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9.21. 《로동신문》 2면
《조선로동당의 진모습은 당이 꾸려놓은 조국의 모습에 있고 언제나 행복에 겨워있는 인민의 모습에 있습니다.》
우리를 태운 취재차는 공업도시 단천을 떠나 굽이굽이 흘러내리는 북천을 거슬러 수백리 벼랑길을 달리였다.
운행길이 길어질수록 골은 점점 깊어지고 구배도 심해지기 시작하였다.
차안에서 우리는 유구한 세월 전해져오는 검덕지구의 유래를 더듬었다.
험준한 마천령산줄기의 한 구간인 여기 검덕에서 광맥이 발견된지는 2천년도 더 된다고 한다.
그때로부터 장장 수십세기 검덕의 골짜기며 산허리, 산등 할것없이 이 지대는 탐욕과 착취의 희생물로 되였다.지초덕이며 은룡덕에는 검은 바위들만 드러났다.
하여 이 고장의 이름은 언제부터인가 《검은 덕》으로 불리우기 시작했다는 설도 생겨났고 그것이 오랜 세월이 흐르는 과정에 《검덕》이라는 지명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문득 《바로 저 다리입니다.》라는 동행한 일군의 말에 우리는 깊은 상념에서 깨여났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지금으로부터 4년전 10월 뜻밖에 태풍피해를 입은 검덕지구 인민들의 불편을 한시바삐 가셔주시려 천수백리 멀고 험한 길을 헤치시며 검덕을 찾아오시던
그때에는 림시로 나무방틀에 의지하여 서있던 보기에도 가슴 섬찍해지던 그 교각이 지금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가싶게 굳건히 서있었고 사품쳐흐르던 그날의 북천도 오늘은 잔잔한 푸른 물결이 되여 삼가 소리죽여 흐르는것만 같았다.
천만년세월이 흘러도 잊을수 없는 그토록 가슴뜨거운 사연이 새겨진 이 다리주변에는 그 어떤 특별한 표식물도 알림판도 없었다.
하지만 검덕사람들은 자자손손 이 다리에 깃든 위민헌신의 그 가슴치는 사연을 전해가리라.
친근한
우리의 눈앞에 지금까지의 검덕에 대한 표상을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희한한 산악협곡도시가 웅건장중하고 황홀하고 매혹적인 자기의 새 모습을 드러냈다.
금강산 만물상이 여기에 옮겨왔는가 평양의 경루동이 이사왔는가, 건축미학적으로 나무랄데 없고 협곡의 지형지세에 그렇게도 잘 어울리는 이런 특색있고 현대적인 새 도시가 과연 어떻게 태여난것인가.
이곳이 태풍이 혹심하게 휩쓸고지나가 페허나 다름없이 되였던 지대라는것을 지금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아마 상상도 못할것이다.
우리는 주체109(2020)년 10월 13일
뜻밖의 자연재해로 골짜기의 마을들이 허물어지고 철다리마저 끊어져나갔던 광산지구를 한눈에 굽어보시는
재난을 당한 인민들에게 아담한 새 보금자리를 마련해준것을 다행으로 여기던 그때
그날
이렇게 되여 여기 금골과 돈산지구는 물론 저기 대흥과 룡양에 이르는 긴 협곡에 2만 5 000세대의 살림집을 그것도 현대적인 살림집들을 단 몇해사이에 일떠세울 웅대한 설계도가 펼쳐지게 되였으니 실로 가장 어려운 시기에 최상의 목표를 내세운 력사에 보기 드문 대용단이였다.
잊을수 없는 그날 바로 이 자리에서
그 말씀을 되새기며 주변을 둘러보니 은룡덕과 지초덕, 로은산과 같은 높고낮은 덕과 산발들은 예나 다름없는데 그 덕과 덕사이의 좁은 협곡에 꽉 들어차다싶이 한 리상의 별천지는 볼수록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참으로 천지개벽이라는 말을 내놓고는 더 적중한 표현을 찾을수 없었다.
우리는 마천령의 높고낮은 산발들과 어깨를 겨루는 해발고 천수백m의 은룡덕에 올랐다.
이곳에도 현대적인 새 살림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었다.
잊을수 없는 그날
세대주인 안성진동무는 제3선광장에서 작업반장으로 일하고있었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태여난 순간부터 행복의 보금자리에서 살게 된 복동이의 앞날은 의연 행복으로 이어질것이라는 생각으로 우리의 마음도 뜨거워졌다.
어찌 이런 훌륭한 집에서 살아보리라고 상상이나 하였던가.
