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9월 17일 화요일  
로동신문
실화
고향

2024.8.23. 《로동신문》 4면



무겁게 내리드리운 먹장구름이 뭉켜돌아가더니 비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증산군 풍정리당비서 백학철은 창밖으로 멀어져가는 풍정농장 제16작업반 반장 강철옥과 그의 딸을 점도록 바라보며 못박힌듯 서있었다.

타고장으로 시집을 갔던 강철옥의 딸이 남편과 함께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짓겠다고 제기해온것이다.

비방울들이 쉼없이 내리꽂히는 속에 흐릿해지는 창문유리로 지나간 추억들이 화면처럼 흘러갔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나는 무엇을 바쳤는가라는 물음에 늘 자신을 비추어보면서 애국의 마음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근 10년전 어느날이였다.

백학철은 제16작업반 반장을 새로 임명하는 문제를 놓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이때 관리위원장(당시)이 제14작업반의 강철옥이 어떤가고 의향을 내비쳤다.

백학철은 저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아, 그렇지.《강진주》!)

농장에 처음 왔을 때 누군가가 들려주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강철옥은 원래 이 고장내기가 아니였다.

강원도 통천군의 어느한 수산협동조합에서 일하던 강철옥이 제대병사를 따라 풍정리로 시집온것은 그의 인생에서 극적인 전환이였다.

수판알이나 튀기고 수량이나 따지던 강철옥에게 있어서 끝간데없는 벌판과 농사일은 너무도 생소했고 한뉘 땅과 함께 살아온 시부모들을 대할 때면 눈앞이 아뜩해져 하루빨리 농촌에서 벗어나고싶은 생각이 늘 머리속을 맴돌았다.

그러는 강철옥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듯 땅처럼 과묵하던 시아버지가 아들, 며느리를 불러앉히더니 이렇게 말했다.

《난 너희들이 철새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행복은 두눈을 밝혀 찾아다니는것이 아니라 두손으로 가꾸는것임을 명심해라.》

이런 일이 있은 후로 강철옥은 차츰 마음을 다잡고 남편과 자식들의 뒤바라지를 아글타글 해나갔다.고난의 시기 모든것이 부족한 속에서도 다수확을 내는 남편을 보며 남다른 긍지감을 간직했고 남편의 그늘밑에서 가정을 위해 열성껏 뛰여다니는데서 행복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말썽많은 한 작업반원때문에 마음쓰는 남편의 모습을 보게 되였다.

그런 남편을 대하느라니 마음이 무거워 강철옥은 그 농장원의 집을 찾아갔다.

《모두가 고향을 꽃피우자고 열심히 일하는 때에 사람들의 말밥에 올라서야 되겠어요?》

그러나 뜻밖에 던지는 그의 대답은 강철옥의 가슴에 마디마디 총알처럼 박혀들었다.

《그러니 아주머닌 여기가 고향이 아니래서 적당히 일해두 말밥에 안오르겠구만요.》

순간 강철옥은 얼굴이 뜨거워졌다.여태껏 농촌에 뿌리내린것을 은근히 자부해온 자신이 부끄러웠다.

돌이켜볼수록 풍정리에 정이 든것이 아니라 좁은 울타리안의 내 집, 내 터밭에 정이 들어 살았고 뿌리는 내렸어도 제멋에 겨워 고개를 쳐드는 쓸모없는 돌피와 같은 생을 살았다는 뼈저린 후회가 강철옥의 심중을 아프게 찔렀다.

강철옥의 생활에서는 변화가 일어났다.

작업반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척박하고 외진 포전을 스스로 맡아안았다.

완전히 딴사람이 되여 일년사계절 포전에서 살다싶이 하는 강철옥의 손끝에서 기껏해야 정보당소출을 2~3t밖에 못내던 땅이 해마다 10t이라는 놀라운 수확고를 기록하는 옥토로 변하였다.

사랑에는 헌신이 따르며 바칠수록 강렬해지는것이 사랑이라고 했다.지력개선을 위해 궂은일, 마른일 가리지 않고 온갖 정성을 기울이던 나날에 강철옥은 땅과 말하고 땅과 정을 나누는 성실한 실농군으로 자라났다.

《강진주》는 바로 그때 붙은 별명이였다.낮이고 밤이고 불같이 일하는 강철옥의 모습이 꼭 예술영화 《생의 흔적》의 서진주관리위원장을 련상시킨다는것이였다.…

여기까지 생각한 백학철은 뒤떨어진 작업반을 일떠세우는데서 그만한 적임자는 없을상싶었다.

