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8일 월요일  
로동신문
앞날의 역군들을 키우는 밑거름이 값높은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였던 백학룡동무에 대한 이야기

2024.6.21. 《로동신문》 5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새세대들을 정치사상적으로 준비되고 높은 창조적능력과 고상한 도덕풍모, 건장한 체력을 지닌 다방면적으로 발전된 인재로 키워야 합니다.》

학생소년들에 대한 교양사업은 우리 당과 혁명의 장래운명, 조국의 미래와 직결되여있는 성스럽고도 중요한 사업이다.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였던 백학룡동무는 당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소년단원들을 나라의 미더운 역군으로 억세게 키워가려면 어떻게 자신을 깡그리 바쳐야 하는가를 청년동맹일군들의 가슴마다에 깊이 새겨주고 동지들의 곁을 떠나갔다.

비록 길지 않은 생을 살았어도 마지막순간까지 맡은 혁명임무에 충실했던 그의 인생은 우리모두에게 참된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으며 인생은 무엇으로 빛나야 하는가를 다시금 깊이 새겨준다.

 

《늘 우리와 함께 있었습니다》

 

지난 5월 9일 점심녘 중구역 경림동의 어느한 살림집창가에서는 기쁨넘친 웃음소리가 그칠새 없었다.사업으로 드바쁜 백학룡동무가 오래간만에 집에 들렸던것이다.얼마후 점심상을 물리자바람으로 또다시 집문밖을 나서는 남편에게 안해 리수영녀성은 걱정어린 어조로 물었다.

《안색이 좋아보이질 않는데 오늘 하루밤만이라도 집에서 푹 쉬지 않겠어요?》

백학룡동무는 헌헌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이번 경축행사가 어떤 행사요.이제 얼마 안있어 6.6절을 맞으며 온 나라 소년단원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대회합이 진행되겠는데 정말 흘러가는 시간이 천금같이 귀중하구만.》

두 아들의 볼을 다독여주고나서 점점 멀어져가는 그를 집식구들은 뜨거운 눈길로 바래웠다.하지만 꿈에도 알수 없었다.그때로부터 불과 사흘후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날아들줄을.

그 시각 백학룡동무는 자기의 몸상태를 잘 알고있었다.조선소년단창립 78돐 경축행사준비로 드바쁜 속에서 하루를 분과 초로 쪼개며 일하는 과정에 심한 과로가 덧쌓여져 몸이 늘 불덩이같이 달아올라있었던것이다.

(후대들을 위한 일에서는 래일이란 없다.설사 생을 마친다고 해도 당에서 준 과업은 기어이 집행해야 한다.)

이것이 그의 드팀없는 각오였다.지난 5월 12일 고열로 신음하는 속에서도 자기 사업을 책임적으로 마무리한 그는 병원에 실려간채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였다.

《한마디로 불같이 살다가 불같이 갔다고밖에 달리는 말할수 없습니다.》

청년동맹중앙위원회 책임일군이 한 길지 않은 이 말속에는 백학룡동무의 인간상이 그대로 비껴있다.

지금으로부터 네해전 이른아침 만수대언덕에 높이 모신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동상을 우러러 점도록 서있는 사람이 있었다.백학룡동무였다.

평안북도청년동맹위원회에서 사업하다가 당의 크나큰 믿음속에 청년동맹중앙위원회에서 학생소년사업을 책임지게 된 시각 그의 가슴은 사회주의조국의 기쁨이며 자랑인 소년단원들을 앞날의 주인공으로 억세게 키우기 위한 사업에 생의 모든것을 아낌없이 바쳐갈 굳은 맹세로 높뛰고있었다.

열정과 헌신으로 충만된 그의 삶은 그 맹세를 지켜 불같이 살아온 나날이였다.오늘도 사람들은 그가 사업의 첫시작부터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일했는가를 뜨거운 추억속에 돌이켜보군 한다.

