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5일 일요일  
로동신문
구리비녀마저 꽂을수 없었던 세월

2024.8.12. 《로동신문》 6면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과거 일제가 우리 인민에게 감행한 침략적이며 략탈적행위를 절대로 잊어서는 안됩니다.》

해방전 어느한 곳에는 나이 50이 넘도록 물동이로 물을 길어다 팔며 가난한 살림을 유지해나가는 한 녀인이 있었다.그에게는 소박한 소원이 있었는데 한번이라도 윤기나는 구리비녀를 머리에 꽂아보는것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토방에 지게를 벗어놓고 방에 들어선 남편이 품속에서 구리비녀를 꺼내여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귀밑머리가 희여지도록 가난에 쪼들려 살면서 안해에게 구리비녀 하나 꽂아주지 못한것이 가슴에 맺혀 한푼두푼 모아두었던 돈으로 장만한것이였다.

순간 녀인의 눈가에는 뜨거운것이 맺혔다.

이튿날 난생처음으로 그가 나무비녀대신 구리비녀를 꽂은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장마당에 나섰을 때였다.

그를 불러세운 일제경찰놈이 커다란 칼자루로 머리에 인 물동이를 사정없이 내려치는것이였다.

일제경찰놈은 다짜고짜로 머리에서 구리비녀를 뽑아내며 왜 이런것을 《대일본제국》에 바치지 않고 머리에 꽂고다니는가고 호통을 치는것이였다.

당시 일제는 우리 인민이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놋그릇, 철기류를 모조리 략탈하고있었다.

일제는 침략전쟁에 필요한 금속자원의 고갈을 메꾸기 위하여 우리 인민들이 가정에서 대를 물려오는 놋으로 된 가정용품들은 물론 절간의 놋초대와 놋술잔 지어 녀자들의 반지와 비녀에 이르기까지 모든 금속제품들을 군수용원료로 빼앗아갔다.

그런 놈들이 구리비녀를 그냥 스칠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억울하고 격분한 녀인은 놈에게 《그래 우리 조선녀인들이 구리비녀를 꽂고다니는게 죄란 말이요?》라고 항거해나섰다.그러자 놈은 《조선사람은 일본사람이 되든가 아니면 죽어야 한다.》고 지껄이면서 구두발로 그를 사정없이 차고때리였다.

그날 그는 구리비녀를 하루도 꽂아보지 못하고 빼앗긴 서러움, 온몸에 피멍이 지도록 매를 맞은 아픔보다도 인간의 존엄과 권리가 무참히 짓밟히고 유린당해도 어디에 하소연할 곳 없는 망국노의 가련한 신세를 끝없이 한탄하며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이것은 나라없던 그 세월 우리 인민 누구나 겪어야 했던 피눈물의 이야기이다.

본사기자 김현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