을 세우고 만사람이 부러워하는 영광의 단상에 서게 되였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우리 혁명과 당력사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시기에 사회주의강국건설의 중요한 전구인 수도건설의 한개 전역을 통채로 맡겨준 위대한 당의 믿음이 이 땅의 청년들을 단 1년동안에 어떻게 몰라보게 성장시켰는가에 대한 명백한 해답으로 된다.

 

아버지원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다

 

당 제8차대회가 펼친 웅대한 수도건설구상에 따라 평양시 5만세대 살림집건설이 한창이던 지난해초 청년들은 뜻밖의 격동적인 소식에 접하게 되였다.

2023년도 평양시 1만세대 살림집건설과 별도로 수도 평양의 북쪽관문구역에 4 000여세대의 살림집을 일떠세워 옹근 하나의 특색있는 거리를 형성하는 중요한 대상건설을 청년들에게 통채로 맡겨준 당의 믿음은 온 나라를 불도가니처럼 끓게 하였다.

아버지원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다!

이런 불같은 일념을 안고 전국의 청년동맹조직들에서 무려 10여만명의 청년들이 수도건설에 탄원해나섰다.만사람의 뜨거운 바래움을 받으며 방방곡곡에서 수많은 청년들이 평양행을 재촉하였다.그들속에는 라선시려단 선봉구역대대 대원 리옥별동무도 있었다.

평양, 아버지원수님 계시는 곳! 얼마나 그립고 꿈결에도 가고싶던 곳인가.

TV로만 보아오던 평양에 자기의 땀을 바쳐 새 거리를 일떠세우게 되였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우리 청년들을 제일 사랑하시는 아버지원수님께서 새 거리건설장에 어느때든 꼭 찾아오실거야.그러면 나도 아버지원수님을 뵈올수 있을가.)

문득 가슴을 꽉 채우는 그리움에 그의 두볼은 어느새 눈물로 젖어들었다.그것은 조국의 북변 멀리에서 평양을 향해 달려오던 한 처녀탄원자의 심정만이 아니였다.공장의 청년동맹원들모두가 앞을 다투어 수도건설자가 될것을 탄원한 그날 청년동맹초급일군에게 제일먼저 새 거리건설장에 보내줄것을 열렬히 제기하여 평양시려단 제1련대 시급대대의 한 성원이 된 강진희동무의 마음도 다를바 없었다.

김정숙평양방직공장에서 로동자로 일하는 그의 어머니에게는 남모르는 아쉬움이 있었다.

10년전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공장의 일군들, 로동계급과 함께 사랑의 기념사진을 찍어주신 그날 그의 어머니는 아쉽게도 그 영광의 자리에 없었다.어머니가 이루지 못한 그 소원을 꼭 이루려는 간절한 마음을 안고 그는 새 거리건설장에 달려나온 첫날부터 남먼저 무거운 짐을 졌다.

말없이 대오의 앞장에서 달려나가는 그 헌신성으로 하여 남달리 돋보이는 같은 대대의 송금성동무 역시 강진희동무와 꼭같은 소원을 안고 수도건설자가 된 청년이였다.

그무렵 건설장으로는 금화광산의 곽금숙, 곽금희자매운전사들이 대형화물자동차를 몰고들어섰다.

아버지원수님 계시는 평양에 왔구나 하는 생각에 곽금희동무의 마음은 불덩이를 안은듯 달아올랐다.언니인 곽금숙동무는 아버지의 교대운전사가 되여 려명거리건설에도 참가해보았지만 동생인 그에게는 평양이 처음이였다.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께서 몇차례나 다녀가신 려명거리건설장에서 찍은 언니의 사진을 보며 그가 얼마나 부러워했던가.그런데 오늘은 그에게도 수도의 거리를 마음껏 누비며 땀을 바칠수 있는 더없이 영예로운 시각이 다가왔던것이다.