그는 학생소년교양사업의 실태를 아래단위들에서 올라오는 자료만으로 료해하지 않았다.늘 해당 단위들에 나가 구체적인 조건과 정황속에서 현실을 파악했고 자기가 직접 보고 들은것, 체험한것에 기초하여 사업을 전개하고 조직하군 했다.한마디로 들끓는 현실은 곧 그의 사무실이였고 그의 사업내용에는 소년단원들의 마음속생각, 학생소년사업부문 일군들의 목소리가 그대로 반영되군 하였다.

당의 뜻대로 소년단원의 중요한 상징인 붉은넥타이와 소년단휘장을 규격화하고 학생소년들의 동심에 맞게 잘 만들어 공급하는 새로운 사업체계가 세워지게 된것도, 지난 여러해동안 수십명의 뒤떨어진 학생소년들을 친어머니의 심정으로 품어안아 나라의 미더운 역군으로 키운 대동강구역 소룡고급중학교 소년단지도원의 미풍이 온 나라 학생소년사업부문의 본보기로 내세워지게 된것도 늘 현실속에 들어가 사업하는것을 체질화한 그의 열정과 노력을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

맡은 임무에 대한 높은 책임성과 헌신적인 일본새는 그가 학교소년단지도원들의 사업에 절실히 필요한 참고자료를 단 몇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만들도록 한데서도 잘 알수 있다.

몇해전까지만 해도 적지 않은 학교소년단지도원들은 구태의연하고 틀에 박힌 방식에 매달려 학생소년들에 대한 교양사업을 천편일률적으로 진행하는 현상을 없애지 못하고있었다.하여 그는 소년단지도원들이 출근해서부터 하루일이 끝날 때까지 학생교양사업과 관련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며 매주, 매월 어떤 사업을 계획하고 실행해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반영한 참고자료를 만들것을 결심했다.

학생소년사업부문에서 처음으로 되는 참고자료집필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하지만 당의 뜻을 꽃피우는 길에서는 할수 있는가 없는가를 따지기 전에 무조건 해내고야마는것을 체질화한 그였기에 맡은 사업으로 바쁜 속에서도 전국의 많은 학교들을 편답하고 연구사들과 함께 낮에 밤을 이어가며 집필사업에 달라붙어 마침내 수백페지에 달하는 참고자료를 성과적으로 만들어낼수 있었다.오늘 학생소년사업에 대한 당의 의도가 정확히 구현되고 학생교양실천에서 나서는 모든 실무적문제들이 빠짐없이 반영된 참고자료는 학교소년단지도원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 도서로서 그들속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있다.

우리는 여기에 학생소년사업을 당이 바라는 높이에 올려세우기 위해 한몸을 깡그리 불태워온 그의 헌신적이며 열정적인 모습을 다는 전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 배움의 천리길을 걸으신 100돐을 맞으며 진행된 전국학생소년들의 배움의 천리길답사행군 전 로정을 행군대원들과 나란히 걸었고 전국소년단원들의 충성의 편지이어달리기에 참가하여 《아버지원수님을 그리는 밤》모임때면 학생소년들과 노래 김정은원수님은 우리 아버지》를 함께 부르며 그들모두가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의 사랑과 은정에 충성으로 보답할 맹세를 굳게 다지도록 한 사실과 청년동맹중앙위원회청사에서 늘 마지막까지 불이 켜져있는 방들중의 하나가 바로 그의 사무실이였다는 사실앞에서 백학룡동무가 새겨온 삶의 뚜렷한 자욱을 어렵지 않게 더듬어볼수 있다.

《늘 우리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를 잊지 못하여 학교소년단지도원들을 비롯한 학생소년사업부문의 수많은 일군들과 소년단원들이 뜨거움에 젖어 하는 이 말속에 후대들에 대한 교양사업을 조국의 만년대계를 위한 무겁고도 중요한 사업으로 새겨안고 생의 하루하루, 삶의 순간순간을 줄달음쳐산 백학룡동무의 참모습이 그대로 비껴있다.

