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9월 8일 일요일  
로동신문
조국이 값높은 칭호로 내세워준 사람들

2024.7.22. 《로동신문》 4면


공훈기계제작공 박민철동무

 

라남탄광기계공장 채탄기직장 조립공인 박민철동무는 공장이 자랑하는 공훈기계제작공이다.

머리에 흰서리가 내린 오늘까지도 그는 공장에서 처음으로 일을 시작하던 때를 잊지 못해하고있다.그때 눈에도 설고 손에도 선 일감앞에서 어쩔바를 몰라하던 그에게 기술기능을 배워주기에 앞서 자기 직업에 대한 무한한 애착심을 심어주며 걸음걸음 이끌어준 사람들은 공장의 첫 세대 기능공들이였다.

그가 어느한 설비조립에 처음 참가했을 때였다.그때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스쳐지났던 문제를 두고 밤을 새워 퇴치하는 기능공들의 모습을 보며 큰 충동을 받았다.그와 함께 기술기능수준도 높여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기계설비들의 동음을 자기 생명의 박동처럼 여길줄 알아야 한다고 하던 기능공들의 당부를 소중히 새겨안았다.

그후부터 그는 맡은 일에 깨끗한 량심을 바치는 진짜배기기능공이 되기 위해 노력하였다.설비제작으로부터 조립, 여러 차례의 시험과 시운전, 도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공정들을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고 심혈을 기울인다는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지만 그는 한가지 일을 해도 당과 국가앞에 자신의 량심을 검증받는다는 심정으로 맡은 일에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쏟아부었다.

눈이 오고 비가 오는 날에도 자기가 조립한 설비의 정상가동을 확인하기 위해 먼길도 주저없이 걸으며 순결한 량심을 바쳐온 그에게 2019년 12월 공훈기계제작공의 값높은 칭호가 수여되였다.비록 년로한 몸이지만 오늘도 낮과 밤이 따로없이 헌신하는 그의 모습은 공장의 새세대들에게 있어서 참된 삶의 교본으로 되고있다.

리지혜

 

공훈산림공 류시옥동무

 

장풍군산림경영소 산림감독원 류시옥동무는 오랜 세월 군안의 산들을 쓸모있는 보물산으로 전변시키기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왔다.

수십년전 남편을 따라 산림감독원사업을 시작한 그는 담당림의 지형과 산림조성상태를 하루빨리 파악하기 위해 매일같이 험한 산발들을 톺는 한편 양묘장과 나무모온실을 자체의 힘으로 꾸려놓았다.그에 만족하지 않고 그는 담당림을 잣나무림, 왕밤나무림으로 전환시킬 결심을 안고 낮에는 나무모를 구하기 위해 먼길을 걸었고 밤이면 산림과학서적들을 탐독하였다.

애써 뿌려놓은 종자가 제대로 싹트지 않아 물통을 지고 오르내린 산길은 얼마이며 시들어가는 애어린 나무모들을 살려내기 위해 그곁에서 지새운 밤은 또 얼마인지 모른다.그렇게 한정보, 두정보 힘들게 조성해놓은 살붙이같은 숲이 병해충이나 산불에 의한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늘 마음쓰며 그는 산판에서 살다싶이 하였다.그렇듯 보이지 않는 뿌리와 같이 누가 알아주건말건 성실한 애국의 땀을 묵묵히 바쳐 그는 천수백정보나 되는 산림구역을 울창한 숲으로 전변시켰다.

그 나날 그는 국토관리총동원운동열성자대회에 참가하여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을 지니였으며 2014년 12월에는 공훈산림공칭호를 수여받았다.

나라를 위해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자신에게 그토록 값높은 영예를 안겨준 당과 국가의 고마움에 한생토록 보답하기 위해 그는 오늘도 애국의 한길을 변함없이 걷고있다.

안정철

 

공훈광부 강길만동무

 

공훈광부, 조국이 안겨준 그 고귀한 부름을 마음속으로 되새길 때마다 혜산청년광산 6월3일갱 로동자 강길만동무는 보람찬 로동으로 흘러온 지난 수십년간을 감회깊이 더듬어보군 한다.

군사복무를 마치고 광산에 달려온 그는 얼마후 동발공으로 배치되였다.광산에 삶의 뿌리를 내릴것을 결심한 순간부터 굴진공이 되여 착암기를 틀어쥐고 천연암벽을 밀고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늘 그려보던 혈기왕성한 그에게 있어서 동발공일은 마음에 차지 않았다.그런 그에게 광산의 오랜 동발공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군대로 말하면 동발공은 공병이나 같다.공격전에서는 열쇠가 되고 방어전에서는 자물쇠가 되여 승리를 이룩하는데 큰 기여를 하는 공병들처럼 생산의 선행공정을 맡은 우리 동발공들이 없다면 광물증산에 대해 생각할수 없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강길만동무는 매일매일의 작업과제를 범상하게만 여겨왔던 자신을 질책하며 분발하였다.그때부터 그는 맡은 일을 책임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하루일이 끝난 후에는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체계에 망라되여 지식의 탑을 쌓아갔고 그처럼 어려웠던 고난의 나날에도 대중적기술혁신운동의 앞장에 서서 많은 창의고안과 기술혁신안을 내놓는 성과를 이룩하였다.

그렇듯 누가 보건말건 한일터에서 오랜 세월 묵묵히 광물생산에 이바지해온 그의 공로를 평가하여 조국은 2011년 12월 공훈광부칭호를 수여하였다.

그는 오늘도 정든 일터에서 새세대 광부들을 광산의 래일을 떠메고나갈 믿음직한 기둥감으로 키워나가는 사업에 지혜와 열정을 아낌없이 바쳐가고있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