그의 집안은 할아버지때부터 대대로 모두가 운전사들이다.아버지의 대를 잇겠다면서 운전대를 잡은 언니의 뒤를 따라 동생인 곽금희동무까지 자동차운전사가 되였을 때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해 물었었다.그 육중한 자동차가 그렇게도 마음에 드는가고.

그들이 만일 곁에 있다면 그는 이렇게 말하고싶었다.아침저녁이 다르게 변모되는 새 거리건설장을 보라, 얼마나 할 일이 많은가, 남보다 더 빨리, 더 많은 일을 할수 있는 운전사가 얼마나 좋은가고.

그들자매가 우리 수도 평양을 위하여 한번 본때있게 일해보자고 마음다지던 그 시각 평안북도려단 직속대대 대대장 서상희동무는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향산군청년동맹위원회 일군이였던 그가 삼지연시건설에 돌격대원으로 탄원했을 때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었다.

《네가 택한 길은 우리 원수님께로 더 가까이 가는 길이다.힘들 때도 있고 어려움도 많겠지만 주저앉지 말고 끝까지 한길을 가거라.》

삼지연시건설의 나날에 처녀대대장으로 성장한 그는 언제나 돌격대의 전렬에서 내달렸다.하지만 새 거리건설장에 달려와보니 저도 모르게 위구심이 생겼다.집이라고는 살림집 몇동밖에 지어본 경험이 없는 그가 대대를 이끌어 이전에는 전혀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들을 맡아 해제껴야 하였다.더우기 안타까운것은 3개 군에서 모여온 지휘관들과 대원들이 대대라는 하나의 지붕아래서 한집안식솔처럼 살아야겠는데 성격과 주장도 나름대로였고 처녀대대장을 보는 눈빛도 각각이였다.

(온 나라에서 한다하는 청년일군들, 승벽심강한 청년들은 다 모여왔는데 처녀인 내가 꽤 대대를 잘 이끌수 있을가.뒤떨어지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당의 믿음에 보답하지 못할가봐 걱정스러운 마음, 그것은 남보다 많은 경험과 높은 기능을 가진 로숙한 지휘관인 함경남도려단 기술련대 4대대 대대장 조명진동무나 미래과학자거리를 비롯한 많은 기념비적건축물들을 일떠세운 속도전청년돌격대 제4려단 4대대의 중대장인 계남혁동무의 가슴속에서도 꼭같이 커가고있었다.

오늘은 온 나라가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는 청년들이지만 처음 건설장으로 달려왔을 당시 그들속에는 사람들앞에 머리를 들고 살아보는것이 소원인 청년들도 있었다.

나라앞에 죄를 지은 아버지때문에, 잘못 살아온 지난날때문에 남모르는 눈물도 많이 흘린 그들에게 있어서 청년들 누구나 마음껏 땀을 바치며 청춘시절을 빛내일수 있는 투쟁의 전구를 마련해주신 아버지원수님의 믿음과 사랑은 정녕 얼마나 고마왔던가.그 믿음과 사랑에 받들려 평안남도려단 제1련대 평성시대대의 리은향동무와 함경북도려단 제5련대 김책제철련합기업소대대의 안진혁동무는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 대오에 서게 되였다.

그처럼 와보고싶던 평양, 새 거리건설 착공식장에서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을 꿈만 같이 뵈온 그날 청년들의 가슴마다 끓어넘치던 그 감격을 무슨 말로 다 전할수 있으랴.

우리 혁명의 성격을 나타내는 하나의 정치투쟁인 새 거리건설을 청년들에게 맡겨준 당의 믿음, 전세대의 넋을 꿋꿋이 이어갈 새세대의 력사적사명감을 온몸으로 절감하며 청년들은 가슴에 깊이 새기였다.

우리 수도 평양을 위하여!

진정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사랑하는 조국을 위하여!》이고 《아버지원수님을 위하여!》였다.

