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9.26. 《로동신문》 5면
《사회주의사회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재능을 전면적으로 꽃피워나갈수 있게 하여야 합니다.》
원산시 중청동 30인민반에서 살면서 어느한 단위에서 로동자로 일하고있는 김성국동무에게는 혁신자의 자랑과 함께 로동자미술가라는 또 하나의 자랑이 있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던 김성국동무는 사회주의교육제도의 혜택속에 마음껏 배우며 자기의 재능을 꽃피웠다.
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속도전청년돌격대에 입대하였다.평범한 가정의 자식인 자기의 재능의 싹도 찾아 키워주는 고마운 제도를 위해 마음껏 땀을 흘리고싶었고 들끓는 로동생활속에서 명화폭을 창작하고싶었던것이다.
돌격대지휘관들과 대원들 누구나 그가 자기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떠밀어주고 이끌어주었다.
돌격대생활을 마친 후에도 그는 로동과 생활을 진실하게 묘사한 수많은 작품들을 창작하였으며 전국적으로 진행된 청년들의 직관선동경기에도 참가하여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그 나날 그는 이처럼 고마운 제도를 온 세상에 소리높이 자랑하는 특색있는 공예작품을 내놓을 결심을 품게 되였다.어느날 조선미술가동맹의 한 일군이 그를 찾아왔다.
《새 공예작품을 구상하고있다는데 우리가 적극 돕겠습니다.》
이렇게 되여 그는 옥돌공예창작에 뛰여들게 되였다.미술가동맹은 물론 사업소의 일군들도 그의 창작활동을 적극 도와나섰다.
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73돐경축 제2차 전국조각, 공예축전에 자기가 처음으로 만든 옥돌공예 《풍년든 온실남새》를 내놓게 되였으며 그것은 국가소장품으로 등록되여 조선미술박물관에 전시되였다.
전문미술가도 아닌 평범한 로동자가 훌륭한 작품을 창작한데 대해 사람들모두가 아낌없는 찬사를 보낼 때마다 김성국동무는 이렇게 말하군 한다.
《인민이 모든것의 주인으로 된 우리 나라가 아니라면 평범한 로동자에 불과한 제가 어떻게 그런 작품을 창작할수 있겠습니까.》
60나이를 바라보는 오늘도 조선미술가동맹의 한 성원이 되여 창작의 나래를 활짝 펼쳐가고있는 한 로동자미술가의 생활을 통하여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제도에 안겨사는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슴뜨겁게 느낄수 있다.
본사기자 박춘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