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18. 《로동신문》 5면
《우리 인민은 사회주의제도가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것을 실생활을 통하여 깊이 체험하고있습니다.》
얼마전 우리는 사회주의조국의 품속에서 후보원사 교수 박사로 성장한 김책공업종합대학 연구사 김수하선생의 집을 찾았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광명과 암흑의 두 제도, 두 생활을 체험한 김수하선생, 그의 인생담에는 어찌하여 우리 인민이 사회주의조국을 그처럼 끝없이 사랑하는가에 대한 명백한 대답이 있었다.
* *
《붕-》
재일동포들을 태운 배는 일본의 니이가다항을 서서히 떠났다.조국은 저 멀리 아득한 수평선너머에 있었건만 귀국선에 몸을 실은 사람들의 마음은 그 품에 안겨있었다.그들속에
(정말 조국에 가면 잘살수 있을가?)
어린시절 김수하의 가정도 일본에서 사는 조선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하듯이 매우 가난하게 살았다.어느날 수하는 길가에서 일본인학생들이 한 녀학생에게 달려들어 조선치마저고리를 찢으려고 하는것을 목격하게 되였다.총련사업을 하는 부모에게서 조선치마저고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수하는 겁에 질려 떨고있는 녀학생을 온몸으로 막아나섰다.그러자 일본인학생들은 수하의 옷차림을 보고는 거지새끼라고 하면서 놀려대기 시작하였다.어린 마음에도 끓어오르는 격분을 참을수 없었던 수하는 앞에서 날뛰는 놈을 닁큼 들어 멨다꽂았다.그것이 《죄》로 되여 그는 하루종일 류치장에 갇혀있게 되였다.그날 저녁 온몸에 피멍이 든채 집으로 돌아오는 수하의 얼굴에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였다.그는 자기를 어루쓸며 한숨을 짓는
아들의 말은
《조국이 없었기때문이였지.그러나 이젠 우리에게
수하는 입속으로
수하가 10살 나던 해에 그의
《바다건너 우리 조국에는 나라를 찾아주시고 모든 사람들의 운명을 지켜주신 영명하신
조국의 품에 안기자마자 그의 가정에는 넓은 살림방이 여러칸이나 되는 해빛밝은 집이 차례졌다.이불장에 가득찬 이불이며 쌀독에 그득한 백미…
조국에서의 하루하루는 꿈만 같은 생활이였다.그의 어머니는 어느한 공장의 일군으로 사업하였고 몇해후 김수하도 김책공업대학(당시)에 입학하였다.그러던 어느날 그에게는 어머니가 일터에서 순직하였다는 가슴아픈 소식이 전해졌다.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으니 나 홀로 어떻게 살아갈가.)
하지만 그것은 공연한 걱정이였다.그에게 와닿는 조국의 사랑, 사람들의 정은 더욱 뜨거워졌다.생일을 맞을 때면 교원들과 동창들이 성의껏 생일상을 차려주었고 간혹 감기에라도 걸리면 온밤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정성껏 간호해주군 하였다.이뿐이 아니였다.나라에서는 그가 대학을 졸업하자 소원대로 교단에 세워주었다.
자본주의일본땅에서는 부모가 있어도 누려보지 못한 행복, 그것을 사회주의조국에서 마음껏 누리고있으니 정녕 그에게 있어서 사회주의조국은 따뜻한 보금자리였고 어머니품이였다.
그 품속에서 그는 후보원사 교수 박사로 성장하였고 오늘은 그의 자식들까지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졸업하였다.
* *
《궁궐같은 집으로 들어설 때마다 나는 어머니조국의 품이 아니였다면 오늘의 내가 있을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하군 합니다.사회주의 내 조국을 위해 나의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바쳐가겠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
사회주의제도의 품속에서 극적인 인생전환을 한 김수하선생, 그의 생활은 우리에게 말해주고있었다.
우리의 사회주의제도를 사랑하라고, 목숨처럼 귀중히!
글 및 사진 본사기자 박춘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