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9월 18일 수요일  
로동신문
생활창조에 대한 자신심에 넘쳐 좋은 래일을 마중해간다
신포시에 약동하는 숨결을 전하며

2024.8.22. 《로동신문》 5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당에 모든것을 의탁하고 당과 함께 온갖 시련과 난관을 헤쳐온 우리 인민들에게 하루빨리 세상에 부럼없는 유족하고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주어야 합니다.》

지난 7월 16일 신문과 방송으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신포시바다가양식사업소 건설준비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신 혁명활동소식이 전해져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였다.

오늘의 《창성련석회의》로 우리 공화국력사에 기록된 지방경제발전관련협의회가 진행된 신포시, 이제 몇해후면 《부자시》로 온 나라의 부러움을 받게 될 그 고장에서 펼쳐지는 생활을 지면에 담고저 얼마전 우리는 취재길에 올랐다.

차창으로 흘러가는 드넓은 바다, 이따금 들려오는 배고동소리는 우리로 하여금 신포시가 우리 나라 굴지의 어항도시로 소문났던 곳이라는것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시내로 흐르는 보주천을 가로지른 륙대다리를 건너서니 수백m나 됨직한 《속보거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애국의 힘, 단결의 힘으로 현대적인 양식사업소를 보란듯이 일떠세우자!》, 《세계앞에 보여주자.당의 구상과 결심은 곧 우리의 실천이라는것을!》…

그곳에서 만난 풍어동 사무장 리은경동무는 자기 고장에 대한 주민들의 긍지는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풍어동은 지난 시기에 령무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그러던 이 고장이 풍어동으로 불리운데는 참으로 가슴뜨거운 사연이 있었다.

수십년전 11월 어느날 이곳의 자그마한 역에서 내리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문득 령무라고 쓴 역명판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그이께서는 서운한 기색을 지으시고 여기는 물고기도 많은데 왜 령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시였다.그후 령무라는 지명을 풍어로 고쳐부를데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당시) 정령이 채택되였다.이때부터 이 고장 사람들은 고향을 물을 때면 물고기고장으로 소문난 신포시 풍어동이라고 자랑스럽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던것이 오늘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속에 지방이 변하는 새시대의 《부자시》가 될 황홀한 래일이 그려진 고장으로 더욱 유명해졌으니 이곳 주민들의 긍지가 그 얼마나 크겠는가 하는것은 가히 짐작할만하였다.

하기에 풍어동주민들은 물고기가 많은 고장을 양식으로 흥하는 고장으로 만들자고 하며 저저마다 건설장을 찾고있었다.

남다른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바다가양식사업소건설장으로 향한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 우리는 어느덧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발자취가 어린 력사적인 협의회장소에 이르렀다.그곳에서 우리는 신포시바다가양식사업소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을 만났다.

《매일 양식장으로 나가기 전과 돌아온 후에 여기에 들리군 합니다.그러느라면 삼복철에 시의 발전을 위해 바다길에도 오르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헌신의 자욱이 어제일이런듯 생생히 떠오릅니다.》

지배인 한철수동무의 격정에 겨운 목소리였다.

현재 사업소는 넓은 면적에 밥조개와 다시마양식장을 폈는데 전망이 확고했다.밥조개는 정보당 10여t, 다시마는 정보당 100여t 수확한다고 볼 때 그 수익성은 대단한것이였다.

사업소종업원들의 열의도 하늘을 찌를듯 높았다.

그들은 분초를 아껴가며 배우고 또 배워 지식형근로자로, 양식에서 막힘이 없는 《양식박사》로 준비해갈 열의밑에 낮과 밤을 이어가고있었다.

《이제 두고보십시오.정말이지 3~4년이면 우리 사업소가 온 나라에 대고 통장훈을 부르게 될겁니다.》

사업소로 탄원하는 사람들이 날을 따라 늘어나고있다는 사실도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했다.

얼마전에는 해암1동 42인민반에 살고있는 제대군관 정운혁동무가 안해와 함께 사업소에 찾아왔다고 한다.그들은 당에서 고향땅을 훌륭하게 전변시킬 구상을 펼치였는데 어떻게 앉아서 사랑을 받기만 하겠는가, 먼 후날 고향의 변혁사에 부모는 무엇을 새겼는가고 두 아들이 물을 때 떳떳하게 대답하고싶다고 하면서 탄원을 열렬히 제기했다.

바로 이런 불같은 마음을 안고 지난 한달동안에만도 수십명이 사업소에 탄원했다고 한다.

신포시녀맹원들의 가슴속에 간직된 지향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것인가.

시녀맹위원장 서연심동무는 우리에게 시녀맹원들속에 생겨난 모래주머니와 애국운동일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혁명활동보도에 접한 그날 저녁 녀맹원들은 한자리에 모여앉았다.그들의 손에는 붉은 천으로 한뜸한뜸 바느질을 하여 만든 주머니가 들려있었는데 그속에는 사연깊은 바다가의 모래가 정히 담겨져있었다.

이날 그들은 앉아서 행복을 기다리지 말고 자기들의 손으로 창조해나가자고 궐기해나섰다.

서연심동무는 이렇게 말했다.

《붉은 모래주머니를 품고있으면 바다가양식의 웅대한 설계도를 펼쳐주시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자애로운 영상이 어려오고 뜨거운 사랑에 충성으로 보답하려는 각오가 더욱 충천해집니다.》

이런 지향을 간직하고 녀맹원들은 매일 지대정리, 블로크찍기 등 건설을 적극 도와나서고있었다.그리고 그 정형을 애국운동일지에 하나하나 기록해나갔다.

이들만이 아니였다.

시안의 그 어디에 가보아도, 그 누구를 만나보아도 신심과 활력에 넘친 미더운 모습들을 안아볼수 있었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다.애로와 난관도 한두가지가 아니다.하지만 당에서 하라는대로만 하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 자신심을 안고 온 신포시가 새 생활창조로 세차게 약동하고있다.

약동하는 신포시의 숨결, 그것은 꿈같이 아름다운 래일을 펼쳐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에 대한 다함없는 고마움과 보답의 열기였다.

신포시를 떠나며 우리는 확신할수 있었다.황금산의 력사가 창조된 창성군에서처럼 이 고장에도 머지않아 바다가양식으로 흥하는 《부자시》의 새 력사가 펼쳐지리라는것을.

글 본사기자 백광명

사진 본사기자 장성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