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1일 토요일  
로동신문
전세대 당원들은 이렇게 살며 투쟁하였다
헌신으로 빛나는 선봉투사의

2024.9.19. 《로동신문》 3면


당원의 값높은 영예는 어디에 있는것인가.

그에 대한 대답을 천내리세멘트공장 보수직장 연공이였던 당원 김태연동무의 투쟁을 통해서도 찾을수 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모든 당원들은 언제나 당원이라는 높은 자각을 안고 혁명과업수행에서 군중의 모범이 되고 군중을 이끌어나가는 선봉투사가 되여야 합니다.》

1970년대말 《로동신문》에 실린 전체 당원들에게 보내는 당중앙위원회 편지를 받아안던 날 김태연동무는 밤이 지새도록 편지의 구절구절을 읽으며 당원으로 살아온 긍지높고 보람찼던 한생을 돌이켜보았다.

《당중앙은 우리들을 충성의 돌격전에로 부르고있네.목표를 더 높이 세우자구.짐을 져도 더 무거운 짐을 지고 달려도 남들을 이끌고 앞장에서 달리자구.》

다음날 아침 같이 일하는 한 연공에게 당보를 주며 그가 한 이 말은 한생토록 간직해온 마음속토로이기도 하였다.

소성로를 건설할 때였다.건설이 마지막단계에 이르러 난관에 부닥쳤다.동체를 조립하자면 20t이상을 들수 있는 기중기가 있어야 하였는데 미처 도착하지 못했던것이다.

육중한 소성로동체주위를 말없이 돌던 김태연동무는 기중기가 도착하기를 기다릴수밖에 없다는 사람들의 말에 번쩍 머리를 쳐들었다.

《우리에게 언제부터 당의 결정을 흥정하는 버릇이 생겼소? 당회의에서 결정을 했으면 그만이지 무슨 기중기타발이냐 말이요.》

다음날 아침 김태연동무가 팔을 개조한 《천리마》호굴착기를 앞세우고 소성로동체조립현장에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입을 딱 벌리였다.

김태연동무는 연공들과 함께 침착하게 소성로동체에 쇠바줄을 걸고 호각을 불고 기발을 흔들며 조립작업을 지휘하였다.

그렇게 일떠세운 소성로여서 김태연동무는 소성로를 자기 몸의 한 부분처럼 여기였으며 아침마다 남먼저 공장에 출근하여 소성로들을 돌아보는것은 그의 굳어진 습관으로 되였다.

어느날 소성로의 랭각통안내판을 빨리 보수해야 할 과업이 제기되였을 때였다.

현장에서는 이 문제를 가지고 당세포총회가 열리였다.모임에서는 경험많은 김태연동무의 제의를 받아들여 그를 책임자로 하고 청년들을 망라시켜 로보수돌격대를 조직하였다.

랭각통안내판을 보수하자면 뜨거운 열과 김을 내뿜는 랭각통에 들어가야 하였다.온도가 내려갈 때까지 기다릴수는 없었다.랭각통안을 묵묵히 지켜보던 김태연동무가 솜옷을 물에 적시자 그의 의도를 알아차린 돌격대원들이 랭각통입구앞을 막아섰다.

그들을 정어린 눈길로 바라보던 김태연동무는 나지막한 소리로 말하였다.

《어렵고 힘든 일에는 당원들이 앞장서야 하네.》

어깨에 쇠바줄을 메고 나는듯이 랭각통안으로 들어간 김태연동무는 긴장한 작업끝에 쇠바줄을 안내판에 걸고 나왔다.이어 권양기로 쇠바줄을 당겨 안내판을 제자리로 끌기 시작하였다.그런데 이때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쇠바줄이 끊어지면서 두개의 소성로에서 나오는 크링카를 운반하는 콘베아를 휘감아버렸던것이다.그 쇠바줄을 빨리 벗기지 않는다면 두개의 소성로가 가동을 멈출수 있었다.

지체없이 콘베아에 뛰여오르려는 사람이 있었다.김태연동무였다.그때 누군가가 뒤에서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안됩니다! 위험합니다!》

《당결정이 드티는 판에 위험이 다 뭐요!》

김태연동무는 젊은이를 와락 떠밀치고 나는듯이 콘베아에 뛰여오르며 웨쳤다.

《창선아, 저 굴뚝을!…》

그것이 김태연동무가 남기고 간 마지막말이였다.

김태연동무의 희생적인 헌신으로 소성로굴뚝에서는 흰 연기가 피여오르고있었으나 그 연기를 바라보는 작업반원들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비록 자기 한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어도 당회의결정은 무조건 관철해야 한다는것을 실천으로 보여준 김태연동무의 값높은 생은 오늘도 당원들에게 참된 삶의 진리를 웅변으로 깨우쳐주고있다.

본사기자 주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