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10월 5일 토요일  
로동신문
조국해방전쟁시기 당정치사업경험(2)
당총회보고서는 길지 않았어도

2024.7.6. 《로동신문》 4면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의 당정치사업관에는 가렬처절했던 전쟁 3년간에 있었던 수많은 당회의자료가 전시되여있다.

포연자욱한 전호가에서 진행된 당총회들, 피와 땀에 절은 그날의 당결정서들은 위대한 전승신화를 떠올린 당정치사업의 위력을 보여주고있으며 오늘날 당조직들과 당일군들이 당중앙전원회의 결정관철을 위한 투쟁을 어떻게 조직전개해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귀중한 대답을 주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당과 수령을 위하여, 수령께 다진 맹세를 끝까지 지키기 위하여 최후의 결사전에 주저없이 나서고 사지판에서도 최고사령부를 바라보며 불사신의 용맹을 떨친 인민군전사들의 강의한 정신력은 세상을 놀래우는 승전신화들을 낳았습니다.》

조국해방전쟁시기 전투장마다에서는 언제나 수령의 명령을 결사관철하기 위한 당회의들이 진행되군 하였다.당회의는 전투를 앞두고도 조직하였고 적들과의 치렬한 싸움속에서도 하였으며 고지를 탈환한 다음 그것을 사수하기 위한 문제를 놓고서도 진행하였다.

당회의는 또한 장소에 구애되지 않고 진행되였는데 불타는 고지의 전호속이나 적후에서도 당결정서와 맹세문이 채택되군 하였다.

당회의들은 인민군용사들에게 있어서 전투승리를 안아오는 용진의 첫걸음이였으며 거기에서 채택된 당결정서들은 그들에게 수령이 준 명령을 기어이 관철하고야말 결사의 의지를 백배해주었다.

전승기념관에는 사연깊은 당세포회의 결정서초안이 있다.

《첫째,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받들고 일보도 퇴각하지 말것.자기에게 부과된 전투명령을 무조건 집행할것.

둘째, 목숨이 붙어있는한 끝까지 싸우라! 탄알을 아끼라!

셋째,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소리높이 부르며 1211고지를 끝까지 사수하자.》

이것은 1951년 가을 1211고지의 한 구간을 맡고 완강한 방어전을 벌리고있던 제2보병사단 17련대 2대대 6중대 당세포부위원장이 쓴 결정서초안이다.

이날의 당회의는 고지로 기여올라오는 적들때문에 당원들이 한자리에 모이지 못하고 전호속에서 봇나무껍질에 쓴 결정서초안을 탄피속에 넣어 돌려본것으로 하여 력사에 남게 되였다.

총포탄이 비발치는 전호가에서, 전투의 쉴참이 아니라 적들과의 치렬한 싸움이 한창인 속에서 진행된 당세포회의는 결코 1211고지에서만 있지 않았다.

이러한 화선당회의들의 특징은 한마디로 수령의 명령지시에는 오직 결사의 실천만이 따라야 한다는, 수령의 명령을 관철하기 전에는 죽을 권리도 없다는 투철한 사상정신으로 관통되여있는것이다.

하기에 당회의를 하고나면 용사들 누구나 돌격전의 앞장에 자기를 세워달라고 불같은 심정을 토로했고 수령께 충성을 맹세하면서 결전장으로 나아갔다.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해 둘도 없는 청춘을 바친 리수복영웅도 최후의 전투를 앞두고 진행된 공개당총회에서 한목숨을 기꺼이 바칠 맹세를 다지고 결사전에로 나아갔다.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사는 말 한마디 없이 진행된 당세포총회도 기록하고있다.

1952년 9월 제45보병사단 89보병련대 1대대가 854.1고지에 대한 불의적인 공격을 준비하고있을 때였다.전투원들은 날밝기 전부터 공격출발진지를 차지하고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적과의 거리가 불과 400m밖에 안되는 곳에 1개 대대가 온종일 은페하자면 은밀성을 보장해야 했다.그런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참을성을 잃고 몸을 움직이는 전사들이 나타났다.

그러자 당세포위원장 신기철동지는 화선당세포총회를 열기로 결심했다.한자리에 모여앉을수 없고 수첩이 전날 밤 비에 젖어 글을 쓸수 없었던 조건에서 신기철동지는 나무껍질에 당회의결정서초안을 한자한자 써나갔다.보고도 토론도 지어 한마디 말도 없이 당세포총회가 진행되였다.