어디에서 일했든 어떻게 살아왔든 새 거리건설장으로 달려온 청년들에게는 꼭같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그것은 당중앙의 호소를 자기들을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처럼 온넋으로 받아들였다는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위대하신 어버이의 부름을 인생의 가장 큰 영광과 행운으로 여기고 청춘의 힘과 용맹을 깡그리 바쳐갈 불같은 일념을 간직했기에 돌격대에 입대하기 전까지는 이 땅 어디서나 볼수 있는 그지없이 소박하고 평범하였던 그들이 오늘은 전위거리와 더불어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의 품에 안겨 영광의 축복을 받아안은, 온 나라가 부러워하는 청년혁신자들로 성장할수 있은것 아니겠는가.

 

우리 당이 키운 영웅청년의 기상과 본때를 남김없이 떨쳐가리

 

쉽지 않았다.맹세를 실천한다는것은 결코 헐한 일이 아니였다.

건설에서는 그 어떤 일에도 막힘이 없다고 자부해왔지만 속도전청년돌격대의 중대장 계남혁동무에게 있어서 초고층건물에 대한 건설은 실로 처음이였다.시간은 사정없이 흘러가는데 일자리는 푹푹 나지 않았다.안타까왔다.방도는 어디에 있는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늘 그러했듯이 그는 착공식날에 하신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의 연설을 다시한번 자자구구 새겨보았다.모르는것은 배우고 힘이 모자라면 서로 보충하면서 공사과제수행에서 집단적혁신을 일으켜야 한다고 하신 아버지원수님의 말씀에 담긴 뜻을 하나하나 음미해보던 그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쳐올렸다.

그렇다.방도는 집단적혁신에 있다.기능공들을 더 많이 키우자.

하여 그를 비롯한 지휘관들은 현장으로, 대원들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중대에서는 기능공이 신대원들을 맡아키우고 한가지 기능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기능을 발휘할수 있는 다기능공이 되기 위한 사업이 활발히 벌어졌다.

그 시각 라선시려단 선봉구역대대 대원 리옥별동무는 하루가 다르게 키를 솟구는 80층초고층살림집을 바라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군인들은 확실히 달랐다.우리 당에 완공의 보고를 드릴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불가능을 맞받아 용감하게 나아가는 그들앞에 자신을 세워보니 얼굴이 붉어졌다.

(나보다 어린 대원이 기중기를 운전해보겠다고 나설 때 권양기운전이나마 해본 나는 왜 망설이기만 했던가.

아버지원수님께서 지금의 나를 보신다면…)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이제 온 나라는 한층한층 솟구치는 건축물들의 면모와 더불어 나날이 억세여지고 슬기로워지는 우리 청년들의 성장을 보게 될것이라고 하신 아버지원수님의 말씀이 귀전에 메아리쳐와 더는 그대로 앉아있을수가 없었다.새 거리건설에 필요한 일이라면 열백가지라도 다 배워서 무조건 해내야 할 우리 청년들이 아닌가.

어제날엔 짬만 있으면 졸군 하여 동무들로부터 잠보라고 불리우던 20살처녀, 조금만 높은 곳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아도 하늘땅이 빙빙 도는것같아 눈을 꼭 감군 하던 그는 그렇게 기중기운전공이 되였다.체소한 그가 수십t짜리 기중기를 마음대로 척척 다루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혀를 차며 말했다.아침저녁이 다르게 변모되는 새 거리건설장에선 돌격대원들도 하루가 다르게 변모된다고.

새 거리건설이 시작되던 당시 함경남도려단 기술련대 4대대에는 기능공이 많지 못했다.품어주고 키워준 어머니당의 은덕에 보답하겠다고 열렬하게 탄원해나선 중등학원졸업생들이 대대의 주력을 이루고있었는데 그들은 말그대로 건설에서는 생둥이들이였다.하지만 누구나 기능공이 된 오늘 그의 대대는 려단에 없어서는 안될 보배집단이다.그러나 그보다 더 자랑스러운것은 전위거리건설의 나날에 돌격대원들모두가 한모습이 되였다는것이다.