 

참된 인간의 모습은 누구나 잊지 못한다

 

학생소년들을 혁명의 믿음직한 후비대로 대바르게 키우자면 그에 대한 교양을 맡은 일군들부터가 참된 인간이 되여야 한다.백학룡동무는 일군이기 전에 무한히 성실하고 고지식한 인간, 동지적사랑과 정으로 뜨거운 열혈의 인간이였다.

하기에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에 접했을 때 청년동맹중앙위원회 일군들은 물론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 지어 나라의 북변 외진 산골학교의 소년단지도원에 이르기까지 눈굽을 적시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가 얼마나 소박하고 성실한 품성을 지닌 일군이였는가 하는것은 새 초소에서 사업을 시작한 첫 시기 그가 부위원장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지낸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서 잘 알수 있다.길을 걸어도 늘 고개를 수굿하고 겸손한 자세로 걷고 만나는 사람이 일군이든 로동자이든 언제나 례절밝게 대하는 그를 청년동맹중앙위원회에 찾아온 손님으로 보기가 일쑤였던것이다.

그는 사무실에 찾아온 사람들을 앉아서 맞이하는 법을 몰랐다.나어린 소년단원에 이르기까지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이 맞이했고 떠날 때에도 문밖에까지 나와 친절하게 바래웠다.아래사람이라고 하여 가볍게 대할줄 몰랐고 사업의 전 기간 그들에게 존경어를 썼다.

그가 평안북도청년동맹위원회 위원장으로 사업하고있던 때였다.

어느날 하루일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식사마저 잊고 오래도록 생각에 잠겨있었다.안해 리수영녀성은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였다.이윽고 백학룡동무는 말했다.

《권렬이를 평성시에서 살고있는 누이에게 보내기요.》

그리고는 맏아들이 다니는 학교 선생님들을 만나본 사실에 대해 이야기했다.안해는 그제서야 남편의 말뜻을 짐작할수 있었다.자식이 아버지의 직위를 빗대고 다른 아이들과 남다르게 처신하려고 하였던것이다.

며칠후 집을 떠나는 맏아들에게 그는 간곡히 당부했다.

《권렬아, 이제 살게 될 곳이 아버지가 도청년동맹위원장으로 일하는 신의주가 아니라는것을 꼭 명심하거라.》

지금도 리수영녀성은 일생 사리사욕을 모른 남편을 뜨거운 마음으로 추억하군 한다.

도청년동맹위원회 위원장으로 사업을 시작했을 때 그들부부는 한칸짜리 단층집에서 살았다.오랜 시일이 지나서 새로 배정받은 아빠트에 이사짐을 푼 뒤였다.남편의 성미를 잘 알고있던 리수영녀성은 그가 출장을 간 기회에 부엌을 새롭게 꾸리려고 일판을 벌려놓았다.그런데 며칠은 실히 걸려야 돌아올것이라고 하던 남편이 하루만에 불쑥 집에 들어서는것이 아닌가.

리수영녀성은 물론 일손을 도우려고 왔던 사람들까지 몸둘바를 몰라하는 속에 백학룡동무는 안해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특권과 특세는 다른게 아니다.무엇인가 남들보다 다르게 살고싶어하는데서 바로 특권과 특세가 생겨난다.

사람을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그의 인간됨에 대해 말할 때마다 청년동맹중앙위원회 일군들은 한 평범한 로동자의 생활에 깃든 가슴뜨거운 사연을 잊지 못해하고있다.

언제인가 백학룡동무는 위원회구내의 보이라실을 지나게 되였다.그곳에서는 나이지숙한 열관리공이 땀흘려 일하고있었다.사람들의 눈에 선뜻 띄지 않는 곳에서 정말 수고가 많다고 그가 이야기하자 아바이의 눈가에 미소가 비꼈다.

