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8월 26일 월요일  
로동신문
공화국기발을 피로 지킨 전승세대의 넋을 영원히 안고 살자
세대를 이어가며 휘날리는 전승의 기발

2024.7.17. 《로동신문》 3면


근위사단의 《피에 젖은 기발》

 

탄알자리들이 너무도 많아 유물수집대장의 상태기록란에 《웃부분과 가운데부분에 4개의 큰 구멍과 수많은 작은 구멍들이 있고 아래부분은 갈기갈기 찢어져있다.》라고 씌여진 공화국기발앞에서 누구나 발걸음을 멈춘다.전쟁시기 근위 서울김책제4보병사단 제18보병련대 3대대 9중대의 승리의 상징으로 나붓기던 이 기발은 전승후에도 20년동안 세대를 이어 중대전우들에 의해 휘날려오다가 기증되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을 찾으셨던 날에 이 기발앞에서 오래동안 걸음을 멈추시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피에 젖은 기발》이라고, 이 기발앞에 서면 누구나 조국의 한치 땅을 지켜 청춘도 생명도 다 바쳐 싸운 영웅전사들의 모습이 그대로 어려와 발을 선뜻 옮기지 못할것이라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이 기폭앞에 서면 누구나 《나의 전우 물려준 피젖은 기발》이라는 노래구절을 마음속으로 불러보며 앞으로도 이 기발을 추켜들고 영원히 승리해나갈 억척의 맹세를 가다듬는다.

 

70년동안 물려온 가보

 

전승기념관에는 한 가정의 가보로 지금껏 보관되여오다가 조국해방전쟁승리 70돐이 되는 지난해에 기증된 공화국기도 있다.가로 두뽐, 세로 한뽐정도의 자그마한 그 국기는 전쟁당시 민족보위성직속 제2공병련대 중도하대대 지휘관이였던 김완수동지가 대전해방전투후에 땅크병들에게서 넘겨받아 전쟁 전 기간 소중히 간직하고있었다는 기발이다.

김완수동지는 대전시가에서 곁에 땅크대렬이 잠시 멈춰섰을 때 어느한 승조장에게 땅크우에 휘날리는 공화국기를 줄수 없는가고 물었다고 한다.공병친구들의 간절한 부탁인데 들어주겠다고, 자기 땅크에는 또 있다고 하며 땅크병들은 서슴없이 땅크에 꽂았던 공화국기를 김완수동지에게 넘겨주면서 전승열병식장에서 이 기발을 들고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였다.

전후에도 김완수동지는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이 조국보위초소로 떠날 때마다 기폭에 담겨진 사연을 전하며 전승세대의 넋을 심어주었다.

가보로 대대로 물려오던 그 기발은 현재 보통강구역 봉화동에서 사는 로병의 맏딸인 김순실녀성에 의해 2023년 11월에 전승기념관에 기증되였다.

 

기발의 주인은 인민유격대 대원이였다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에 적강점지역들에서도 공화국기는 전인민적인 항전의 기치였다.

1950년 11월 3일부 《로동신문》 3면에는 《영용하게 투쟁하는 구월산인민유격대》라는 제목으로 적강점지역에서 놈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가하고있는 인민유격대에 대한 기사가 게재되였다.

그 위훈의 비결을 전하여주는 공화국기발이 전승기념관에 보존되여있다.

1950년 10월 당시 구월산인민유격대의 한 대원은 자기 집에 간수하고있던 공화국기발을 가지고 입대하였다.이 국기는 달천전투를 비롯한 여러 전투에서 휘날렸으며 전투총화때마다 대원들에게 고무적힘을 주었다고 한다.

전승기념관 해당 부서에 있는 유물수집대장에는 황해남도 벽성군 벽성읍에서 1972년에 수집되여 기증된 이 기발에 대한 사연을 고증한 두 사람중의 한명이 어버이수령님께서 각별히 사랑하신 농민영웅으로 인민들속에 잘 알려져있는 벽성군 서원협동농장(당시) 관리위원장이였던 안달수동지로 기록되였다.안달수동지는 당시 구월산인민유격대에서 이 사연깊은 기발의 주인과 함께 싸웠다고 한다.

본사기자 백성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