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4일 화요일  
로동신문
위대한 조선로동당이 안아오는 사회주의농촌의 희한한 천지개벽
복받은 마을에서 꽃펴나는 이야기

2024.6.10. 《로동신문》 3면


제일먼저 토론한 사연

 

지난 5월 강서구역 덕흥농장에서 진행된 살림집입사모임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눈물속에 토론한 한 농장원이 있었다.제3작업반 김성남동무였다.

잘난 자식, 못난 자식 탓하지 않고 한품에 안아 보살펴주는 당의 은덕으로 나라앞에 죄를 지었던 자기에게도 희한한 새 살림집이 차례졌다고 격정을 터치는 그의 토론을 들으며 사람들모두가 눈시울을 적시였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하루가 다르게 솟구치는 새 살림집들을 보면서 나라앞에 떳떳치 못한 자기에게도 새집이 차례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그였다.그런데 나라에서 다른 농장원들과 꼭같이 새집을 안겨준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그는 죄스러움에 잠을 이룰수 없었다.하여 당조직을 찾아가 절절히 제기했다.살림집입사모임에서 토론을 하게 해달라고.

이렇게 되여 어제날 뒤떨어졌던 농장원이 살림집을 받아안은 사람들중에서 제일먼저 연단으로 달려나가는 모습이 펼쳐지게 되였다.

사람들앞에 나선 그는 눈물속에 고마움의 격정을 터치였다.그리고 굳게 결의다졌다.땀을 바쳐서 안되면 피를 바치고 뼈를 깎아서라도 기어이 다수확을 안아옴으로써 그 사랑, 그 은덕에 보답하겠다고.

 

한참만에야 찾은 집

 

신천군 송오농장 농장원 고금산동무는 지금도 지난해에 제대되여 고향마을에 들어서던 때를 잊지 못하고있다.

처음에 그는 자기 집을 인차 찾지 못하였다.고향의 모습이 완전히 몰라보게 달라졌기때문이였다.

사실 군사복무의 나날 그는 온 나라 곳곳에 새 농촌살림집들이 일떠선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저도 모르게 집생각이 갈마들어 내 고향은 어떻게 달라졌을가 하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그 모습을 그려보군 하였다.

그런데 정작 고향에 돌아오니 자기가 그려보던것보다 더 아름답고 상상도 못해본 희한한 모습이 눈앞에 펼쳐져있는것이 아닌가.그는 마을을 돌고돌던 끝에 한참만에야 자기 아버지이름이 씌여진 문패가 붙은 집을 찾을수 있었다.

집에 들어선 아들의 손목을 꼭 잡고 아버지는 나라에서 평범한 농장원들에게 이렇듯 훌륭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주었다고, 어떻게 하면 그 사랑에 천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수 있겠는가고 눈물속에 말하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고금산동무는 농업근로자들을 높이 떠받들어주는 우리 당의 사랑에 다수확의 자랑찬 성과로 보답하는 애국농민이 되겠다고 결의다졌다.

그날의 맹세를 지켜 그는 오늘도 포전에 깨끗한 구슬땀을 아낌없이 바쳐가고있다.

 

선경마을의 행복동이

 

지난해 11월 고산군 설봉농장의 선경마을에 또 하나의 경사가 났다.

당의 사랑속에 마련된 멋쟁이살림집에서 만사람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한 주현철동무의 가정에 귀여운 아기가 태여났던것이다.

마을사람들은 태여난 첫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짓겠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론의를 거듭했다.

가족, 친척들은 물론이고 마을의 늙은이들과 농장원들도 모여앉기만 하면 그애를 두고 복받은 선경마을에서 처음으로 태여난 행복동이라고 하면서 저마다 이름들을 지어보았다.길을 가다가도 머리속에 떠오르는 이름을 수첩에 적어넣고 처녀애들의 이름중에서 어떤 이름이 고운가를 손으로 꼽아보며 며칠씩 잠을 이루지 못하던 그들의 생각은 차츰 한곬으로 흘렀다.자기들이 늘 말하는대로 그애야말로 행복동이인데 이름을 행복이라고 짓는것이 어떻겠는가고.

하여 주현철동무의 딸은 주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였다.

주행복, 참으로 그 이름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품속에서 날에날마다 행복이 꽃펴나는 사회주의 우리 제도에서만 태여날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 아니겠는가.

 

발편잠을 잘수가 없어

 

홍원군 공덕리에서 살고있는 조동일동무는 형님네 집에서 함께 살다가 얼마전에 현대적인 새 살림집을 받아안은 농장원청년이다.

그는 총각인것으로 하여 자기에게까지 멋쟁이 농촌살림집이 차례질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그런데 당과 국가에서 남들과 꼭같이 새집을 안겨주었으니 그는 꼭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

고향땅의 래일을 떠메고나가야 할 청년으로서 제구실도 변변히 못하는 내가 과연 새집에서 발편잠을 잘 자격이 있는가.

이렇게 끝없이 자신을 질책하던 그는 이렇게 결심했다.고향땅의 래일을 더 아름답게 가꾸는 길에서 남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며 청춘의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바쳐가리라고.

그때부터 그는 낮에는 작업반포전에서 혁신을 일으키고 밤에는 밤대로 돌격대활동에 참가하여 농장의 면모를 일신시키기 위한 어렵고 힘든 일에 선참으로 어깨를 들이미는 혁신자로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이런 그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해하며 이렇게 말하군 한다.우리 당의 하늘같은 은덕아래 산천도 사람도 몰라보게 달라진다고, 오늘도 좋지만 앞으로 더 아름답고 살기 좋아질 농장의 래일이 눈앞에 환히 보인다고.

본사기자 강금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