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9월 17일 화요일  
로동신문
사회주의근로자로 떳떳이 살자!
필요한 사람, 부름처럼 귀중한것은 없다

2024.9.7. 《로동신문》 4면


누구나 알다싶이 건설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맡은 공사를 완공하면 잠시도 쉴새없이 또 다른 대상공사에 진입하여 늘 집을 나가살다싶이 하는것이 바로 우리 건설자들인것이다.

하지만 나의 길지 않은 인생길에서 지금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고 생각된다.내 손으로, 내 힘으로 고향의 아름다운 래일을 창조해간다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하여, 집단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되고있는것으로 하여 아무리 일하고일해도 힘든줄 모르겠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나는 무엇을 바쳤는가라는 물음에 늘 자신을 비추어보면서 애국의 마음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사실 몇년전까지만 해도 나는 건설자라는 자신의 직업을 불만스럽게 여기다 못해 자기 하나만을 위해 사는 길을 걸은 시대의 락오자였다.

10여년전 군의 어느한 공장개건현대화공사에 참가하였다가 뜻밖의 일로 몸을 상하게 된 나는 집에서 안정치료를 받게 되였다.늘 드바삐 일하다가 어쩌다 한가하게 침상에 누워 집안팎을 둘러보니 생각이 많아졌다.그전에는 새벽에 나갔다가 저녁에 늦게 들어오고 또 어떤 때는 몇달씩 나가살다나니 식솔들이 어떻게 살고있는지 미처 다 알지 못했지만 온종일 집에 있느라니 남자의 손길이 제대로 가닿지 못한 집안팎의 여기저기가 별로 가슴아프게 안겨오면서 세대주구실을 바로하지 못했다는 제딴의 자책감에 휩싸이게 되였다.그러다나니 오래간만에 아버지와 함께 있다고 기뻐하며 재롱을 부리는 어린 딸애를 대하기도 어쩐지 어성버성하였다.

점차 날이 가고 달이 가며 나의 육체는 회복되여갔다.허나 나의 정신은 반대로 병들기 시작했다.

내 손으로 숱한 건물들을 일떠세웠지만 내가 사는 집은 왜서 번듯하게 꾸려놓지 못했던가 하는 생각과 함께 지난 시기 나를 찾아와 그 좋은 재간으로 자기네 집일을 해달라던 일부 사람들의 청을 들어주지 않고 직장일에만 전념한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하여 나는 남들이 그처럼 부러워하는 건설기술과 기능을 자신과 가정을 위해 써먹기 시작했다.내가 여기저기 다니며 살림집들을 꾸려주기 시작하자 차츰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으며 결국 그로 하여 생활도 윤택하게 꾸려나갈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함께 일하던 일군들과 동무들이 집에 찾아왔다.그들은 딴길을 걷고있는 나를 준절하게 타일렀다.

지금처럼 살다가는 사회에 아무런 쓸모도 없는 불필요한 존재가 되고만다고.

하지만 나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그리고 더 분주하게 돌아치며 제 리속만을 챙겼다.

그렇게 몇년세월이 흘렀다.그 나날 군의 모습은 몰라보게 달라지기 시작했다.어디서나 건설의 우렁찬 동음이 울려퍼지는것과 함께 사람들속에서는 건설자들이 화제에 자주 올랐다.처음에는 집안팎이 환해진다고 기뻐하던 안해도 점차 사람들을 대하기가 부끄럽다고, 특히 건설자들을 볼 때면 더더욱 미안한감을 금할수 없다고 이야기하더니 언제인가는 다시 직장에 나가 일하지 않겠는가고 눈물을 흘리며 권유하기까지 했다.

그즈음 나에게도 그런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아무리 부지런히 일해도 직장에서처럼 꼭 필요한 존재로 떠받들리우며 사는 멋이란 도저히 찾아볼수 없고 도리여 저밖에 모르는 사람들에게서까지 하대를 받으며 일해야 하니 과연 내가 선택한 길이란 리속을 위해 존엄까지 팔아야 하는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후회가 종종 갈마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군당위원회청사앞을 지나던 나는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차에서 내리는 한사람을 보게 되였다.뜻밖에도 그는 지난날 내가 함께 일하면서 건설기술과 기능을 배워주었던 사람이였다.영문을 알고싶어 주위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군적으로 소문난 보배인데 그를 모르는가고 하며 오히려 나에게 놀란 눈길들을 보내는것이였다.

그때부터 나는 손맥이 풀려 집구석에만 배겨있었다.여지없이 잘못된 선택을 하였다는 자책감으로 온 심신이 괴롭기 그지없었다.내가 배워준 제자와도 같은 사람은 지금 온 군이 다 아는 로력혁신자로 떠받들리우는데 제딴에 스승이라고 자처하던 나는 과연 어떤 꼴을 하고있는가.

번민에 빠져있는 나에게 뜻밖에도 군당위원회의 한 일군이 찾아왔다.

그는 나에게 군에서 건설대상이 늘어나는것과 관련하여 작업반을 조직하려고 하는데 기술기능이 높은 동무가 그 작업반을 책임지면 좋을것같아 찾아왔다고 하는것이였다.

나는 선뜻 응할수가 없었다.과거가 너무도 부끄러워서였다.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참답게 살자면 반드시 그길을 택해야 하기에 나는 대담하게 결심하였다.

그렇게 되여 나는 군안의 여러 대상건설장에서 기능공으로 다시 활약하기 시작하였으며 지금은 군에서 조직된 건설려단의 중대장으로 일하고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75돐 경축행사에 참가하여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최상의 영광을 받아안았다.

이제는 군에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할만큼 알려지고 반드시 필요한 사람으로 누구나 떠받들어주고있다.정말이지 집단과 동지들의 사랑과 믿음속에 사는 가슴뿌듯한 이 행복을 한가정의 재부만을 위해 뛰여다니던 지난 생활에 어찌 비할수 있겠는가.

이 기회에 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싶다.진정한 행복, 그것은 나서자란 고향과 동지들을 위해 자신을 사심없이 바칠 때, 그로 하여 집단에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 꼭 필요한 사람이라 불리우며 일하는데 있다는것을.

나는 그 소중한 부름을 다시는 잃을수 없고 그 무엇과도 절대로 바꿀수 없다.

운산군건설려단 중대장 유창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