그 놀라운 성과속에는 대원들을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의 참된 아들딸로 키우기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온 대대장 조명진동무의 숨은 노력이 뜨겁게 깃들어있다.

지난해 6월 어느날 갑자기 소낙비와 함께 우박이 쏟아져내렸다.건설현장은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였다.세찬 바람에 휘틀이 넘어지자 그는 대원들의 앞장에서 한몸이 그대로 버팀목이 되여 휘틀을 고정해나갔다.건설초기에는 어려움을 이기지 못해 건설장을 떠났던 대원도, 쉬운 일만 골라하던 리기주의자도, 집단의 속을 태우던 애꾸러기도 그의 뒤를 따라 다같이 어깨를 들이밀었다.비는 억수로 쏟아져내렸건만 작업장을 떠난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그날 밤 조명진동무는 대원들에게 물었다.힘들지 않았는가고.그에 대한 대원들의 대답을 여기에 그대로 전한다.

《비가 오고 우박이 쏟아진다고 작업장을 떠나면 착공의 그날 아버지원수님께 다진 맹세는 어떻게 지키겠습니까.》

《아버지원수님앞에 언제나 떳떳하게 나서고싶었습니다.》

《아버지원수님의 사랑은 끝없이 와닿는데 받기만 하고 제대로 보답을 못해 항상 죄스러웠습니다.》

그것은 진정 그들의 마음만이 아닌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원들모두의 한결같은 심정이였다.함경북도려단 제5련대 김책제철련합기업소대대 대원 안진혁동무의 마음 역시 다를바 없었다.

나라앞에 죄를 짓고 정든 고향집에도 떳떳이 들어서지 못했던 그였다.하지만 어머니당조직에서는 그가 로동계급속에서 인생의 새 출발을 할수 있도록 떠밀어주었고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체계에 망라되여 많은것을 배울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3년전 청년절경축행사에 참가하여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의 따뜻한 축복을 받아안은 9명 청년들에 대한 소식에 접했을 때 그는 며칠밤을 잠들지 못했다.뒤떨어졌던 청년들이 자기들을 품어주고 키워준 어머니당과 사회주의제도의 고마움을 깨닫고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해 제일 어렵고 힘든 초소에서 인생의 새 출발을 한것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대견하게 여긴다고 하신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의 그 말씀을 몇번이나 곱씹어외우며 그는 울고 또 울었다.꼭 자기가 받아안은 믿음같아서.

이 땅에 태여나 자라난 청년이라면 한사람도 남김없이 모두다 공산주의사회까지 데리고가자는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의지라고 하시며 병든 자식, 상처입은 자식일수록 더 따뜻이 품어 그늘없이 내세워주시는 아버지원수님, 그 믿음에 천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는 참된 아들이 되고싶어 그는 늘 앞장에서 달렸다.건설장의 많은 기계설비들을 도맡아 수리하며 기발한 착상으로 건설자재를 절약하는데도 적극 기여하였다.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원들의 마음은 진정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 원수님과 혈맥처럼 이어져있었다.

평양시려단의 혁신자부부인 송금성, 강진희동무들이 사랑을 맺게 된 사연은 참으로 가슴뜨겁다.

지난해 9월 어느날 평양시려단 제1련대 시급대대 대원들은 뜻밖의 난관에 부닥치게 되였다.기운차게 돌아가던 압송기가 별안간 멎어섰던것이다.압송기의 관안에 들어찼던 혼합물을 다 쏟아놓으니 그 량이 적지 않았다.그대로 두면 인차 굳어질것이고 수십층우에까지 날라가자니 너무도 아름찼다.그때 강진희동무가 나섰다.