《이전에는 집이 좁아 손님이 오면 우리 안주인들도 옹색해지군 했답니다.》, 《갱장도 로동자도 영양제식당취사원도 기술자도 모두 희한한 새집에서 사니 이거야말로 지상락원이고 공산주의가 아니겠습니까.정말이지 검덕이 변했소라는 노래구절이 입가에서 절로 흘러나옵니다.》…
행복에 겨워있는 이 사람들이
지난날 오소리굴로 짐승처럼 네발로 기여다니며 광맥을 찾고 손더듬과 발더듬으로 광석을 따내던 굴쟁이들이 살던 고장에, 눈물과 한탄이 서린 원한의 검은 언덕으로 화했던 여기 은룡덕에
시종 걷잡을수 없는 흥분속에 여러 세대를 돌아본 우리는 검덕의 자랑인 제3선광장을 돌아보았다.
놀라운것은 부선장 저 끝까지 눈뿌리 아득히 펼쳐졌던 부선기의 바다가 대폭 줄어들어 많은 면적이 남아돌아가는것이였다.
오랜 기술일군의 말에 의하면 당의 정비보강전략을 받들어 종전의 낡고 불합리한 부선공정을 완전히 들어내고 우리 식의 공기기계식부선기를 설치한 때로부터 로력도 전력도 생산면적도 각각 절반이상 절약하면서도 질좋은 정광을 꽝꽝 생산한다는것이였다.날이 갈수록 흥하는 광산의 발전상이 이 선광장에 함축되여있었다.
검덕의 자랑은 이뿐이 아니였다.
8월에 벌써 년간 광물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한 소대들이 속속 배출되고 광산적으로 년간 광물생산계획을 앞당겨 수행할 밝은 전망이 열리였다는 소식이며 광석을 나르던 왕복 40리구간에 전차대신 장거리벨트콘베아가 새로 설치되여 천길지하막장과 상부지구의 광석들을 죄다 콘베아에 태워 곧장 선광장으로 끌어올릴수 있게 되였다는 소식, 정녕 듣느니 반가운 소식들이였다.
건설에서뿐 아니라 생산에서도 기적적성과가 창조되기를 바라시는
우리는 련합기업소 전망설계실을 찾았다.
실장인 박사 김철동무는 검덕지구에 매장된 수십가지의 유용광물과 그 락관적인 채굴전망에 대해 설명해주고나서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우리 검덕이야말로 오랜 세월 가장 어둡던 곳으로부터 로동당시대에 가장 밝은 곳으로 극적인 전환을 이룩한 대표적인 곳입니다.》
옳은 말이였다.
지난날 그처럼 어둡고 비참하던 검덕이 금골, 백금산과 같은 이름과 더불어 밝고 살기 좋은 고장으로 되였고 어제날 지지리도 못살던 광부의 후손들이 오늘날 호부자도 부럽지 않은 보금자리에서 사는 존엄높고 행복한 로동계급으로 그 처지가 하늘땅차이로 변하지 않았는가.
둥근달이 하늘중천에 떠가며 로은산이며 금산, 돈산지구, 저 멀리 대흥과 룡양의 곳곳에 일떠선 행복의 별천지들을 굽어보는 깊은 밤 우리는 검덕광업련합기업소 책임일군과 함께 광부들의 웃음소리, 아이들의 노래소리가 정답게 들려오는 마을길을 거닐었다.
그는 4년전의 잊지 못할 그날을 뜨겁게 추억하면서 광산마을이 문명한 광산도시로 전변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게 될 력사의 증견자로서 로동당시대의 기적을 세세년년 전해가야 한다고, 인민을 위해서라면 하늘도 길들이고 땅도 개변시켜야 한다는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의지라고 하시던
인민을 위해서라면 하늘도 길들여야 한다!
진정 여기 검덕은 우리 당의 이 확고한 의지가 얼마나
하늘을 길들이였을뿐 아니라 하늘마저 감복시킬 이 눈부신 현실앞에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절세위인의 거룩한 발자취를 따라 걸을수록 우리는 마치 시인이나 된듯한 흥분에 빠져들었고 이 시대의
그렇다.
사회주의건설의 전 전선에서의 투쟁을 진두지휘하시며 이 땅우에 공산주의 새 아침을 불러오시는 불세출의 위인이신 우리의
이 세상에 자기의 운명과 미래를 통채로 위대하고 친근한
검덕을 떠나 절세위인의 위민헌신의 로정을 따라 취재길을 이어가는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이런 환희로운 웨침이 터져나왔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주창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