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9월 20일 금요일  
로동신문
실화
영예탄부

2024.5.29. 《로동신문》 6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이 땅에 태를 묻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의 품속에서 참된 삶을 누리게 하자는것이 우리 당의 결심입니다.》

몇해전 사람들속에서는 중편수기 《운명의 손길》이 널리 애독되였다.

이 수기는 한 영예근로자의 수십년간의 이야기가 진실하게 반영된것으로 하여 감동이 컸다.더우기 필자가 앞을 보지 못하는 몸으로 수기를 완성하였다는 사실은 독자들의 심금을 틀어잡았다.그가 바로 북창지구청년탄광련합기업소 인포청년탄광의 명예방송원 라일수동무이다.

《첫 출연》, 《소원》, 《좌절》, 《불빛》, 《상봉》, 《행복》 등의 제목들이 보여주다싶이 중편수기에는 라일수동무가 걸어온 쉽지 않은 인생길이 방불히 그려져있었다.

* *

탄광병원의 한 호실에 홍안의 청년이 그린듯 누워있었다.굴진공 라일수였다.

(왜 이렇게 캄캄할가? 함께 일하던 동무들은…)

라일수는 애써 기억을 더듬었다.착암기소리 울리던 막장, 교대를 마치고도 일손을 놓지 않던 소대원들, 막장에 짐이 실리는것을 발견하고 동지들을 향해 몸을 날리던 일…

그이상은 더 생각나지 않았다.

문득 곁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가망이 없습니까?》

그것은 탄광책임일군의 목소리였다.

이어 울리는 나직한 대답소리, 《최선을 다하였지만 현대의학의 힘으로써는 더이상…》

라일수는 붕대를 감은 두눈이며 탄가루가 박혀 거칠어진 자기의 얼굴을 손으로 더듬어보았다.

순간 저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때가 바로 35년전 라일수가 19살 나던 해였다.그날 그는 두눈실명에 로동능력상실이라는 너무도 상상밖의 진단을 받았다.

라일수는 하루하루를 끝없는 좌절감속에 모대기였다.

그러던 어느날 탄광일군들이 그를 찾아왔다.입원해있는 기간 때없이 찾아와 회복정형을 알아보던 그들이였다.

다정히 손을 잡고 치료에 전념하라고 절절하게 이르기도 하고 갖가지 영양식품과 보약재를 안겨주면서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여야 다시 시를 읊을수 있다고 힘을 주군 하였다.

사실 일수는 시를 무척 사랑했고 늘 시집을 품고다니는 그를 가리켜 사람들은 탄부시인이라고 정담아 불렀다.그런데 지금은…

일수는 말없이 고개를 돌리였다.자기를 잊지 않고 자주 찾아오는 그 진정이 고마왔지만 그들을 대할 때면 보람찼던 로동의 나날과 함께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했던 꿈과 포부가 되새겨져 마음이 더 쓰려나군 하였다.

일수는 일군들이 오랜 시간 자기곁을 떠나지 못하며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그 목소리들이 하나도 새겨지지 않았다.

그처럼 희열에 넘쳐 오르던 출근길을 다시는 걷지 못하게 되였다는 생각, 한창나이에 사람들의 동정의 대상이 되였다는 괴로움이 시종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그러나 일수는 자기때문에 잠 못드는 사람들이 있다는것을 미처 알수 없었다.

바로 그 시각 탄광의 한 사무실에서는 책임일군들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오늘 나는 일수동무가 바라는것이 무엇이고 그를 위해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새삼스럽게 알게 되였습니다.》

《그렇습니다.지금 그를 괴롭히는것은 두눈을 잃은 슬픔보다도 사회에 아무런 보탬도 줄수 없다는 바로 그것입니다.》

몇달후 라일수는 한 탄광일군의 손에 이끌려 집문밖을 나서게 되였다.발밑에서는 눈이 밟히는 소리가 가락맞게 들려왔다.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갑니까?》

《탄광으로 가지.일수가 그토록 사랑하던 동지들이 있는…》

일수는 걸음을 멈추었다.

《나야 이젠 아무 일도 할수 없는 몸인데…》

그러자 일군은 그의 손목을 꽉 그러쥐였다.

《일수, 힘을 내라구.우리 종업원명단에는 여전히 동무의 이름이 있소.》

그 말을 일수는 마치 꿈속에서처럼 들었다.

(자본주의사회라면 난 길가의 막돌처럼 버림받았을것이다.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부어주고있는것인가.)

그날 일수는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아, 고마운 우리 사회, 고마운 우리 집단, 그들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튿날부터 일수는 집에서부터 갱입구까지 혼자서 걷는 련습을 시작하였다.

