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9월 20일 금요일  
로동신문
애국자가 많은 나라
백두대지에 거세찬 애국의 숨결 약동한다
당정책관철에서 큰걸음을 내짚고있는 량강도의 일군들과 근로자들을 만나보고

2024.9.19. 《로동신문》 4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오늘 우리의 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는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묵묵히 자기가 맡은 초소에서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혁명의 성산 백두산이 거연히 솟아있고 우리 혁명의 만년재보들로 가득차있는 유서깊은 고장 량강도,

온 도가 그대로 하나의 혁명전통교양의 대전당이여서 그런지 기행길에서 만나보는 사람들의 애국심 역시 남다르다는 생각에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리상과 포부도 백두산처럼 높이 세우고 충성과 애국의 마음도 백두산천지처럼 청신하고 순결한 량강도사람들, 나라의 북변 한끝에서도 당정책관철을 위해 소문없이 큰일을 하고있는 그들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는 이 땅에 뜨겁게 흘러넘치는 위대한 애국충정의 세계를 가슴벅차게 안아볼수 있었다.

 

사시장철 혁명의 성지를 지켜가는 사람들

 

과연 어떤 사람들이 사시장철 거의나 녹지 않는 흰눈을 머리에 떠이고 산짐승도 단숨에 휘감아내칠듯 사납게 불어치는 칼바람속에서도 끄떡없이 백두산을 지켜 한생을 보내고있는가.

이런 생각을 안고 우리는 구름덮인 산길을 따라 백두산의 정점으로 올랐다.가을철이라지만 맵짠 바람이 우리의 온몸을 휘감았다.

마침내 장군봉에 이르니 예리하게 내리깎이운 절벽들이 발밑으로 아슬하게 다가왔다.그 절벽들을 타고넘으며 천지호반에서 솟구쳐오르는 강풍이 온몸을 아득한 하늘가에로 떠밀어올리려는듯 쉬임없이 불어치는데 우리의 귀전에 문득 처녀들의 랑랑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백두산혁명전적지관리소의 강사들이였다.고향의 따스한 보금자리와 꽃향기 넘치는 공원길도 마다하고 칼바람세찬 백두산에서 처녀시절을 보내는 그들이야말로 강의하고 아름답고 랑만적인 처녀들이였다.

우리와 만난 한 강사동무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강사가 될것을 결심했을 때 처녀시절에 이곳에서 강사로 일한 그의 어머니는 의미심장한 어조로 이렇게 당부했다고 한다.

자신을 단순히 강사가 아니라 백두산을 지키는 초병이라고 생각해야 그 어떤 난관도 꿋꿋이 이겨낼수 있다고.

백두산정에 있는 강사합숙에서의 생활은 헐치 않다.때없이 대지를 부실듯 요란한 우뢰소리가 터지고 합숙을 통채로 날려보내려는듯 세찬 폭풍이 창문을 두드려 온밤을 뜬눈으로 새운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백두의 설한풍속에서도 한번 다진 혁명의 맹세를 저버리지 않았던 항일혁명선렬들을 생각하며 백두산정의 혁명초소를 믿음직하게 지켜왔다.

백두산강사대기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백두산기상관측소가 있었다.고산지대의 바람에 풍속계가 세차게 돌아가는 관측장에서 우리는 관측원들을 만났다.

정든 집을 떠나 해발 수천m가 넘는 산정에서 강추위와 사방을 가려볼수 없는 안개, 폭풍이 지속되는 엄혹한 자연환경속에서도 자기들이 맡은 임무에 충실하고있는 관측원들의 모습은 볼수록 미더웠다.

알고보니 관측소의 소장 안영남동무와 관측원 안현명동무는 부자간이였다.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가며 혁명의 성산을 믿음직하게 지켜간다는것은 또 얼마나 장한 일인가.

