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9.15. 《로동신문》 4면
《우리는 새세대들도 당과
몸은 비록 수도 평양과 멀리 떨어진 수천척지하막장에 있어도 사랑과 믿음의 첫자리에 우리가 있다는 자각을 안고 검덕의 전세대 로동계급은 언제나 새 기준, 새 기록창조로 사회주의건설에 적극 이바지해왔다.
당에서 내세워준 최우등생광부답게
지금으로부터 60여년전인 주체50(1961)년 4월 5일 검덕광산(당시)을 찾아주신
최우등생광부, 그 값높은 칭호를 안고 제1차 7개년계획을 2년이나 앞당겨 끝낸 검덕의 로동계급은 또다시 당 제5차대회전으로 1970년도 인민경제계획을 끝내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섰다.
4.5갱의 천리마고학명굴진소대원들은 한사람이 한대가 아니라 두대의 착암기를 다루었고 그것도 모자라 자기 교대를 마치고도 막장을 뜨지 않았다.이런 불굴의 투쟁으로 고품위광맥을 찾아낸 그들은 이룩한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고속도굴진운동을 힘있게 벌려 두달 걸려야 한다던 올리굴을 20일 남짓한 기간에 뚫는 성과를 이룩하였다.
새해벽두부터 맡겨진 생산계획을 훨씬 넘쳐 수행하여 3월 28일에 년간계획을 끝내고 8월 14일까지 2년분계획을 수행한 어느한 천리마굴진소대원들은 년간계획을 3배로 넘쳐 수행할 결의를 다지고 또다시 힘찬 투쟁을 벌려나갔다.
우리
3대혁명의 기치를 제일먼저 추켜들고
검덕의 연혁사에서 주체64(1975)년 7월 1일은 참으로 의의깊은 날이였다.이날 수수한 인차를 타시고 몸소 수천척지하막장을 찾아주신
혁명임무에 대한 높은 자각을 안고 남갱의 《피바다》근위대원들이 년간계획을 4배이상 해제낄 목표를 내세우고 힘찬 투쟁을 벌리고있을 때 2선광직장 로동자들은 한t의 광석이라도 더 많이 처리할 열의밑에 순간도 마광기를 세우지 않았다.갱작업의 종합적기계화를 실현할데 대한 당의 뜻을 높이 받들고 어느 갱이라 할것없이 채굴대차와 적재운반차를 받아들여 생산능률을 종전보다 7배로 끌어올렸다.그 과정에 4.5갱 로동계급은 제일먼저 3대혁명기수의 자랑찬 영예를 지니게 되였으며 그에 뒤이어 검덕의 여러 단위에서도 3대혁명붉은기를 수여받는 성과를 거두게 되였다.
그 나날에 발휘된 투쟁기풍은 오늘도 검덕의 새세대들에게
90년대속도창조운동의 불길드높이
온 검덕이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리명화채광소대원들은 작업조건이 불리한 여러 개소의 채굴장을 스스로 맡아 련속천공, 련속발파를 들이댐으로써 1회당 2 000t이상의 광석을 떨구는 기적을 창조하여 뜻깊은 4월의 명절을 맞으며 년간계획을 완수하는 성과를 이룩하였다.그들의 모범을 본받아 모든 소대, 갱들에서 충성의 1만t소대, 충성의 5만t갱창조운동이 힘있게 벌어졌다.
비단 1990년대만이 아니다.
조국이 가장 어려울 때, 혁명이 새로운 승리를 향한 진군의 보폭을 내짚을 때 남먼저 불러주는 우리 당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언제나 검덕의 로동계급은 끊임없이 새 기준, 새 기록을 창조해왔다.
그렇다.충성과 보답의 한마음을 안고 광물증산으로 당을 받들어온 영웅적로동계급, 바로 이것이 검덕의 자랑스러운 이름이고 변함없는 본태이다.
검덕의 로동계급은 혁명의 년대마다 광물증산으로 당과 조국을 보위한 전세대들의 충성과 애국의 전통을 꿋꿋이 이어 혁명의 새 승리를 향한 오늘의 보람찬 진군길에서도 영예로운 승리자가 될 불같은 일념을 안고 위훈창조의 한길로 줄달음치고있다.
본사기자 정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