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9월 8일 일요일  
로동신문
혁명사적초소를 대를 이어 지켜가는 순결한 마음
삼수혁명사적지관리소 령성령혁명사적지의 배기철, 배진혁동무들에 대한 이야기

2024.7.29. 《로동신문》 4면


나라의 북변 삼수군에 위치한 령성령마루에도 한평생 조국과 인민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오신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령도자욱이 뜨겁게 새겨져있다.

못잊을 그날의 사연을 길이 전하는 이곳 령성령혁명사적지에는 대를 이어가며 혁명사적초소를 굳건히 지켜가고있는 사람들이 있다.

삼수혁명사적지관리소 령성령혁명사적지 강사 배기철동무와 관리원 배진혁동무이다.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옹호고수하고 빛내여가는 길에 한생을 다 바쳐갈 불같은 마음을 지니고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혁명사적지관리사업에 자기들의 모든것을 다 바쳐가는 이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혁명사적부문은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영광스러운 혁명력사와 불멸의 혁명업적을 소개선전하며 후세에 길이 전해가는 가장 중요한 부문입니다.》

령성령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혁명사적부문의 관리원으로 일하던 배기철동무가 령성령혁명사적지 강사로 일하게 된것은 지금으로부터 근 10년전이였다.

언제나 맡은 사업에서 성실하고 책임성이 높은 배기철동무였기에 그는 당조직의 믿음속에 령성령혁명사적지 강사로 사업하게 되였다.

혁명사적지 강사!

이 말을 되새기며 배기철동무는 우리 당과 혁명의 만년재보를 옹호고수하고 더욱 빛내이기 위한 사업에 한생을 바쳐갈 불같은 자각으로 하여 흥분된 심정을 누를길 없었다.그때부터 그는 심심산중인 령성령에 온 가족과 함께 뿌리를 내리게 되였다.

누가 지켜보는 사람도 없고 새소리, 나무들의 설레임소리만 들리는 외진 곳이지만 배기철동무는 단 하루도 번짐없이 사적지관리에 심혈을 쏟아부었다.

비내리는 여름에도, 눈내리는 겨울에도 그 일과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함박눈이 쏟아지는 날이면 새벽부터 눈을 치느라 그는 한낮이 되여서야 안해와 함께 아침식사를 하였고 장마철이면 온 가족이 사적지구역이 피해를 입지 않게 하기 위해 더욱 긴장하여 일하였다.

령성령은 삼수군에서도 류달리 눈이 많이 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오죽이나 강설량이 많았으면 지금 군사복무를 하는 막내아들이 부모에게 편지를 보내올 때마다 《아직도 령마루에 눈이 그렇게 많이 내립니까?》 하고 꼭꼭 쓰군 하겠는가.

어느해 겨울날에는 밤새 내린 눈으로 령길이 막힌적이 있었다.

그날도 배기철동무는 가족과 함께 아침일찍부터 시작하여 어둠이 깃들어서야 사적지주변의 눈을 말끔히 쳐낼수 있었다.하지만 그아래 령길에는 많은 눈이 그냥 남아있었다.

하여 푸름푸름 새날이 밝아올무렵까지 배기철동무와 그의 가족은 부지런히 일손을 다그쳤다.사적지주변의 사람들도 눈가래며 삽을 들고 달려왔고 군에서 삽차까지 동원해서야 눈치기가 끝났다.

온밤 눈치기를 하느라 배기철동무의 두눈은 충혈지고 입술은 부르텄다.그러는 그에게 사람들은 이젠 령길이 열렸으니 집에 들어가 눈을 좀 붙이라고 떠밀었다.

하지만 배기철동무는 허옇게 성에가 불린 머리칼을 바로잡으며 헌헌히 말하였다.

《이제 답사자들이 오겠는데 그들이 강사를 찾지 않겠습니까.》

혁명사적비가 세워진 곳으로 향하는 그의 걸음새는 한밤을 지새운 사람같지 않게 곧바르고 기백에 넘쳐있었다.

이런 일은 겨울철이면 례사로운 일로 되군 하였다.

겨울도 겨울이지만 장마철에도 배기철동무는 늘 마음을 놓지 못하며 사적지를 떠나지 않았다.

비가 밤새 그치지 않고 쏟아지던 어느날이였다.

깊은 밤 집을 나선 그는 좀처럼 돌아올줄 몰랐다.한동안이 지나서야 안해는 사적지주변에서 남편의 모습을 보게 되였다.

비가 억수로 내리는 속에서도 남편은 사적지주변의 나무들이 넘어질세라 이미 매놓은 벌줄들의 상태를 하나하나 다시금 확인하고있는것이였다.

번쩍이는 번개의 섬광속에 간간이 드러나는 배기철동무의 그 헌신적인 모습은 초소를 지켜선 초병의 모습그대로였다.

령성령을 떠받든 초석과도 같이 우리 혁명의 만년재보를 지켜가는 길에 한생을 바칠 변함없는 의지를 지닌 그였기에 중학교를 졸업한 맏아들도 혁명사적초소에 세웠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배기철동무가 군소재지에 간 사이에 배진혁동무가 혼자서 사적지관리를 맡아보게 되였다.이날 실날같이 내리던 가랑비는 갑자기 폭우로 변하여 동이채로 물을 퍼붓듯이 쏟아져내렸다.

그는 뚝을 쌓아 사적비교양마당으로 흘러드는 산골물을 돌리기도 하고 수림속을 누벼가며 벌줄을 바로잡아주기도 하였다.

세찬 비발을 주저없이 헤쳐가는 그의 모습은 혁명사적초소를 지켜선 또 한명의 믿음직한 초병의 모습이였다.

아버지와 나란히 령성령혁명사적지를 지켜선 배진혁동무는 지금 우리 당의 혁명사적을 깊이 학습하기 위해 김정숙사범대학 원격교육학부에 입학하여 공부하고있다.

이들의 가정에는 지난해 9월 배기철동무가 공화국창건 75돐 경축행사에 참가하여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찍은 영광의 기념사진이 가보로 간직되여있다.

그 뜻깊은 기념사진을 우러르며 배기철동무와 그의 아들은 오늘도 령성령의 혁명사적초소를 지켜 충성과 애국의 길, 량심과 의리의 길을 변함없이, 성실하게 걷고있다.

특파기자 전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