혁명의 성지에 충성과 애국의 뚜렷한 자욱을 새겨가는 사람들을 찾아 길을 이어가던 우리는 헌시비 《만대에 빛나라 백두령장의 눈보라행군길이여》가 세워져있는 백두산갈림길어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정용철, 리경희부부를 만나게 되였다.처음 가정을 이루었을 때 정용철동무는 인가도 한채 없는 너무나 외진 곳으로 안해를 데려올 용기가 선뜻 나지 않았다.하지만 리경희동무는 혁명전적지를 지켜 한생을 바쳐가려는 그의 진정을 그 무엇보다도 귀중히 여기고 이곳에 삶의 보금자리를 폈다.

답사자들이 떠나면 새소리, 바람소리만 들리는 너무나 외진 일터, 하지만 그들은 빨찌산들이 부르던 혁명가요를 부르며 그 모든 정적과 고독을 물리쳤고 폭설과 폭우가 쏟아져내릴 때면 젖은 옷과 신발을 한번 말리워볼새도 없이 답사길에 쌓인 눈을 쳐내고 물도랑을 파나갔다.

이런 가정이 바로 투사들이 지녔던 혁명신념을 가풍으로 간직한 애국자가정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에 잠겨 걸음을 재촉하던 우리가 어느덧 삼지연못가에 이르렀을 때였다.

수십년간 혁명사적일군으로 일해오고있는 김정일훈장수훈자이며 공훈사적강사인 삼지연혁명사적관 관장 강정옥동무는 우리와 함께 삼지연못가에 정중히 모셔진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에 인사를 드린 후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강사들은 뜻깊은 이 못가에 설 때마다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는 당사상전선의 제일기수, 전초병으로서의 무거운 사명과 임무를 다시금 깊이 자각하군 합니다.》

우리 혁명의 만년재보를 억척같이 지켜가고있는 그들의 모습은 진정 한몸이 그대로 혁명의 사령부를 보위하는 방탄벽이 되였던 빨찌산녀대원들의 모습그대로였다.

보천보혁명전적지에서 우리는 사람들의 기억속에 백두의 봇나무의 모습으로 자리잡고있는 보천보혁명박물관 관장 리영옥동무를 만났다.

그는 우리에게 과장 원향미동무와 강사들이 항일유격대식으로 배낭을 메고 이동강의를 나가던 나날에 있었던 가지가지의 일들을 방불히 들려주며 자기들은 혁명의 만년재보를 굳건히 지키고 빛내여가는것을 더없는 행복으로 여긴다고 긍지높이 이야기하였다.

이것은 비단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의 강사들과 종업원들의 심정만이 아니였다.

매일 새벽마다 삼지연시에 높이 모신 위대한 장군님의 동상을 찾아 정성껏 주변관리사업을 진행하고있는 인민들의 가슴속에도 혁명의 성지와 더불어 충성과 애국의 자욱을 뚜렷이 새겨갈 일념이 소중히 자리잡고있었다.

언제나 마음속에 백두산을 간직하고 사는 이런 훌륭한 애국자들이 많기에 혁명의 성지가 더욱 빛나는것이라는 생각을 안고 우리는 다음목적지로 기행길을 이어갔다.

 

우리 힘, 우리 지혜가 제일

 

량강도에 가면 누구에게서나 들을수 있는 말이 있다.

량강도세멘트, 량강도강철, 량강도비료…

순천세멘트, 상원세멘트라는 말에 익숙되였던 사람들, 남흥비료, 흥남비료로 농사를 짓는것으로 알고있던 량강도사람들에게 당당히 자부할수 있는 자기의것이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얼마나 기쁜 일인가.

하여 우리는 혜산세멘트공장을 찾았다.우리와 함께 생산공정들을 돌아보던 공장지배인은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한다면 그 어떤 과학기술의 요새도 능히 점령할수 있다는 신심을 가지고 대중적기술혁신운동을 힘있게 벌린 결과 이전보다 생산도 늘어나고 제품의 질도 높아졌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생산지령원 조성철동무가 기대앞에서 로동자들과 열띤 토론을 진행하고있는 모습이 우리의 시야에 비껴들었다.그는 전동기에 열수감장치를 설치하여 설비들의 만가동을 보장하는데 적극 기여하였다고 한다.

