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9.21. 《로동신문》 3면
40여년간 한초소에서 그것도 수천척지하막장에서 깨끗한 량심을 바쳐 묵묵히 일해오는 한 당원이 있다.그가 바로 신립탄광 1갱 채탄1중대 중대장으로 일하고있는 최명석동무이다.
최명석동무와 함께 일해온 사람들이 그에 대하여 말할 때 먼저 떠올리는것은 당에 대한 충성심을 고이 간직하고 늘 한본새로 살아온 당원의 보석같은 마음이다.
《모든 당원들은 언제나 당원이라는 높은 자각을 안고 혁명과업수행에서 군중의 모범이 되고 군중을 이끌어나가는 선봉투사가 되여야 합니다.》
10여년전 어느날 중대원들과 함께 작업하던 최명석동무는 오랜 채탄공의 예민한 감각으로 이상한 기미를 느끼였다.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작업장을 둘러보던 그의 눈에 불현듯 안겨오는것이 있었다.천정의 한쪽귀퉁이에 짐이 쏠리는것을 발견하였던것이다.미처 소리칠 사이도 없이 그곳으로 달려간 그는 작업에 열중하고있던 2명의 중대원들을 무작정 밀어제꼈다.순간에 벌어진 일이였다.중대원들은 무사하였으나 최명석동무는 일어나지 못하였다.중대원들이 쓰러진 그를 붙안고 몸부림쳤다.최명석동무는 이 일로 하여 로동능력상실이라는 가슴아픈 진단을 받게 되였다.
그러나 그를 괴롭힌것은 한몸의 아픔보다도 더는 막장에 설수 없다는 생각, 사회보장자가 되여 나라에 부담을 주게 되였다는 안타까움이였다.일군들과 탄부들이 성의를 다해가며 위로하였지만 그는 결코 비관에만 빠져있지 않았다.그후 그는 료양치료를 받으며 편안히 지낼것을 바라는 가족들의 권고를 뿌리치고 완강하고도 인내성있게 치료에 달라붙어 1년 6개월만에는 끝내 지팽이를 짚고 일어섰다.
어느날 당조직에 찾아와 다시 중대에 세워줄것을 제기하였을 때 일군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최명석동무를 부둥켜안았다.
그때 일을 돌이켜보며 중대원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에게는 정말 불가능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어느해인가 장마피해로 석탄운반선로의 한 구간이 막혀 작업장을 옮겨야 할 일이 생겼을 때였다.많은 사람들이 몇달동안은 채탄이 불가능하다고 도리머리를 저었지만 최명석동무는 쉽게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그날 복구방도를 토의하는 당원협의회에서 이쯤한 난관에 주저하면 우리가 손을 들어 채택한 당결정이 빈말로 되고만다는 최명석동무의 절절한 목소리는 당원들의 가슴을 세차게 두드렸다.
그때부터 제일 힘든 모퉁이를 맡아나선 그는 앞장에서 중대원들을 이끌어 며칠만에 위험개소들을 제거하고 끝내 그달 석탄생산계획을 126%로 넘쳐 수행하였다.
이렇듯 석탄 한kg이라도 귀중한 조국의 재부로 여기였기에 그는 사람들이 더이상 채굴이 불가능하다던 막장도 스스로 맡아 나라의 석탄산을 높이 쌓았다.
당결정은 욕망이나 뚝심으로 관철되는것이 아니다.이것은 최명석동무가 늘 중대원들에게 강조하는 말이다.중대가 지난 수십년간 석탄생산계획수행에서 늘 앞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혁신할수 있은것은 자신부터 실천적모범을 보이고 중대원들모두가 따라서도록 요구성을 높인 최명석동무의 노력을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그가 기술기능을 높이기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가 하는것은 지난 시기 자체로 석탄공업부문의 많은 기술도서들을 독파하고 수십건의 발명과 창의고안을 하여 실천에 도입한 사실을 놓고도 잘 알수 있다.
그는 시짓기를 좋아한다.사람들이 취미가 남다르다고 말할 때면 그는 그저 탄부들을 제일로 아껴주고 내세워주는 당에 대한 고마움과 일터와 동지들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그대로 글로 옮기고싶었을뿐이라고 말하군 한다.이 소박한 말을 통해서도 오직 당만을 믿고 따르며 자립경제발전의 척후전선을 지켜가는 최명석동무의 순결한 마음을 엿보게 된다.당에서는 최명석동무의 참된 삶을 귀중히 여겨 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높이 내세워주었다.
당이 바란다면 가장 힘든 모퉁이, 제일 어려운 곳에 스스로 자신을 세우고 서슴없이 몸을 내댈줄 아는 미더운 애국자, 대오의 앞장에서 언제나 진격의 돌파구를 열어나가는 이런 성실한 당원들이 있어 석탄전선이 굳건하고 부흥번영할 조국의 래일은 더욱 앞당겨지는것이 아닌가.
본사기자 주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