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9.11. 《로동신문》 5면
올해 7월에 나라의 전반적지역에서 많은 비가 내리였다.특히 운산군에 비가 전국적으로 제일 많이 내렸는데 열흘어간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채의 살림집도 파괴되지 않은것을 비롯하여 별로 큰 피해가 없었다.
결코 우연이 아니다.해를 이어가며 치수사업에 뼈심을 들여온 군일군들의 성실하고 이악한 투쟁의 결과이다.
자기자신도 선뜻 믿기 어려울만큼 방대한 일을 해놓은데 대하여 이곳 일군들은 누구나 긍지를 느낀다.치수사업에 힘을 넣을데 대한 당정책을 일관성있게 집행한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가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있다.
《강하천정리를 비롯한 물관리사업을 강화하여야 합니다.》
나라의 200분의 1을 차지하는 시, 군들에는 참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운산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농촌살림집들을 현대적으로 건설하고 읍지구를 일신시키는것을 비롯하여 많은 과업들이 나서고있다.
하지만 군일군들은 당에서 그처럼 강조하는 강하천정리를 잘하여 인민들의 생명재산과 국토를 보호하는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사소한것도 양보하지 않았다.
구룡강제방공사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였을 때였다.
현지에 나와 실태를 료해하던 신명선군당책임비서는 일군들이 강바닥이나 파고 제방에 장석을 쌓으면 다되는것처럼 여기면서 최대강수량을 타산하여 물통과능력을 높일수 있게 공사를 하지 못하고있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여기서 그는 심중한 문제점을 찾아냈다.
물론 군에 로력과 자재가 부족한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강하천정리에서 이러저러한 편향이 나타나게 된 근본원인은 일군들에게 당에서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인민의 생명재산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자각이 부족하고 땜때기식, 요행수를 바라는 일본새에서 벗어나지 못한데 있다.
그는 인민의 생명재산과 국토보호를 놓고 이쯤하면 된다는 식으로 여기는 그릇된 사상관점에 종지부를 찍을 결심을 하였다.
그리하여 이미 정리하였던 강바닥을 물줄기를 따라 일정한 너비로 더 깊이 파고 강폭을 2배이상 확장하기 위한 공사가 진행되였다.
군일군들은 지난 시기의 일본새를 돌이켜보며 어떤 조건에서도 큰물피해를 방지할수 있게 구룡강제방공사를 과학기술적으로 내밀기 위해 노력하였다.
최대강수량을 타산하여 낮은 지대로 물이 쏠리지 않게 공사를 진행할데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대책을 따라세웠다.
높은 산이나 비탈면에서 흘러내리는 비물을 받아서 이 강으로 흘러들게 하기 위한 물길공사도 통이 크게,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특히 제방을 쌓은 후에는 보조제방을 든든히 형성하여 큰물피해를 받을수 있는 위험요소를 완전히 제거하게 하였다.
이것이 대중의 자각성과 열의를 더욱 높여주었다.곳곳에 내재하고있던 패배주의, 요령주의적일본새가 강하천정리과정에 하나, 둘 일소되여갔다.
그 과정은 군일군들로 하여금 치수사업을 책임진다는것은 곧 인민을 책임진다는것임을 깨닫고 분발하게 한 계기로 되였다.
결국 군에서는 과학적타산을 가지고 구불구불 흐르던 강줄기들을 곧추 펴는것과 함께 바닥을 파고 폭이 좁은데는 넓혀주어 그 어떤 무더기비가 내려도 물이 쭉쭉 빠질수 있게 하였다.제방들의 안전성도 보장하였다.이것이 무더기비가 자주 내린 이번 장마철에 큰 은을 냈다.
인민의 생명재산을 지키기 위한 인민보위, 인민사수전의 척후대, 돌격대, 방탄벽이 되겠다는 군일군들의 확고한 관점과 립장, 바로 여기에 군이 치수사업에서 성과를 거둘수 있은 중요한 요인이 있다.
든든하게 건설된 제방들은 일군들이 어떻게 하나 자기 지역 인민들의 생명재산을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립장에서 치수사업 하나하나를 과학적으로 해나갈 때 놀라운 성과를 창조할수 있다는 진리를 깨우쳐주었다.
군의 경험은 재난을 당하는가 이겨내는가 하는것이 하늘의 조화에 달려있는것이 아니라 재해방지사업, 치수사업을 대하는 일군들의 태도와 노력에 기인된다는것을 명백히 보여주고있다.
글 본사기자 김강철
사진 본사기자 리강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