공무작업반에 가보니 거기서는 못쓰게 된 베아링을 재생리용할수 있는 방법을 창안도입한 작업반장 리봉호동무가 맡겨진 설비제작기일을 훨씬 앞당길 새로운 구상을 무르익히고있었다.

공장의 누구를 만나보아도 한결같이 들을수 있는 이야기는 생산정상화를 위해 자기도 무엇인가 이바지해야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무심히 스쳐보낼 일이 하나도 없더라는것이였다.

지금 공장에서 생산된 세멘트로 혜산시에서 도로포장공사가 적극 추진되고있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서둘러 그곳으로 향하였다.

공사장에서는 도송배전부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이 자체로 마련한 기계설비를 리용하여 번듯하게 도로를 닦아나가고있었다.어떻게 되여 전문건설단위도 아닌 도송배전부에서 도로포장공사를 맡아하게 되였는가고 묻는 우리에게 지배인 허영환동무는 의미깊은 어조로 말하였다.

《우리야 이 땅의 주인들이 아닙니까.》

이 땅의 주인인 우리에게 어찌 네일내일이 따로 있을수 있는가.도의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에 이바지할수 있는 일은 다 우리의 일감이다.

이렇듯 투철한 관점을 지니고있기에 도송배전부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누구나 주저하던 혜산시의 도로포장공사도 선뜻 맡아나섰다.그리고 주인다운 립장에서 방도를 모색하며 수십대의 각종 설비들과 륜전기재들을 마련함으로써 도로포장공사를 본때있게 내밀었다.

이런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은 혜산강철공장 로동계급의 모습에서도 찾아볼수 있었다.

들끓는 작업현장의 광경에 감탄을 금치 못해하는 우리에게 공장기사장은 내화물점결제를 비롯하여 부족되는 원료들을 자체의 힘으로 생산하기 위한 투쟁이 벌어지던 때의 이야기를 감회깊이 들려주었다.

수십일간의 자료연구에 이어 진행된 모의시험에서 실패가 거듭되자 일부 사람들속에서는 이제라도 다른 길을 택하는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이 제기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10여년전 공장에 찾아오시였던 위대한 장군님께 작업모습을 보여드린 초급일군들이 연구조성원들을 찾아왔다.그들은 영광의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 높은 생산성과로 기쁨을 드린데 대하여 실감있게 이야기해주면서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하여 강철직장 직장장 리광호동무와 작업반장 김종석동무를 비롯한 연구조성원들은 도에 흔한 원료를 리용하는 점결제생산에 끝끝내 성공하게 되였으며 그것은 곧 놀라운 생산장성으로 이어졌다.

도에서 농업생산에 크게 이바지하게 될 복합비료를 생산할수 있는 연구성과를 이룩하고 중간시험생산공정에서만도 벌써 수많은 량을 생산하였다는 이야기 역시 우리의 마음을 격동시켰다.

도농업과학연구소 소장 리석남동무는 우리에게 복합비료를 생산하기 위한 사업에서 핵심적역할을 한 연구소 로동자인 조영호동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실 조영호동무의 학력은 중학교를 졸업한것이 전부였다.하지만 나라에 도움을 주는 쓸모있는 산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부단히 학습한 결과 오늘은 전문가들도 찬사를 아끼지 않는 지식형근로자로, 모두가 떠받드는 연구소의 보배로 되였던것이다.

량강도는 그 어느 지역들보다도 당과 국가의 혜택을 더 많이 받고있었다.하지만 오늘은 국가에 손만 내미는 량강도가 아니라 자체로 살아나가는 량강도, 나라에 도움이 되는 량강도가 되게 하기 위해 한사람같이 분발해나섰다.

