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9월 17일 화요일  
로동신문
113건의 창의고안증서에 비낀 지향

2024.9.1. 《로동신문》 6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누구나 보석과 같은 애국의 마음을 간직하고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유익한 일을 스스로 찾아하여야 합니다.》

지난 7월 어느날 대성구역과학기술위원회 정문앞에는 여느때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흥성이고있었다.손에 꽃다발을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는듯 줄곧 정문을 바라보던 그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여올랐다.짧은 기간에 113건의 창의고안증서를 받은 주인공이 드디여 나타난것이다.

모두들 그에게 달려가 축하의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가슴벌게 받아안은 꽃다발들에 얼굴을 묻고 행복의 미소를 짓는 녀인, 그가 바로 만경대구역 만경대동에 살고있는 윤희동무였다.

예순고개를 넘겼지만 어느 하루도 일손을 놓지 않고 새로운 착상과 새 제품개발에 지혜와 열정을 바쳐가고있는 그를 사람들은 누구나 존경하고있었다.

윤희동무는 몇해전까지만 해도 평양시의 어느한 종합진료소에서 의사로 일했었다.

년로보장을 받았을 때 그는 담당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돌봐주며 느끼던 희열을 다시는 느낄수 없다는 생각으로 허전함을 금할수 없었다고 한다.

사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종군기자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기자가 될것을 희망하던 그가 원산의학대학을 졸업하고 의료일군이 된데는 사연이 있었다.

윤희동무가 중학교를 졸업하기 몇달을 앞두고 전쟁로병이며 영예군인인 아버지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입은 상처가 도져 앓아눕게 되였다.며칠을 넘기지 못할것같다던 아버지는 의료일군들의 지극한 정성에 의하여 인츰 건강을 회복했다.

그후에도 담당의사를 비롯한 의료일군들은 윤희동무의 집을 매일과 같이 찾아와 아버지의 건강을 극진히 돌봐주었으며 이웃들도 별식이 생기면 전쟁로병에게 맛보이라며 안겨주군 하였다.

그들의 진정어린 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고마운 우리의 사회주의보건제도를 지켜가는 의료일군, 인민들의 건강을 돌보는 인간생명의 기사가 되리라 결심하였던것이다.

이렇게 되여 문학에 큰뜻을 품었던 그는 고려의학을 전공하는 의료일군이 되여 인민들의 건강증진과 치료사업에 온갖 정성을 바쳐왔다.하지만 윤희동무는 자신이 아직도 할 일을 다하지 못한것만 같은 죄책감이 갈마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윤희동무는 다음날부터 자신이 터득한 림상경험과 지식에 기초하여 인민들의 건강증진에 이바지할수 있는 의료기구와 건강식품개발에 달라붙었다.

인민대학습당과 과학기술전당에서 필요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밤을 새워가며 자료작업을 하느라 책속에 파묻혀 시간가는줄 몰랐다.자료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제품개발에 필요한 자재들을 마련하기 위해 늘쌍 무거운 배낭을 등에 지고 살다싶이 하였고 의료일군들과 환자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병원과 진료소들을 찾아다녔다.

애쓴 보람은 드디여 성공의 열매를 맺어 윤희동무는 지난해 1월 첫 창의고안증서를 수여받게 되였다.

그의 지칠줄 모르는 탐구력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그러나 모든것이 얼음판에 박밀듯이 순조롭기만 한것이 아니였다.어느한 위생용품에 대한 창의고안을 할 때였다.

원료의 합리적인 배합비률이 얻어지지 않아 그는 상당히 애를 먹었다.그는 자기의 피부에 직접 발라보기도 하면서 여러 차례의 분석과 실험을 진행하였으나 바라는 수치는 얻어지지 않았다.그 과정에 그의 팔목과 다리 등 여러 부위가 벌겋게 부어올랐고 심한 곳에는 물집까지 생겼다.거듭되는 실패와 아픔으로 하여 윤희동무는 끝내 쓰러져 자리에 눕게 되였다.

이튿날 그가 앓는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달려왔다.창의고안에 필요한 자료들을 구해주고 기술적방조도 아낌없이 해주던 기술자, 연구사들이며 인민들의 건강증진에 이바지하는 좋은 일을 스스로 찾아하는 어머니를 돕는것은 응당한 일이라고, 녀인들의 손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부탁하라며 자기 집일처럼 발벗고 도와나서던 고마운 이웃들이였다.그들의 후더운 진정속에 윤희동무는 며칠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난 시기의 경험에 토대하여 원료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처리해보고 배합비률도 바꿔가며 그는 연구를 계속 심화시켰다.실패가 거듭되는 속에 드디여 서른번째만에야 기대했던 수치에 도달하게 되였다.

성공의 기쁨을 맛보는 그 시각 윤희동무는 한 평범한 년로보장자의 창의고안을 지지해주고 떠밀어주며 사심없이 방조해준 고마운 사람들과 누구나 과학과 기술로 사회적진보와 발전에 이바지할수 있는 모든 조건을 마련해주는 우리의 사회주의제도에 대한 감사의 정을 금할수 없었다.

그는 새 제품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며 온갖 심혈을 기울이였다.

그가 개발한 의료기구들과 건강식품들이 전부 우리 나라의 원료와 자재로 만든것이고 환경보호와 인민들의 건강증진에 실지 도움이 되는것으로 하여 많은 사용자들속에서 호평이 높아졌고 창의고안증서는 나날이 늘어났다.

그 증서 하나하나를 받을 때마다 그는 나라의 은덕에 조금이나마 보답하였다는 긍지를 가슴뿌듯이 느끼군 하였다.

조국을 위해 자그마한것이라도 기여했다는 긍지, 그것은 윤희동무에게 있어서 그 무엇에도 비길수 없는 삶의 가장 큰 보람이고 기쁨이였다.

언젠가 동년배가 그에게 무엇을 바라고 고생을 사서 하는가고 물은적이 있었다.그때 윤희동무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바라는게 왜 없겠나요.아직 육신을 움직일수 있을 때 나라를 위한 좋은 일을 한가지라도 더 해놓고싶은거예요.그 무슨 공로의 그늘밑에서 일손을 놓고 나라쌀이나 축낸다면 어떻게 이 나라의 공민이라 하겠나요.》

그는 오늘도 성공과 기쁨의 자족감이 아니라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할 리상과 포부를 안고 탐구의 나날을 이어나가고있다.

한 년로보장자가 받은 113건의 창의고안증서, 그것은 고마운 어머니조국에 바치는 평범한 한 공민의 소박한 마음이 비낀 보답의 증서이기도 하였다.

늘 보답의 마음을 안고 생을 줄기차게 이어가는 이런 참된 공민들이 있어 이 땅에는 창조의 열매들이 무성해지고 내 조국은 끝없이 전진하는것이 아니랴.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안성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