《첫째 당원들이 은밀성보장에서 모범이 될것.

둘째 당원들은 민청원들을 방조할것.

…》

이렇게 씌여진 결정서초안이 당원들의 손에서 손으로 옮겨졌다.결정서초안을 읽은 당원들은 엄숙한 표정으로 불끈 쥔 주먹을 은밀히 들었다.결정서초안을 결정서로 채택하는데 찬성한다는 표시였다.

결정서가 채택된 후 그 누구도 까딱 움직이지 않았으며 조는 전사들도 없어졌다.한 당원은 적의 눈먼사격에 심한 부상을 당하였으나 당결정을 지켜 신음소리 한마디 내지 않고 끝까지 은밀성을 보장하였다.

1951년 10월 제2보병사단 4보병련대 2대대 4중대에서는 습격전을 앞두고 포연속에서 공개당총회를 가지였다.1명의 당원, 2명의 비당원전투원들이 토론한 뒤끝에 한치의 땅도 적에게 내여주지 말라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에 끝까지 충실하며 탄환이 떨어지면 육탄으로 적진에 뛰여들어 천백배 복수의 무리죽음을 줄데 대한 당결정이 채택되기까지는 불과 10분 남짓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공개당총회에서 채택된 결정은 어김없이 집행되였다.

이렇듯 전화의 당회의들은 비록 길지 않았고 보고도 토론도 없이 지어 말 한마디 없이 진행되였으나 용사들은 당회의를 가볍게 대하지 않았다.그들은 당회의에서 채택한 당결정서를 단순한 글줄이 아니라 위대한 수령님께 다진 맹세로 간주하고 당결정을 천근만근으로 무겁게 대하며 그 집행을 위해 귀중한 목숨도 서슴없이 바치였다.당결정을 집행하는 길은 곧 수령께 다진 맹세를 지키는 길이기에 용사들은 눈을 감는 마지막시각에도 당결정을 꼭 집행해달라고 당부하며, 김일성장군 만세를 소리높이 웨치며 장렬하게 최후를 마치였다.

용사들전원이 살아남지 못한 가렬한 전투는 있었어도 집행되지 못한 당결정은 없었다.

1953년 6월, 351고지공격전투를 앞두고 제7보병사단 53련대 2대대에서는 당회의들이 열렸다.당원들이 앞장에서 공화국기를 휘날리며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부르면서 돌격할데 대한 당결정서를 모두가 손을 들어 찬성하였다.

전투원들모두의 머리속에는 오직 15분내로 고지를 점령하고 공화국기발을 휘날릴데 대한 전투명령을 어떤 일이 있어도 무조건 수행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자리잡고있었다.

15분내로 고지우에 공화국기를 꽂자고 맹세하지 않았는가고 웨치며 서슴없이 철조망우에 몸을 던지고 지뢰원에 뛰여들어 돌격로를 열어놓은 용사들도 있었고 공개당총회에서 맹세한대로 공화국기를 기어이 고지우에 휘날려달라는 마지막부탁을 남기고 적의 화구를 가슴으로 막은 육탄영웅들도 있었다.

이런 영웅전사들의 희생적인 투쟁이 있어 351고지는 끝내 15분만에 점령되였다.

인민군용사들은 351고지를 무조건 사수할데 대한 명령도 단 한사람이 남을 때까지 목숨으로 지켰다.

이렇듯 전화의 나날 우리의 인민군용사들은 수령께 다진 맹세를 지켜, 당결정의 무조건적인 집행을 위해 목숨까지도 서슴없이 바쳐 싸워 전승신화를 창조하였다.비록 종이도 아니고 봇나무껍질에 씌여진 길지 않은 글줄이지만 그 한건한건의 당결정들이 결사관철되여 위대한 전승을 떠올렸다.

전화의 영웅전사들의 숭고한 정신세계와 투쟁기풍, 고결한 풍모는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10차전원회의 결정관철에 떨쳐나선 전당의 당일군들과 당원들이 따라배워야 할 귀감이다.전화의 용사들이 발휘한 무비의 영웅성과 희생성의 밑뿌리로 된 당총회들과 당결정서들은 이렇게 가르치고있다.

당결정은 수령께 다진 맹세이며 그것을 천근만근으로 무겁게 대하고 결사관철하는것은 당조직들과 당원들의 신성한 의무이고 본분이라고.

본사기자 김성진

◇ 주체113(2024)년 7월 6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