그것을 우리는 도자체의 힘으로 일떠세우는 수력발전소건설장에서도 확연히 느낄수 있었다.건설장에는 전광철, 최경옥동무와 같은 부부돌격대원들이 많았다.그들은 돌격대로 탄원해올 때 떨어지기 힘들어하는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고 한다.이제 아버지, 어머니가 일떠세운 발전소에서 전기가 꽝꽝 생산되면 너희들에게 더 좋은것이 더 많이 차례진다고, 그때에 가서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웃음꽃을 더 활짝 피우자고.

량강도사람들은 약속을 해도 이런 약속을 한다.자기의 땀과 열정으로 행복의 래일을 안아오겠다는 굳센 신념을 안고 자기의것을 부단히 창조해간다.

자기의 힘, 자기의 지혜, 자기의 자원으로 필요한 모든것을 창조하는 자력갱생의 길에 진정한 애국이 있다는 신념을 굳게 간직한 이들에게 못해낼 일이 과연 어디에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 기행길을 이어가는 우리의 가슴도 마냥 뜨겁게 달아올랐다.

 

나라의 한끝에서도 조국을 먼저 생각하며

 

우리의 기행길은 하늘아래 첫 일터로 불리우는 연암갱목생산사업소로 이어졌다.

우리와 함께 동행한 사업소의 일군은 류달리 눈길을 끄는 림철기관차 《강성》1호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저 기관차의 주인인 우리 사업소의 소문난 혁신자 문영철동무는 지난 4월중순까지 수천㎥의 통나무를 수송하여 년간계획수행의 결승선에 제일먼저 들어섰다고.

혁신의 앞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비결이 무엇인가고 묻는 우리에게 싱글벙글 웃으며 하는 문영철동무의 말이 참으로 인상적이였다.

자기들이 한대의 통나무라도 더 많이, 더 빨리 날라야 석탄이 그만큼 꽝꽝 쏟아져나오지 않겠는가고, 그것을 생각하며 분발할따름이라는 그 목소리는 진정 얼마나 진실하고 소박한것인가.

나라의 북변 한끝에서도 뜨겁게 흘러넘치는 애국의 숨결을 후덥게 체감하며 우리는 감자산지 포태지구에 자리잡고있는 삼지연감자가루생산공장을 찾았다.

정문으로 들어서니 여러 차례나 이 공장을 현지지도하시며 생산정상화의 방도를 하나하나 가르쳐주시고 감자산을 이루고있는 광경이 너무도 기쁘시여 감자무지에 허물없이 앉아 사랑의 기념사진을 찍으시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자애로운 영상이 눈앞에 어려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우리는 감자주식물생산직장 로동자 최광민동무를 만났다.불편한 몸이였지만 그는 지난 시기 자기의 기능수준을 높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여 한다하는 혁신자로 자라났다.그처럼 불편한 몸으로도 맡겨진 임무를 책임적으로 수행하는 기능공으로 성장한 그의 모습을 보면서 공장의 종업원들은 오늘의 하루하루를 량심의 하루, 실천의 하루로 빛내여갈 애국의 마음을 가다듬군 하였다.

공장종업원들이 더 맛좋고 질좋은 감자가공품들을 꽝꽝 생산해낼것이라는 확신을 안고 우리는 다음목적지로 취재길을 이어갔다.

령성령을 내려 압록강반을 따라 달리는 차안에서 지방이 변하는 새시대와 더불어 훌륭하게 일떠서고있는 농촌문화주택들을 바라보며 흥그러운 마음을 금치 못하던 우리가 김형직군에 도착했을 때에는 사위가 어둑어둑해지고있었다.

읍거리에서 밤공기를 헤가르며 들려오는 힘찬 노래소리와 함성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그곳으로 향하니 대낮처럼 환하게 비쳐지는 조명아래서 군인건설자들이 지방공업공장건설을 본때있게 내밀고있었다.우리 당의 《지방발전 20×10 정책》의 첫 산아인 현대적인 지방공업공장들이 북변의 외진 이 산골군에도 일떠서는것이다.

