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9월 20일 금요일  
로동신문
실화
군복

2024.7.9. 《로동신문》 8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누구나 보석과 같은 애국의 마음을 간직하고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유익한 일을 스스로 찾아하여야 합니다.》

며칠전의 깊어가는 밤 보통강구역 붉은거리2동의 한 집창가로 은은한 달빛이 비쳐들고있었다.

신철룡은 고개를 돌려 두둥실 솟은 달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앉은책상을 가슴에 바싹 끄당겼다.그리고는 각지의 지방공업공장건설장들과 평양시안의 공장, 기업소들에 보낼 위문편지를 계속 써나갔다.

이제 몇통만 더 쓰면 계획했던 100통의 위문편지를 다 쓰게 되는것이였다.

(래일은 원호물자들과 위문편지들을 가지고 경제선동을 떠날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펜을 달리는 그의 눈가에 집벽면에 걸려있는 병사시절의 군복이 안겨왔다.그 군복을 보느라니 지나온 30년세월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군관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혁명의 군복을 입었던 신철룡은 군사임무수행중 심한 부상을 입고 제대되게 되였다.

하반신마비라는 가혹한 선고를 받고 침상에 누워있느라니 가슴은 찢기는듯 아팠다.

(한생 군복을 입고 조국을 지켜가겠다던 내가 아닌가.)

좌절감에 몸부림치는 그의 귀전에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록 제대되였어도 마음속의 군복만은 벗어서는 안된다고, 당에서 영예군인이라는 값높은 부름을 안겨주었다는것을 언제나 명심해야 한다고 하는 그 목소리는 높지 않았지만 철룡의 심금을 세차게 울려주었다.

신철룡은 벽에 걸린 군복과 가슴에 빛나는 영예군인메달을 번갈아 보았다.

초소를 떠나오던 날 멀리까지 따라나서며 군기앞에 다진 맹세를 잊지 말라고 당부하던 지휘관들의 정깊은 모습도 어려왔다.

신철룡은 어쩐지 군복을 바라보기가 부끄러웠다.그는 병사시절의 소중한 추억이 깃든 군복을 한참이나 어루쓸고나서 차곡차곡 접었다.

(영예군인이라는 부름앞에 떳떳하게 될 때 이 군복을 다시 벽에 걸리라.)

그후부터 그는 딴사람이 되였다.수도의 중요대상건설장들과 공장, 기업소들을 다니며 경제선동을 진행하고 자기가 쓴 위문편지도 안겨주며 건설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때없이 몰려드는 동통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면서도 철룡은 경제선동의 길을 변함없이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그는 땀이 비오듯 흐르는 속에서도 당앞에 결의다진 날자까지 공사기일을 무조건 보장하기 위해 순간의 휴식도 없이 달리고 또 달리는 군인건설자들의 모습을 그려보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종이에 썼다가 지우기를 그 몇번…

드디여 시를 완성하고 머리를 들었을 때에는 이미 새날이 밝아오고있었다.

소박한 시였지만 군인건설자들의 반향은 대단했다.

경제선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안해는 기쁨에 넘쳐 이렇게 말하였다.

《군인건설자들이 좋아하는 시를 더 많이 쓰자요.저도 쓰겠어요.》

그들부부는 시를 쓰고 또 썼다.

어느날 건설장을 찾아 집을 나서던 신철룡은 그만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지난 시기 그를 위해 친혈육의 정을 기울이던 보통강구역 붉은거리2동에 살고있는 장서정녀성과 그의 딸인 조경영 등 낯익은 사람들이 현관앞에서 그를 기다리고있었던것이다.

《우리도 영예군인동지와 건설장으로 함께 가겠습니다.》

그들만이 아니였다.김옥순녀성을 비롯한 많은 이웃들과 청년대학생들, 나어린 소년단원들…

그의 소행에 감복되여 마음과 걸음을 합쳐가는 사람들은 나날이 늘어났다.

그들과 함께 철룡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이 경제선동의 길을 이어갔다.

이 나날 그가 안해와 함께 창작한 시작품은 무려 200여편, 위문편지는 3만여통이나 된다.

그렇게 근 20년세월이 지난 어느날 한 일군이 그의 집을 찾아왔다.

그때에도 철룡은 침상에서 위문편지를 쓰고있었는데 그 모습을 감동깊이 바라보던 일군이 문득 이렇게 말하였다.

《영예군인 신철룡동지에게 국기훈장 제3급을 수여할데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이 채택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가슴에 훈장을 달아주었다.

앞가슴에 빛나는 훈장을 쓰다듬는 철룡의 눈가에서 뜨거운것이 흘러내렸다.

그날 저녁 철룡은 소중히 간직하였던 군복을 다시 꺼내였다.군사복무시절에 받은 전사의 영예훈장과 군공메달이 빛나는 군복에 철룡은 국기훈장을 달았다.

이때부터 신철룡의 집벽면에는 훈장과 메달이 빛나는 군복이 다시 걸렸으며 그는 군복을 바라보며 한 영예군인의 소행을 헤아려 높은 국가수훈의 영예를 안겨준 고마운 조국의 사랑에 보답할 마음을 굳게 다졌다.

그로부터 몇해후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이들부부가 삼가 올린 글작품집들을 보아주시고 영예군인부부의 소행을 온 나라가 다 알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추억의 상념에서 깨여나니 어느덧 새날이 밝아오고있었다.

또다시 군복을 바라보는 그의 눈가에 나란히 걸려있는 아들 신금성의 조선인민군입대증과 함께 얼마전 군관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 안겨들었다.

신철룡은 그것을 보며 아들과 속으로 이렇게 대화를 나누었다.

(금성아, 이 아버지는 오늘도 마음속의 군복을 입고 건설장으로 떠난다.우리 함께 조국을 위한 복무의 길을 곧바로, 정보로 걸어가자.)

본사기자 안성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