이렇게 되여 강철옥이 작업반장으로 임명되였지만 형편은 생각했던것보다 곱절 어려웠다.물질기술적토대는 둘째치고라도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떠나간 사람들때문에 로력이 부족한것이 제일 문제였다.적은 인원을 데리고 발이 닳도록 뛰여다니는 강철옥을 볼 때마다 백학철은 감동이 컸다.

몇해전 여름이였다.

강철옥의 집을 찾았던 백학철은 그의 두 딸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게 되였다.

《어머니만이라도 작업반장일을 좀 그만두었으면 좋겠어.》

《다들 부부작업반장이라고 부러워하지만 우리 가족이 언제한번 오붓이 모여앉아본적이 있니?》

백학철은 그들의 마음이 십분 리해되였다.강철옥의 남편이 작업반장을 하면서 집의 식량이건 물건이건 작업반살림에 보태군 하더니 강철옥이까지도 우리 작업반, 우리 포전 하며 그저 집에서 내가는것밖에 몰랐던것이다.백학철은 일만 일이라고 해온 자신을 타매하며 그길로 강철옥을 찾아 떠났다.

제16작업반으로 향한 동뚝길에서 백학철은 두런두런 울려오는 말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강철옥과 그의 남편이였다.

《일순이 아버지, 벌써 몇번째로 작업반을 옮기는데 힘들지 않아요?》

《난 일없소.내가 이번에 맡은 작업반까지 다수확작업반으로 만들면 우리 두 작업반이 꼭같이 애국미를 마련하고 함께 평양으로 가자구.》

백학철의 마음은 후더워올랐다.

저렇듯 소중한 꿈을 간직하고 고생도 락으로 여기는 그들앞에 이제 무슨 말을 더 할수 있단 말인가.

백학철은 조용히 그 자리를 떴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강철옥은 놀라운 힘으로 작업반을 추켜세웠다.

일할 때는 어렵고 힘든 모퉁이를 도맡아나서고 생활에서는 친형제, 친부모가 되여 농장원들의 생활을 구석구석 보살피는 그의 진정에 떠받들려 작업반은 화목하고 단합된 집단으로 되였으며 그것이 그대로 다수확의 자랑찬 성과로 이어졌다.

그 나날 강철옥은 다수확작업반장으로, 사회주의애국공로자, 군인민회의 대의원으로 되였으며 해마다 많은 애국미를 나라에 바치였다.이런 그에게 뜻밖의 슬픔이 닥쳐왔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안해가 찍은 영광의 기념사진들을 부러움속에 바라보며 뒤떨어진 작업반을 맡아안고 애를 쓰던 남편이 포전에서 영영 눈을 감았던것이다.믿음직한 동지였고 마음의 억센 기둥이였던 남편을 뜻밖에 잃고 눈물속에 포전에서 일어설념을 못하는 강철옥을 보는 백학철의 마음은 찢기는듯 아팠다.

그러나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백학철은 바로 주저앉았던 그 포전에서 작업반원들과 함께 거름짐을 져나르는 강철옥의 모습을 보게 되였다.그의 얼굴에서 더이상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온몸에서 내돋는 땀방울이 점점이 떨어져 그들부부가 그토록 사랑해온 더없이 소중한 고향땅을 적시고있었다.그 땀은 분명 눈물보다 뜨겁고 진실하고 값있는것이였다.

고향, 단지 태를 묻고 나서자란 곳이 고향이던가.

진정을 고여 애써 걸군 땅이 있고 꿈을 묻어 정성껏 주렁지운 알찬 열매가 있어 순간도 떠날수 없는 곳이 바로 고향이 아니랴.

한치의 땅, 한포기 곡식도 자기 살점처럼 그러안고 저렇듯 뜨거운 열과 정으로 안아일으킬 때 누구나 내 고향이라고, 고향을 사랑한다고 떳떳이 말할수 있는것이다.

백학철은 눈시울이 축축해지는것을 느끼며 창문을 확 열어제꼈다.

강철옥이 그러했던것처럼 그의 딸이 풍정리에 억센 뿌리를 내리게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든든해지는것을 느끼며 백학철은 바람에 실려오는 구수한 땅냄새를 한껏 들이켰다.

이 땅에 슴배여있는 무수한 애국의 땀방울들이 땅의 훈향을 더해주는것같았다.

글 및 사진 리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