《어머니, 집에서 열발자국 가면 나무가 있고 거기서 5분쯤 걸으면 좁은 오솔길이 있어요.그 오솔길을 따라가다가 신작로만 건느면 탄광이구요.…》

그러는 아들의 미소어린 얼굴을 그의 어머니는 눈물속에 바라보았다.

일수의 출근길은 다시 이어졌다.그는 무섭게 일하였다.다른 탄부들의 일손도 도왔으며 밤에는 책상에 마주앉아 시를 썼다.

보람찬 투쟁의 길에서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피타게 노력하는 일수를 위해 탄광의 일군들과 탄부들, 이웃들은 더욱 뜨거운 진정을 바치였다.그의 아름다운 지향을 지켜주고 빛내여주려는 마음들이 일매지게 닦아진 비탈길에도, 시내가의 징검돌 하나하나에도 그대로 어려있었다.

6년전 7월 어느날 라일수는 한장의 초청장을 받게 되였다.

《라일수동지를 인포청년탄광명명 1돐 경축행사에 초청함.》이라고 쓴 초청장에는 탄광초급당위원회의 공인까지 찍혀있었다.

그것을 가슴에 꼭 품고 안해의 손에 이끌려 행사장소에 들어선 라일수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탄광의 첫 개발자들과 어깨나란히 평범한 탄부인 자기가 맨앞에 자리를 잡게 된것이였다.

수십년전 당의 뜻을 높이 받들고 산짐승만 우글거리던 인포골로 달려와 탄광개발의 첫 발파소리를 울렸던 개발자들이 저마끔 다가와 그의 손을 잡아주었고 장내에서는 박수소리가 그칠줄 몰랐다.

라일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웠다.

(고맙습니다.동지들의 믿음과 기대를 잊지 않겠습니다.생의 끝까지 탄부의 량심에 떳떳하겠습니다.)

* *

라일수는 지금껏 지팽이를 별로 리용해본적이 없다.30여년세월 그에게는 늘 정다운 손길들이 닿아있었다.

그들속에는 사회안전군 군관인 고국진도 있다.그는 오래전에 군복을 입고 북창의 탄전을 떠난 몸이였지만 우정과 의리를 귀중히 여기고 일수를 물심량면으로 보살펴주었다.

한번은 일수가 병원에 입원하였을 때 곁에서 불쑥 서정시 《어머니》의 구절이 들려왔다.머리맡에 있는 소형록음기에서 울려나오는것이였다.시를 사랑하는 일수를 위해 국진이 마련한 록음기안에는 온 나라가 다 아는 영예군인시인인 김시권의 시 《창을 열어다오》를 비롯한 수많은 시작품들이 들어있었다.

꼭 훌륭한 시인이 되라고 고무해주며 늘 다심하게 돌봐준 고국진은 사실 수십년전 라일수를 위해 자기의 눈을 바치겠다고 서슴없이 나섰던 사람이였다.

《일수는 당에서 아끼고 내세워주는 탄부입니다.일터의 혁신자이고 없어서는 안될 보배입니다.》

그때 고국진은 의료일군들의 손목을 꼭 잡고 눈물속에 이 말을 곱씹었었다.

그런 그였기에 문예도서들과 참고서적, 콤퓨터와 문화기재들을 보내주며 일수가 굴함없이 생을 빛내일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여주고 사회와 집단을 위한 좋은 일도 수많이 찾아하였던것이였다.

어찌 그뿐이랴.

탄광의 일군들과 탄부들, 작품창작을 힘껏 방조해준 중앙과 도의 작가들모두가 일수의 혈육이였고 그의 인생길을 언제나 함께 해준 동지들이였다.그런 사람들, 그런 사회를 위해 마지막피 한방울까지 깡그리 바치고싶은것이 라일수의 마음이였다.

* *

영예탄부, 그가 사회의 혜택을 받으며 편안한 생을 누린다고 누가 탓할 사람은 없다.하지만 라일수동무는 오늘도 굴진공시절처럼 아니 그때보다 더 열정적으로 삶을 이어가고있다.

그가 두눈을 잃은 몸으로 지금껏 탄광의 곳곳에서 진행한 선동회수는 헤아릴수없이 많다.탄부들을 힘껏 고무할 마음 안고 밤을 새워가며 창작한 글작품은 또 얼마나 많은가.인포사람들은 그런 영예탄부를 탄광의 자랑으로 여기며 높이 떠받들어주고있다.

영예탄부!

바로 그 값높은 부름, 빛나는 삶의 뿌리는 사람들모두가 하나의 대가정을 이룬 우리 사회에 넘치는 사랑과 정이다.

아름다운 화원에서 그윽한 향기가 풍기듯이 미덕과 미풍의 화원에서 억세고 참된 인간들이 자란다는것을 한 영예근로자의 삶이 그대로 전해주고있다.

본사기자 오은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