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9월 20일 금요일  
로동신문
조국해방전쟁시기 당정치사업경험(5)
대중운동의 위력-한점의 불꽃이 료원의 불길로

2024.7.23. 《로동신문》 3면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사는 인민군용사들로 하여금 무비의 용감성과 대중적영웅주의를 발휘하게 한 수많은 대중운동들을 기록하고있다.

모범중대운동과 《나의 고지》운동, 복수기록운동, 《민청》호무기쟁취운동을 비롯한 대중운동은 수많은 영웅들을 낳으며 승리의 날까지 계속되였다.

군인들속에서 발휘된 애국과 위훈의 한점 불꽃이 급속히 전 전선, 전군에 료원의 불길처럼 타번지게 한 전시대중운동, 이것은 인민군대가 정치사상적으로 더욱 강화되게 한 위력한 추동력으로 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조국청사에 금문자로 새겨진 전승세대의 공적중에서 제일 귀중하고 값진것은 영웅적인 투쟁정신과 기풍을 창조한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화의 나날 군인들속에서 발휘되는 소박한 미거들에서 귀중한 싹을 찾아내시고 그것을 일반화하시여 힘있는 대중운동으로 전환시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구상과 의도를 높이 받들고 인민군대의 정치일군들은 군인들의 견결한 혁명정신과 결사항전의 투지를 배가해주는 위력한 대중운동들을 힘있게 전개해나갔다.

1951년 4월 어느한 신문은 《나의 고지》운동의 첫 봉화를 든 한계렬영웅의 위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전했다.

《조국의 고지는 나의 고지! 중부전선에서 혈투를 거듭하고있는 우리 전투원들은 이렇게 웨치면서 적의 반돌격으로부터 고지를 사수하고있다.…

〈나의 고지〉운동의 선봉자는 …부대의 한계렬전투원이다.…

적의 포탄과 총알은 우박같이 쏟아지나 그들의 시선은 적을 노리면서 깜빡도 하지 않았다.…

3대대장은 한계렬전투원에게 교대하고 본대로 돌아갈것을 권하였다.그러나 한계렬전투원은 〈이 고지는 나의 고지입니다.나는 이 고지에서 끝까지 싸우겠습니다.〉라고 굳은 결의를 피력하면서 진지를 떠나려 하지 않았다.…

한계렬전투원의 이 구호는 지금 중부전선에서 주력의 역할을 담당하고있는… 부대의 전투구호로 되고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계렬동무가 보여준 숭고한 모범은 인민군군인들을 조국의 고지를 피로써 사수하기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고무추동할수 있는 좋은 싹이라고 하시면서 개별적군인들과 부대들에서 창조되는 긍정적인 싹을 적극 찾아내여 그것을 대중운동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을 잘할데 대해 가르치시였다.

최후의 순간에 조국의 고지는 나의 고지라고 하면서 조국의 고지를 끝까지 지켜줄것을 전우들에게 부탁하고 간 영웅의 모범을 따라배우기 위한 《나의 고지》운동이 적극적으로 전개되였다.각 부대, 구분대 지휘관, 정치일군들은 군인들속에서 《나의 고지》운동의 본질과 목적, 필요성, 의의를 깊이 인식시키고 한계렬영웅의 사상정신적풍모를 따라배우기 위한 교양사업을 활발히 전개하였다.그리하여 《나의 고지》운동은 단순히 고지를 사수하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 군인들을 백절불굴의 혁명전사로 키우며 인민군대의 전투력을 일층 강화하기 위한 대중운동으로 전환되게 되였다.

《나의 고지》운동은 곧 군인대중자신의 운동으로 되여 1951년 여름부터는 모든 전선부대, 구분대들에 확산되였으며 이 운동에 떨쳐나선 인민군용사들은 자기가 지켜선 고지가 곧 위대한 수령님께서 찾아주신 조국의 한 부분이라는것을 깊이 새기고 청춘도 생명도 귀중한 한치땅을 위해 서슴없이 바쳐싸웠다.

인민군용사들을 원쑤격멸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킨 복수기록운동은 또 어떻게 태여났는가.

1951년 2월 감악봉계선전투에서 두다리와 두팔에 중상을 입게 되자 수류탄을 입에 물고 적진에 뛰여들어 원쑤를 쓸어눕힌 강호영영웅을 배출한 중대의 정치부중대장은 희생된 전우들의 복수를 위한 정치사업으로서 복수기록사업을 벌리였다.