《군안의 일군들과 근로자들은 퇴근시간이 되면 약속이나 한듯이 여기로 모여오군 한답니다.》

동행한 군일군은 야간직맹돌격대원들은 물론이고 가두녀성들까지 밤마다 여기에 찾아와 군인건설자들의 일손도 돕고 샘물도 권하고있다고 이야기하였다.

우리가 다음으로 찾은 곳은 연포농장이였다.농장에서 우리는 다수확자로 소문난 제3작업반 농장원 진정희동무를 만났다.

지금으로부터 6년전 제4차 전국농업부문열성자회의에 참가하여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한자리에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을 지닌 진정희동무의 생각은 깊었다고 한다.우리 작업반에는 아직 땅이 척박하여 계획을 수행하지 못하고있는 농장원들이 있지 않는가.자기가 맡은 포전에서 다수확을 이룩하는것으로 만족하면서 나라의 쌀독이 곯는것을 외면한다면 어찌 이 나라의 농업근로자라고 떳떳이 말할수 있으랴.

그 불같은 자각을 안고 작업반적으로 제일 나쁜 땅을 담당한 그는 모두 옥토로 걸구었으며 다수확의 자랑찬 성과를 이룩하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표창장을 수여받는 최상의 영광을 지니였다.

우리가 김정숙군에 도착했을 때 특별히 눈길을 끄는 낯익은 한 녀성이 있었다.분명 수십년전 혁명의 성지에 뿌리내릴 결심을 하고 형제들과 함께 고향을 떠나 백두대지로 탄원해왔던 김경월동무였다.알고보니 그는 기름밤나무림조성을 맡은 사업소의 지배인으로 사업하면서 군을 위해 참으로 많은 일을 해놓았었다.

조국과 인민의 부름앞에 말로써가 아니라 자기 한몸을 내대고 실천으로 대답하는 그렇듯 참된 애국자들이 어찌 그들뿐이랴.

자체의 힘으로 조성한 여러 정보의 양묘장에서 나무모를 키워 산들에 푸른 숲을 펼쳐놓은 부부사회주의애국공로자이며 시인민회의 대의원들인 혜산시산림경영소의 김홍일, 리성숙동무, 당의 농업정책을 받드는 길에서 당일군의 안해가 응당 앞장에 서야 한다고 하면서 자진하여 청년분조를 맡아 본보기집단으로 만든 삼지연시 중흥농장 분조장 정영희동무, 수도 평양을 떠나 삼지연시에 자원진출하여 후대교육사업에 지혜와 열정을 다 바쳐가고있는 정유경동무…

참으로 량강도에 대한 기행길에서 우리가 만난 애국자들은 한결같이 나라의 한끝에 살아도 조국을 먼저 생각하는 진실한 마음을 지닌 훌륭한 공민들이였다.

* *

사실 우리가 편답한 량강도에 대한 기행길은 결코 생소한 길이 아니였다.이미전에 많이 걸어본 취재길이였고 낯익은 사람들이 살고있는 고장이였건만 왜서인지 가는 곳마다, 들리는 곳마다 새롭게 느껴졌다.위대한 애국의 구호, 단결의 구호를 가슴깊이 새겨안고 애국운동의 불길, 새시대 천리마정신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리고있는 량강도인민들의 몰라보게 달라진 정신상태와 일본새를 감동깊이 체감한 기행길이여서 아마도 그처럼 새롭게 느껴지고 흥분 또한 류달랐을것이다.

진정 백두산기슭에 약동하는 거세찬 애국충정의 숨결, 그것은 이 땅의 모든것을 온넋으로 사랑하며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해 마음과 뜻, 힘과 지혜를 합쳐 사회주의전면적발전의 새시대를 하루빨리 안아오려는 량강도인민들의 굳센 신념과 의지의 분출이였다.

본사기자 조경철

특파기자 전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