《이제라도 문득 외국방문의 길에 오르시였던 우리 원수님께서 건설장을 찾으신다면 한층이라도 더 높아진 살림집을 보여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는 송금성동무에게로 다가갔다.손에 삽까지 쥐여주며 어서 혼합물을 담아달라고 하는 처녀앞에서 송금성동무는 차마 머리를 들수 없었다.연약하다고만 여겼던 강진희동무가 새삼스럽게 돋보일수록 처녀의 높은 정신세계에 비하면 너무도 뒤떨어져있는 자신이 정말 부끄러웠다.그날 대대는 계획대로 기어이 한개 층을 올리고야말았다.

그 나날을 추억하며 송금성동무는 이렇게 고백했다.

《평소에도 늘 저를 앞서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에게 자꾸 마음이 끌렸댔는데 그날엔 아예 확고하게 결심이 서더군요.놓치면 안되겠구나 하고 말입니다.》

전위거리건설장에서 맺어진 청춘남녀들의 사랑, 그 초석은 이렇듯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을 받드는 청년전위들의 참되고 순결한 백옥같은 충심이였다.수령을 아버지로 믿고 따르며 아버지앞에 언제나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아들딸이 되려는 지극한 마음으로 아버지원수님을 일구월심 받드는 우리 청년들에게 과연 못해낼 일이 무엇이며 이겨내지 못할 난관이 무엇이랴.

황해북도려단 운수중대 대원인 곽금희동무가 언니인 곽금숙동무와 함께 지난 1년간 대형화물자동차로 나른 물동량은 산을 이룰만큼 헤아릴수없이 많다.그러다나니 그들은 언제한번 편히 누워 발편잠을 자본적이 없다.

그들이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에 입대한지 며칠 안되여 돌격대에서는 골재수송경쟁이 조직되였다.수송경쟁 전 기간 곽금희동무는 언니와 함께 차에서 살다싶이 하였다.교대로 만가동을 보장하는 그들에게 있어서 제일 힘든것은 잠을 물리치는것이였다.참기 힘들게 졸음이 몰려들 때면 자매는 노래를 불렀다.그렇게 그들은 깊은 밤에도, 이른새벽에도 늘 수도의 거리를 달리고 또 달렸다.

어느날 차에서 쪽잠에 들었던 곽금희동무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글쎄 건설장에 찾아오신 아버지원수님께서 자매운전사들을 찾으신다는 소식에 그는 언니를 찾아 막 달려가다가 그만 경적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여났던것이다.

한순간의 꿈이였지만 꼭 생시처럼 느껴져 그는 마음이 울렁거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그의 입가에서는 부지중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언니, 아버지원수님을 만나뵙는 꿈을 한번만 더 꾸어볼순 없을가.》

그 소원을 안고 자매는 마침내 전돌격대적인 수송경쟁에서 1등의 영예를 쟁취하였다.그들은 그렇게 온넋을 바쳐 전위거리의 준공을 마중해갔다.그 나날 곽금희동무는 조국해방전쟁승리 70돐 경축행사에 참가하였으며 당원으로 성장한 곽금숙동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75돐 경축행사에 참가하여 사랑의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온 건설장이 떠받드는 그들을 누구보다 부럽게, 아득하게 바라본 처녀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평안남도려단 제1련대 평성시대대 대원 리은향동무였다.

그의 일기장을 펼쳐보느라면 그가 걸어온 길이 자욱자욱 보인다.

《나는 어릴 때부터 동무들이 아버지자랑을 할 때면 늘 자리를 피하군 했다.나라앞에 죄를 지은 아버지때문에 남들을 보기가 부끄러웠던것이다.그러나 건설장에 와서 나는 처음으로 사람들앞에 당당히 나서게 되였다.