싸움마당에서 정치사업을 하는 목적이 군인들을 원쑤격멸에로 불러일으키는데 있는것만큼 복수기록운동은 좋은 정치사업방법이였으며 인민군대의 모든 부대들에서는 이 운동이 광범히 전개되였다.

전선의 모든 전투단위들에서는 복수기록장을 만들고 희생된 전우들의 복수를 다짐하였다.

원쑤들에 대한 치솟는 증오와 적개심을 안고 수많은 적병들을 살상한 저격수 최송남영웅은 자기의 복수기록을 종이에만 새기지 않았다.그는 나무에 《동무들 단발명중의 우등사수가 되자.》라는 글을 써서 전우들에게 총탄 한발에 원쑤 한놈씩 잡을것을 호소하였다.

이렇게 인민군용사들은 복수기록장의 마지막장, 마지막줄까지 원쑤들의 주검의 수자로 채우자고 토로하며 누구나 다 복수기록장을 가슴에 품고 싸웠으며 희생된 전우들의 몫까지 합쳐 적들을 무자비하게 격멸소탕하였다.

《민청》호무기쟁취운동도 전화의 불비속에서 태여난 대중운동의 하나이다.

적을 잡는 기본수단인 무기를 애호관리하고 그 위력을 최대로 발휘시켜 더 많은 적을 소멸하기 위한 대중운동인 《민청》호무기쟁취운동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1951년 4월 902.4고지전투에서 조군실전투원은 두팔과 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고 몸을 움직일수 없게 되자 마지막순간까지 턱으로 중기관총의 압철을 눌러 적병 수백명을 살상하고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그의 영웅적위훈은 높이 평가되여 그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칭호가, 그가 사용하던 중기관총 236호에는 《민청》호칭호가 수여되였다.

《민청》호무기쟁취운동은 이렇게 시작되였으며 수많은 인민군용사들이 싸우는 고지마다에서 침략자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눕힘으로써 자기의 무기에 《민청》호라는 자랑스러운 글발을 새겨넣었다.《민청》호무기쟁취운동의 불길속에 단 한해사이에만도 무려 3 460여개의 무기, 전투기술기재에 《민청》호칭호가 수여되는 자랑찬 성과가 이룩되였다.

모범중대운동 역시 조국해방전쟁에서 커다란 생활력을 발휘한 대중운동의 하나였다.

모범중대운동은 군사정치훈련수준과 당정치교양사업수준을 높여 중대를 생기발랄한 전투집단으로 꾸리는데 기본을 두고 진행되였다.인민군대의 정치일군들은 군인들속에 모범중대운동이 가지는 정치적의의와 모범중대평정기준을 널리 해설침투시켜 그들로 하여금 이 운동에 적극 궐기하도록 하였다.그리하여 1952년 2월 건군절을 맞으며 강호영, 로철산영웅을 배출한 안동제12보병사단 30보병련대 1대대 2중대 전투원들은 전군적으로 제일먼저 모범중대기발을 수여받았다.

모범중대운동은 전선부대들에서 원쑤격멸의 의지를 백배해주며 힘있게 전개되였다.모범중대, 모범군인들의 대오는 날을 따라 급격히 늘어나 불과 1년사이에 전군적으로 근 400개의 모범중대가 육성되였으며 수만명의 모범군인들이 배출되였다.

이렇듯 전화의 나날 인민군용사들의 백절불굴의 정신력, 열렬한 조국애와 불같은 적개심, 대중적영웅주의를 남김없이 발양시킨 대중운동은 불멸의 전승사를 안아오고 공화국의 발전행로에 백승을 떨치게 한 거대한 생명력으로, 후세토록 이어가야 할 자랑스러운 국풍으로 빛나고있다.

혁명의 전진과 더불어 우리 국가의 번영과 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이 힘있게 전개되고있는 지금 대중운동의 중요성은 더욱더 부각되고있다.우리는 전승세대처럼 사회주의애국운동, 혁명적인 대중운동을 과감히 전개하고 그 위력으로 전면적국가부흥의 새 지평을 열어나가야 한다.

한점의 불꽃을 급속히 전 전선, 전군에 료원의 불길처럼 타번지게 한 전시대중운동은 수령의 사상과 의지를 만장약하고 집단주의와 애국주의의 위력으로 투쟁해나갈 때 백전백승한다는 고귀한 철리를 새겨주고있다.

본사기자 김성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