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3일 수요일  
로동신문
실화
량심의 선택

2024.9.24. 《로동신문》 4면


방안에는 정적이 깃들었지만 락랑구역 충성종합진료소 고려치료과 의사 김혜영은 쉬이 잠들지 못했다.치료일지를 펼치던 그의 눈길은 책상우에 놓여있는 도서들에 가멎었다.

《건강의 열쇠》, 《일생을 편안하게 하는 혈다스리기》,

그 도서들은 그가 환자치료를 하면서 틈틈이 집필한것들이다.그 책들이 출판되여나왔을 때 사람들은 크지 않은 진료소의 평범한 의사가 여러권의 도서를 집필한 사실을 두고 놀라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김혜영의 뇌리에는 그 도서를 집필하기까지의 사연들, 고려의학과 인연을 맺은 때로부터 오늘까지의 가지가지 추억들이 되살아났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과 인민의 부름앞에 말로써 대답할것이 아니라 자기 한몸을 내대고 실천으로 대답하는것이 애국자의 자세입니다.》

자기식의 독특한 고려치료법과 사심없는 진정으로 하여 김혜영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있다.그에게서 치료를 받은 사람들은 그가 고려의사의 기질을 타고났다고들 하지만 그것은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사실 김혜영은 의학전문학교(당시)시절에 현대의학을 배웠고 의사가 된 후에는 환자치료에서 일정한 성과도 거두었다.

그러던 그가 돌연 고려의사로 방향전환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두 딸의 어머니가 된 후 그의 몸에는 무서운 병마가 덮쳐들었다.환자치료는 고사하고 쌀함박마저 들기 어려워져 침상에 매인 몸이 된 그에게 현대의학은 사형선고를 내린것이나 다름없었다.그때 누군가가 고려치료를 받아보라고 하였다.김혜영은 고개를 저었다.

《현대의학으로도 어쩔수 없는 병이 약초 몇뿌리로 낫겠나요.》

《그래도 혹시 알겠나요.기적이 일어날지.…》

정말 기적이 일어났다.약초를 달여먹고 뜸을 놓은지 수십일만에 온몸이 팅팅 부었던것이 내리기 시작했고 얼마후에는 조금씩 움직일수 있게 되였던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새로운 눈으로 고려의학을 대하기 시작했다.그는 선조들이 남긴 귀중한 고려의학서적들을 읽으면서 이제라도 고려의학의 세계에 뛰여들고싶은 충동을 금할수 없었다.그러나 쉽게 결심을 내릴수는 없었다.

사람은 살아가는 과정에 가끔 이런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무엇을 택하는가에 따라 인생길도, 그 종착점도 달라진다.

현대의학이냐, 고려의학이냐? 김혜영은 이런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였다.

하나가 이제 몇발자욱만 내짚으면 현대의학분야에서 손꼽히는 명의사가 되려는 소원을 성취할수 있는 길이였다면 다른 하나는 거의나 생소하고 고생스럽기도 하거니와 또 성공하겠는지, 실패하겠는지 기약할수 없는 길이였다.

그가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있을 때 인민군대 군의부문에서 일하고있던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요즘 현대의학과 함께 고려의학을 병행하여 발전시켜나갈데 대한 당의 뜻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구나.내가 조금만 젊었다면 지금이라도 고려의학을 배우고싶다.》

며칠후 아버지는 김혜영에게 여러권의 도서를 가져다주었다.김혜영은 읽고 또 읽었다.고려의학발전에 깃들어있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의 력사를, 우리 전통의학의 우월성과 생활력에 대한 사실자료들을…

(꼭 유능한 고려의사가 되여 우리 나라 사회주의보건제도를 더욱 빛내여가리라.)

이것은 고려의학의 길에 새로 들어서며 김혜영이 자기의 량심앞에 다진 마음속결의였다.

