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9월 18일 수요일  
로동신문
외진 등판에서
강계염소목장 사덕2분장 방목지를 찾아서

2024.6.7. 《로동신문》 6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오늘 우리의 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는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묵묵히 자기가 맡은 초소에서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해발높이 1 300여m, 사덕산은 그렇게 높았다.하지만 우리는 줄곧 쉬지 않고 걸음을 다우쳤다.

바로 사덕산의 정점에 무연한 풀판이 펼쳐져있고 누구나 선뜻 발붙이기 저어하는 그 사덕등판에 우리 당의 육아정책을 앞장에서 받들어갈 일념 안고 삶의 보금자리를 정한 사람들이 있었던것이다.

그들이 바로 강계염소목장 사덕2분장 종업원들이였다.

《이제 올라가보면 알게 되겠지만 500여정보의 풀판에서 몇해전부터 방목을 시작하여 염소마리수를 대대적으로 늘이고 젖제품도 생산하고있습니다.》

우리보다 한발 앞서 걸으며 목장일군이 하는 이야기였다.우리가 그를 따라 경사급한 산길을 여러 시간 톺아 장강군 읍에서 멀리 떨어진 사덕등판에 도착하였을 때였다.

우리의 눈앞에 아름다운 산촌의 류다른 정서가 펼쳐졌다.

무연한 풀판과 밀림을 방불케 하는 방풍림, 분장사무청사와 문화주택들이 아담하게 들어앉은 등판의 여기저기서 마치 흰구름마냥 흐르는 염소떼, 방목공의 긍지가 넘쳐나는 처녀의 노래소리, 그에 화답하는듯한 염소들의 울음소리…

이때였다.방목공들이 달려와 우리와 동행한 일군을 에워싸는것이였다.

방목공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일군은 지고온 배낭을 풀었다.

《자, 이건 철림동무가 부탁했던 소설책 그리고 심철동무에게 온 편지, 이건 우리 집사람이 만든 음식인데 맛들 보라구.》

우리는 그때에야 일군이 지고온 배낭속에 무엇이 들어있었는지 알수 있었다.

외진 곳에서 사는 사람들일수록 정을 그리워한다.일군의 배낭속에는 바로 정이 가득 들어있었던것이다.

우리는 방목공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여겨보았다.

수수한 작업복과 로동화, 손에 든 회초리, 해볕에 탄 감실감실한 얼굴들…

하지만 그들의 얼굴마다에는 희열과 랑만이 한껏 어려있었다.

우리와 만난 분장장 박명식동무는 이제 얼마후이면 1 000여마리나 되는 새끼염소들이 등판으로 또 올라오게 되는데 그러면 온 등판이 그야말로 흰구름이 떠가는것같이 보인다고 자랑하는것이였다.

그의 말을 들으며 풀판을 둘러보는데 편지를 읽는 한 방목공의 모습이 비껴들었다.

편지를 보며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은 호기심을 자아냈다.

그의 군사복무시절 전우가 보내온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다.

《심철동무, 그처럼 높은 등판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겠소? 방목지로 탄원한지 엊그제같은데 벌써 여러해가 흘렀구만.나의 전우가 당의 뜻을 받들어 사덕등판에서 구슬땀을 바쳐가는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르겠소.》

알고보니 심철동무는 군사복무를 마치고 이곳으로 탄원해온 제대군인이였다.

그는 지난해 등판에서 당의 육아정책을 받드는 길에 인생의 좌표를 정한 처녀와 목장일군들과 종업원들의 따뜻한 축복속에 결혼식까지 보란듯이 하고 오늘은 분장의 혁신자로 자라나게 되였다.

심철동무는 편지를 품에 간수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방목공생활을 사랑합니다.이 등판에서 당의 뜻을 받들어가는 보람과 긍지를 어디에 비기겠습니까.》

그의 이야기를 감동깊이 듣는 우리의 눈가에 척 보기에도 등판에서 제일 크고 멋있는 건물이 안겨들었다.

호기심을 안고 그쪽으로 향하던 우리의 귀전에 뜻밖에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알고보니 이곳 종업원들의 자식들을 위해 세운 분교였다.

도당위원회와 목장의 일군들은 분장마을을 꾸리기 전에 아이들을 위하여 분교부터 번듯하게 일떠세웠던것이다.

불과 몇명밖에 안되는 아이들을 위해 이렇게 하늘아래 첫동네에 사랑의 분교를 세워주고 학습에 필요한 온갖 조건을 다 마련해주는 고마운 우리 제도,

하기에 개교식날 이곳 분장의 종업원들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천만금도 아끼지 않는 고마운 우리 당의 뜻을 받드는 길에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갈 결의들을 굳게 다졌다고 한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해가 기울어져 사위가 노을빛으로 곱게 물들자 방목공들은 염소들을 몰고 우리로 향했다.무리앞에 선 덩지큰 어미염소가 목을 쳐들고 울음소리를 높이자 뒤떨어진 염소들이 무리에 바싹 다가섰다.

염소떼 흐르는 풍경과 땀방울을 훔치며 앞에서, 뒤에서 염소들을 몰아가는 방목공들의 랑만넘친 모습이 한데 어울려 산촌의 정서는 더욱 이채를 띠고있었다.

잠시후 염소들이 우리앞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한마리도 먼저 들어가겠다고 서성거리지 않았다.매일같이 반복되는 저녁《점검》에 익숙된지라 염소들은 방목공의 목소리만을 기다리고있는것이였다.방목공처녀가 염소들의 《이름》을 차례로 부르자 그제서야 염소들은 우리로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어느덧 방목공들도 자기들의 집으로 향하고 신선한 공기가 흐르는 사덕등판에 밤이 깊어갔다.하지만 등판은 좀처럼 잠들줄 몰랐다.

그들의 불밝은 집들마다에서 흥겨운 노래소리가 그칠새없이 울려퍼졌던것이다.그들의 노래소리를 듣는 우리의 생각은 깊어졌다.

이들이 해발 1 300여m나 되는 사덕등판에 삶의 닻을 내린 때로부터 2년이 흘렀다.

길지 않은 그 나날에 등판의 곳곳에는 당의 육아정책을 받들고 한마음한뜻으로 투쟁해온 이곳 종업원들의 헌신의 자욱들이 뚜렷이 새겨졌다.

연약한 처녀들이 장마철 큰물에 떠내려가는 염소들을 건지기 위해 사품치는 물속에도 서슴없이 뛰여들던 일, 먹물을 뿌린듯한 캄캄한 밤에 무리에서 떨어진 염소들을 찾아 밤새껏 산판을 오르내리던 일, 추운 겨울날 쓰러지는 염소들을 돌보며 온밤 모지름을 쓰던 일…

당의 육아정책을 받들어 이런 높고 외진 등판에 스스로 뿌리를 내린 미더운 방목공들의 헌신적인 투쟁속에 우리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더욱 높아지고있는것이 아닌가.

우리에게는 해발 1 300여m의 등판에서 본 방목공들의 랑만넘친 생활이 가장 아름다운 화폭으로 안겨왔다.

본사기자 박춘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