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7일 금요일  
로동신문
사회주의근로자로 떳떳이 살자!
다시는 잃을수 없는 인생의 값진 재부

2024.8.26. 《로동신문》 4면


누구에게나 나서자란 고향산천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 감정은 참으로 류다르다.아마도 그것은 지난날 거의 10년간이나 고향을 등지고 저 하나의 리익을 위해 여기저기로 동분서주하는 나날에 가슴치게 새겨안은 후회와 늦게나마 고향땅에 발을 붙인 후에 비로소 찾은 인생의 보람과 희열때문일것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자기가 나서자란 고향산천과 자기 일터, 조국의 한뙈기의 땅과 한그루의 나무도 자기 살붙이처럼 사랑하고 귀중히 여기며 내 나라, 내 조국을 위해 자기의 온넋을 바치도록 하여야 합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오래전에 나는 예술영화 《도라지꽃》에서 나오는 박원봉이와 같이 자기 고향이 다른 고장보다 못산다고 하여 고향을 떠나갔었다.

농사도 제대로 안되고 가정형편도 어렵다고 하여 조건이 좋은 타지방을 넘겨다보던 나머지 고향의 혈육들과 친지들도 다 버리고 저 하나만을 위해 부평초처럼 떠돌아다녔다.그 나날 무슨 일인들 못해보았겠는가.《리득》을 볼수 있는 일이라면 이 일, 저 일 가리지 않았다.이렇게 한해 또 한해가 흐를수록 왜서인지 허무해지는 마음을 걷잡을수 없었다.

제일 그리운것이 사랑과 정이였다.고향에서는 생활은 좀 어려웠어도 화목하게 지냈다.어려운 일이 생기면 속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면서 방도를 의논해주고 힘을 보태주는 혈육들과 친지들이 있었고 때로 길을 잘못 들면 아픈 매를 들며 다잡아주던 조직과 동지들이 있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 홀로 떠돌아다니다나니 나에게는 곁에서 진정으로 걱정해주고 함께 기뻐해줄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정말이지 그때 나는 그 어떤 가정적재부보다 귀중한것이 고향사람들과 고락을 함께 나누며 제손으로 고향땅을 가꾸며 사는 진실한 생활속에 있다는것을 후회속에 깨달았다.그래서 나는 슬그머니 고향의 형편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나와 중학시절 동창생이 작업반장으로 새로 온 후 작업반사람들이 합심하여 농사도 잘 짓고 분배도 많이 탔다는 소식,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에 궐기했는데 일을 끝내고는 체육도 하고 예술공연련습도 하는데 정말 사는 멋이 있다는 말을 듣고나니 철없이 고향을 떠난 자신에 대한 모멸감에 더더욱 괴로움을 금할수 없었다.하지만 어려울 때 고향을 저버린 내가 어떻게 살기가 좋아졌다고 다시 머리를 들고 돌아갈수 있겠는가.

그런 고민속에 모대길 때 나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동창생인 작업반장 권혜옥동무였다.

고향소식을 들려주며 이제는 돌아가 함께 일하자고, 온 작업반이 동무를 기다린다고, 잘난 자식, 못난 자식 차별없이 품어안는것이 당의 품인데 무엇을 주저하겠는가고 하며 손잡아 이끄는 그앞에서 나는 끝내 눈물을 흘리고야말았다.나와 생일도 꼭같고 한책상에 앉아 함께 공부한 동창생은 고향의 뒤떨어진 작업반을 맡아안고 저렇게 입술이 부르트도록 아글타글 뛰여다니는데 상반되는 길을 택한 나는 과연 어느 지경에 굴러떨어졌는가 하는 자책감이 가슴을 쳤다.

고향을 버리면 그렇듯 쓰라린 후회와 부끄러움, 뼈저린 아픔과 고민속에 몸부림치게 된다는것을 가슴치게 절감하며 나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와보니 누구도 나를 탓하는 사람이 없었다.오히려 농장일군들과 작업반원들, 이웃들이 일을 잘해보자고, 이제부터라도 분발하면 얼마든지 과거의 공백을 메꿀수 있다고 힘과 용기를 주는것이 아닌가.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맹세다졌다.열배, 백배의 노력으로 늦게나마 고향을 위해, 작업반을 위해 땀을 바치리라고.

그때부터 나는 작업반에서 어려운 일이 제기될 때면 제일먼저 도맡아안았다.미장이면 미장, 소관리면 소관리, 작업반에 필요한 일이면 무엇이나 선뜻 걷어안고 힘든줄 모르고 일했다.예술공연과 체육경기가 진행될 때에도 우리 작업반사람들은 중학시절부터 소질이 있는 재간둥이라고 하며 나를 적극 내세워주군 했다.

그렇게 9년세월이 흘렀다.그 나날 나는 해마다 농사를 잘 지어 나라에 곡식을 더 바치고 분배도 많이 받아 집살림도 윤택하게 꾸렸다.어느덧 나의 가슴에도 2개의 3대혁명붉은기훈장이 빛나게 되였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고향과 마을사람들앞에 진 빚을 다 갚지 못하였다고 생각한다.아니 한생을 다 바쳐 남보다 몇곱으로 땀흘려 일한다 해도 나의 인생에서 잃어버린 귀중한 시간은 보상할것같지 못하다.

그래서 지금도 농장원들이 나를 보고 작업반에 없어서는 안될 보배라고 떠받들어줄수록, 농장속보판에 내 이름이 크게 나붙을수록 지난날의 떳떳치 못한 과거를 교훈속에 돌이켜보며 이렇게 말하군 한다.

사람이 자기가 나서자란 곳에서 고향사람들과 고락을 함께 나누고 새 생활도 힘을 합쳐 창조해가는것만큼 보람있고 행복한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고, 소중한 그 모든것을 다시는 잃지 않기 위해 나의 땀과 열정, 한생을 깡그리 바쳐가겠다고.

황해북도농촌경리위원회 류은농장 제6작업반 농장원 민동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