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9월 18일 수요일  
로동신문
사회주의조국은 참된 삶의 요람
탐사일군이 들려준 이야기

2024.7.13. 《로동신문》 6면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공화국의 품속에서 우리 인민이 누리는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은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상상도 할수 없는 존엄높고 보람차고 행복한 참다운 인간생활입니다.》

남포시 강서구역에 위치하고있는 자원개발성 중부물리탐사대 기사장 리춘남동무는 근 60년동안 한직종에서 일해오고있었다.

뿐만아니라 그의 안해와 자식모두가 탐사대에서 함께 일했으며 지금은 아들과 두 딸이 아버지와 한일터에 서있다.

그는 어떻게 되여 수십년세월 조국의 방방곡곡의 먼길을 수없이 밟으며 탐사사업을 해올수 있었고 자식들도 그길을 걷게 하였는가고 묻는 우리에게 생각깊은 어조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도 사회주의조국의 품에 안기지 못했더라면 나와 우리 가정의 운명이 과연 어떻게 되였을가 하고 생각하군 합니다.》

리춘남동무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였다.

지금으로부터 64년전 11월 청진항을 가까이하고있는 귀국선에는 공화국기를 손에 든 12살 난 소년이 있었다.그가 바로 리춘남동무였다.그의 가슴은 동해의 파도처럼 끝없이 설레였다.

(아버지의 말처럼 조국에 가면 마음놓고 공부할수 있을가?)

일본땅에서 태여난 그는 어릴 때부터 머리가 좋아 마을에서 신동으로 소문이 났었다.

그런 그를 어떻게 해서나 공부시켜보려고 그의 부모는 온종일 품을 팔았다.하여 그는 부모의 피땀이 어린 돈으로 일본학교에 입학하여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적인 시험에서 우수한 점수를 맞은 그가 너무 기뻐 저도 모르게 조선말로 《1등이다!》 하고 소리친적이 있었다.

순간 조센징이라고 손가락질하며 놀려대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울려왔다.

그날 학교성적게시판에는 그의 이름이 나붙지 않았다.

성적이 뛰여났지만 조선학생이라는 단 한가지 리유로 그는 언제한번 1등의 자리를 차지할수 없었고 등교길에서도 교실에서도 늘 머리를 숙여야만 했다.

얼마후 그는 끝내 일본학교에서 쫓겨나고말았다.…

조국은 바람세찬 이역에서 갖은 천대와 멸시만을 받으며 살아오던 그들을 따뜻이 맞아주었다.

그들이 단천시의 어느한 마을에 새 보금자리를 편 날 그의 집에 단천시 직절중학교(당시) 교장선생님이 찾아왔다.

어떻게 교장선생님이 우리를 다 찾아왔는가고 몸둘바를 몰라하는 춘남의 부모에게 교장선생님은 이애도 조국의 품에 안겼으니 마음껏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춘남을 학교로 이끌었다.

교장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학교마당에 들어선 춘남은 깜짝 놀랐다.

학교의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그를 에워싸고 꽃송이도 안겨주며 축하해주는것이 아닌가.

얼마후에는 새 교복과 새 책가방, 교과서와 학용품이 춘남에게 안겨졌다.

조국에서 받아안는 행복이 너무도 꿈만 같아 그밤 그는 끝내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행복은 커만 갔다.그의 두 동생은 유치원과 탁아소에서 무럭무럭 자랐고 아버지, 어머니는 농장원이 되여 성실한 땀을 바치였다.

그때를 회상하며 리춘남동무는 이렇게 말하였다.

《온 가족이 삯일을 해도 한끼 밥벌이를 하지 못하던 우리가 학교와 유치원, 탁아소에 돈 한푼 내지 않고 가게 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본주의 일본에서는 상상도 못할 행복을 누리는데도 이웃들은 물론 시와 동의 일군들, 학교와 진료소의 선생님들이 때없이 찾아와 진정을 기울였다고 덧붙였다.

그 사랑속에 춘남과 그의 동생들은 유치원과 학교에서 공부했고 졸업후에는 대학에 입학하였다.

리춘남동무는 중학교를 졸업한 후 희망대로 사리원시에 있는 고등탐사학교(당시)에서 공부하였다.

그후 그는 중부물리탐사대 조사원으로 사회생활의 첫발을 떼였다.

나라의 귀중한 자연부원을 찾아내며 온 나라 방방곡곡을 편답하는 그의 가슴속에는 조국에 대한 한없는 고마움과 함께 보답의 맹세가 굳게 자리잡았다.

그런 그를 탐사대에서는 또다시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체계에 망라시켜 그처럼 소원하던 김책공업종합대학에서 공부하도록 해주었다.당에서는 20대의 애젊은 그에게 조선로동당원의 고귀한 영예를 안겨주었다.날이 갈수록 더욱 뜨거워만지는 당과 조국의 사랑에 근로의 땀으로 보답하고싶은것이 그의 마음이였다.

하기에 그는 수십년세월 변함없이 한직종에서 성실하게 일해올수 있었고 그길에 자식들도 주저없이 세울수 있었으며 오늘도 젊은 사람들 못지 않게 어려운 탐사사업에 열정을 바쳐가고있는것이였다.…

리춘남동무는 이런 말로 이야기를 마치였다.

《어머니조국의 은혜로운 품이 아니였다면 어찌 오늘의 내가 있을수 있고 우리 가정이 있을수 있겠습니까.따사로운 사랑의 해빛으로 천만사람들의 삶을 행복의 열매로 주렁지우는 고마운 조국의 사랑에 대를 이어가며 보답하려는것이 저와 우리 가족모두의 결심입니다.》

본사기자 오은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