《우리 아이들을 잘 키우자고 낮에 밤을 이어 애쓰는 일군들을 위한 일인데 수고랄게 없지요.난 그저 거리를 지나다가도 소년단원들의 밝은 모습을 볼 때가 제일 기쁘답니다.》

소박하나 진정어린 그 말에 백학룡동무의 가슴은 뜨겁게 젖어들었다.

그로부터 며칠후였다.열관리공의 집으로 랭동기를 실은 자동차가 도착했다.온종일 뜨거운 보이라앞에서 일하는 수고를 헤아려 백학룡동무가 그날 가정에서 마련한 새 랭동기를 집까지 실어다주도록 한 사실을 알았을 때 열관리공아바이의 가슴은 얼마나 후더워올랐던가.그때부터 백학룡동무는 설명절을 비롯한 뜻깊은 계기때마다 그의 집을 꼭꼭 찾군 했고 생활에서 자그마한 불편이라도 있을세라 늘 관심하고 보살펴주었다.

열관리공아바이가 일손을 놓은지도 이제는 퍼그나 된다.하지만 그의 집 곳곳마다에 스며있는 한 참된 인간의 뜨거운 인정미를 어찌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른다고 쉬이 잊을수 있으랴.

새해를 맞으며 탁상달력을 사무실책상우에 놓을 때마다 그가 맨 처음으로 하는 일이 있었다.수십명에 달하는 부서일군들의 생일이 이제는 머리속에 환하여도 드바쁜 사업일정으로 혹 잊어버리기라도 할가봐 달력의 날자밑에 그날이 생일인 일군들의 이름을 꼭꼭 적어넣군 하는것이였다.그들의 생일뿐이 아니였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부서의 막내지도원이 하루사업을 채 마무리하지 못해 저녁늦도록 퇴근을 미루고있던 때였다.문득 사무실문이 열리며 백학룡동무가 들어섰다.

《오늘이 어머니생일이겠는데 어서 들어가 이 술을 어머니에게 부어드리라구.》

그는 바로 이런 사람이였다.

출근길에 제일먼저 들어서는 곳은 사무실이 아니라 아래사람들의 일터이고 하루의 많은 시간을 그들속에서 지내면서 그들이 아파하고 걱정하는 문제가 무엇이고 생활에서 걸린것이 무엇인가를 직접 알아보고 대책을 세우는 사심없는 헌신, 어느한 일군의 안해가 뜻밖의 일로 침상에 눕게 된 소식을 듣고 출장길의 피로도 아랑곳없이 또다시 그달음으로 수백리 먼길을 달려간 뜨거운 진정, 늘 사무실에 앉아 연구사업에 열중하는 학생교양방법연구실 연구사들을 위해 뜻깊은 명절과 기념일때마다 푸짐한 후방사업으로 그들을 고무해주고 겨울이면 김장남새는 물론 양념감까지 꼭꼭 마련해주도록 한 아름다운 인정미에 마음이 끌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기에 사람들은 지금도 가슴젖어드는 심정을 이렇게 터놓고있다.그는 가지 않았다고, 당을 받드는 한길에서 뜻과 정을 나누던 우리와 언제나 함께 있다고.

무한히 성실하고 참된 인간의 삶은 이렇듯 누구나 잊지 못하는것이다.

* *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후대들을 위한 성스러운 사업에 바친 백학룡동무에게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비록 육체적생명은 끝났어도 수령의 믿음속에 오늘도 영생하고있는 백학룡동무의 빛나는 모습은 당을 받드는 혁명전사의 삶은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바쳐져야 하는가를 보여준 훌륭한 모범으로 된다.이런 참된 일군들이 자라나는 새세대들을 혁명의 믿음직한 교대자로 억세게 키워가고있기에 내 조국의 미래는 그처럼 밝고 창창한것이다.

본사기자 리남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