풍부한 고려의학지식과 기술을 익히기 위해 기울이는 그의 노력은 정말이지 눈물겨웠다.아직은 건강이 허락치 않아 일터에 설수 없었던 그에게 있어서 유일한 치료대상은 바로 자기자신이였다.친척들이 구해준 약초를 달여먹으며 효능을 알아보았고 자기 몸에 뜸과 부항을 놓고 침을 꽂아보면서 혈에 대하여 파악했다.남편과 딸들도 때로 그의 치료대상이 되였다.

피타게 노력한 보람은 컸다.후날 그는 락랑구역 충성종합진료소 고려치료과에서 일하게 되였는데 수많은 종류의 약초들에 정통하고 남다른 고려치료기술을 소유한것으로 하여 사람들속에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진료소의사생활이 쉽지는 않았다.담당구역 주민들의 건강을 정상적으로 돌보면서 한켠으로는 각이한 체질과 질병에 따르는 효과적인 치료방법을 탐구하자니 힘에 부칠 때가 많았다.그러나 그에게서 치료를 받고는 고맙다고, 우리 고려의학이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그는 새힘이 솟는것을 느끼군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어린 환자를 마주하게 되였다.여느때와 같이 치료를 하려는데 환자가 약이 쓰다면서 안먹겠다고 하는것이였다.환자의 어머니가 애를 달래며 하는 말은 뜻밖이였다.

《고려약이라는게 원래 그렇게 쓰단다.그래서 더 몸에 좋은거구.》

그들이 돌아간 후 김혜영은 환자가 남긴 약을 입에 대보았다.그날은 왜서인지 더욱 쓰겁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그에게는 새로운 일과가 생겨났다.고려약을 누구나 쉽게 그리고 달게 먹을수 있게 만들기 위한 연구에 달라붙었던것이다.

길을 가면서도 약초를 씹어보면서 매 약초마다 쓰고 달고 시고 맵고 짠맛이 어떤 차례로 느껴지는가, 그 맛을 내는것이 어떤 성분이며 어떤 약효를 나타내는가를 터득해나가는 그 모습은 마치 고려의학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던 시절을 방불케 했다.

끝끝내 그는 천연건강제품인 보양단졸임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였다.누구나, 어디서나 쉽게 복용할수 있는 그 단졸임은 효능도 높아 특허로 등록되였다.그는 보양단졸임으로 난치성질병을 앓고있는 환자들을 치료해주었으며 전쟁로병들과 검덕지구 살림집건설에 동원된 군인건설자들에게도 보내주어 우리 당에 기쁨을 드리였다.

그에게서 치료를 받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군 했다.선생님이 겪은 남다른 인생체험과 치료경험을 글로 쓰면 아마 책 몇권은 잘될것이라고.그때마다 그는 책을 쓰는것이 마치 자기 이름을 내는 일같이 여겨져 두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인차 생각을 달리하였다.자기의 고려의학지식과 기술, 경험을 글로 남긴다면 우리 인민의 생명과 건강을 가장 귀중히 여기는 어머니당의 숭고한 뜻을 받드는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하는것으로 되지 않겠는가 하는 량심의 물음이 가슴을 쳤던것이다.

이렇게 되여 세상에 나온것이 도서 《건강의 열쇠》였다.그는 더욱 분발하여 《일생을 편안하게 하는 혈다스리기》를 집필하여 내놓았다.그리고 약학연구를 보다 줄기차게 내밀어 발명증서와 석사학위를 수여받았다.

* *

온밤 고요하던 방안에 새들의 지저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그날도 밤을 꼬박 샌 김혜영은 또다시 출근길에 올랐다.

낯익은 얼굴들이 보이였다.자기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고나서 《우리 고려의사선생님이예요.》라고 소곤거리는 말소리도 들려왔다.

우리 고려의사선생님, 그 부름에는 당의 뜻을 받드는 길에 스스로 자신을 세우고 변함없이 한길을 걸어온 한 참된 의료일군에 대한 존경이 비껴있었다.

우리 고려의사, 그 부름을 조용히 뇌이며 출근길을 다그치는 김혜영의 앞에 눈부신 해빛이 쏟아져내렸다.

본사기자 김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