려단에서는 나를 준마처녀라고 부르며 떠받들어주고있다.동지들과 집단앞에, 나라앞에 언제나 떳떳할수 있게 남들이 걸을 때 나는 한발자욱이라도 더 달리겠다.》

《개성시의 어느한 청년동맹원이 〈청년전위〉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고 나에게 위문편지를 보내왔다.신문에서 나의 사진까지 따서 함께 붙여왔다.내가 정말 부럽다던 그 동무의 진정이 자꾸만 눈물겹게 가슴을 파고든다.…》

건설장에서 일을 시작한지 한주일만에 대대속보판에, 얼마후엔 려단속보판에, 또 얼마후에는 돌격대영예게시판에 자기의 사진이 나붙었을 때 그는 꼭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그것은 태여나 20여년세월에 그가 지닌 제일 큰 긍지였다.그이상은 더 바랄수 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글쎄 아버지원수님을 그처럼 몸가까이 뵙게 될줄 어찌 상상이나 할수 있었으랴.뜻깊은 준공의 날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앞에 청년혁신자들과 나란히 선 리은향동무는 자꾸만 목이 꽉 메여올라 마음속에 차고넘치는 고마움의 인사를 제대로 드릴수 없었다.그날 밤 그는 마음속깊이 간직했던 아버지라는 부름을 눈물속에 목메여 부르고 또 불렀다.

(나에게는 이 세상에서 제일 친근하고 위대하신 아버지가 계신다!)

문명부강한 우리 국가의 미래상이 응축된 청춘대기념비인 전위거리 준공식이 성대히 진행된 때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날 새집들이로 흥성이던 사람들은 어느한 주민의 청높은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여러분, 이 동무가 바로 우리 원수님께서 준공식장에서 만나주신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의 처녀대대장입니다.》

주민들의 새집들이를 도와주던 서상희동무는 삽시에 인파속에 묻혀버렸다.우리 원수님을 만나뵈왔던 그날의 이야기를 해달라는 사람들에게 그는 선뜻 말을 뗄수가 없었다.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의 모습을 우러르는 순간 그지없이 평범한 자기들을 온 나라가 다 알도록 키워주신 어버이사랑과 믿음에 눈물이 솟구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며 또다시 흐느끼는 그와 함께 사람들도 울었다.전위거리완공과 그 새집들이기쁨을 위해 우리 어버이께서 바치신 심혈과 로고가 가슴에 어려와, 또 한세대의 훌륭한 청년대군을 키워주신 그 은덕이 너무도 고마와 격정을 금치 못했다.

* *

전위거리, 다시금 뜨겁게 바라본다.

그러면 그 력사적인 준공식날에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두리에 성새를 이루었던 청년들의 모습이 거대한 군상처럼 안겨온다.경애하는 그이께서 뜨겁게 고무격려해주신 그 청년혁신자들과 꼭같은 모습으로 전위거리건설자들의 모습이 어려온다.우리 당이 키운 영웅청년의 기상과 본때를 남김없이 떨친 그들의 모습에서 위대한 청년중시사상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온몸으로 절감하게 된다.

혁명하는 당에 있어서 자기의 믿음직한 교대자, 후비대를 가지고있는것은 그 무엇에도 비길수 없는 가장 큰 자랑으로 되며 오직 로동당의 품에서만 청춘의 위훈도 꽃펴날수 있고 인생의 크나큰 영광도 받아안을수 있다.

조국의 부름앞에 충실하고 사회와 집단앞에 성실하며 미래를 위해 투신하는 이렇듯 미더운 열혈의 청년들이 당의 두리에 억척의 성벽을 이루고있어 사회주의강국건설위업의 승리는 확정적이다.

글 본사기자 조향선

사진 오진일

 

영광의 단상에 오른 미더운 청년전위들

 

 

곽금희동무

 

 

계남혁동무

 

 

리은향동무

 

 

송금성동무

 

 

강진희동무

 

 

조명진동무

 

 

서상희동무

 

 

안진혁동무

 

 

리옥별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