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10월 2일 수요일  
로동신문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서만 꽃펴날수 있다
송화군의 어린이가 수많은 사람들의 진정속에 처음으로 대지를 활보하게 이야기

2024.10.2. 《로동신문》 4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서로 돕고 이끌며 단합된 힘으로 전진하는 우리 사회의 본태와 대풍모를 적극 살려나가야 합니다.》

몇년전 어느날 송화군 원당농장 농장원 김경숙동무의 가슴속에는 그늘이 짙게 비끼였다.갓 태여난 둘째 경일이가 전혀 걸을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던것이다.

자기 가정에 뜻밖에 닥친 불행앞에 김경숙동무는 눈앞이 캄캄하였다.그리고 어머니로서 갓난 자식앞에 죄스러운 생각까지 들어 방긋방긋 웃기 시작한 아들애를 마주보기조차 서슴어졌다.

그래도 한가닥 기대를 안고 그는 경일이의 다리를 고쳐주려고 많은 곳을 찾아다니였다.그 나날 태여난지 일곱달 잡혀 어느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보았지만 크게 차도가 없는것을 보고 김경숙동무는 실망하였다.

그때부터 김경숙동무는 눈물이 헤퍼졌다.자식의 연약한 두다리를 붙들고 남몰래 울고 또 울었고 경일이와 같은또래의 아이들이 하나둘 첫걸음마를 떼기 시작할 때면 슬그머니 머리를 돌리군 했다.

언제인가 경일이가 《엄마, 난 왜 걷지 못하나?》 하고 눈물이 글썽하여 물었을 때 김경숙동무는 어린 자식의 불행으로 하여 가슴이 찢겨지는것만 같았다.

김경숙동무의 가슴속에는 이런 물음이 자꾸만 고패쳤다.

(아, 우리 경일이는 영원히 걸음마를 뗄수 없단 말인가!)

이렇게 4살이 넘도록 걷지 못하는 경일이가 지난해 어느날 집마당에 앉아 혼자 놀고있을 때였다.그때 그 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보는 눈길이 있었다.

사회정치활동을 위해 송화군 원당농장에 나온 평양연극영화대학 학생 문류성동무였다.

그가 다가가 왜 혼자 노는가고 묻자 경일이는 《난 걷지 못해요.그래서 이렇게 집마당에서 혼자 놀아요.》라고 했다.문류성동무는 그 말에 차마 걸음을 뗄수가 없었다.하여 그는 경일이를 닁큼 안고 그의 집으로 들어가 사연을 묻게 되였다.

아들이 걷지 못하게 된 사연에 대해 눈물속에 이야기하는 김경숙동무에게 그는 너무 걱정말라고,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을 높이 모시고 사는 이 땅에서는 단 한명의 어린이도 불행해질수 없다고 절절히 이야기했다.그러면서 꼭 경일이의 다리를 고쳐주자고 이야기했다.

다음날부터 문류성동무의 가슴속에 깃든 경일이에 대한 사랑은 평양연극영화대학 영화예술학부 영화연출학과 학생들의 사랑으로 더욱 승화되였다.

얼마후 대학생들은 평양으로 떠나갔다.

김경숙동무는 대학생아저씨들이 갔다며 시무룩해있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자기 마음도 허전해짐을 어쩔수 없었다.잠시 잊어버릴듯싶었던 아들애의 불행이 또다시 가슴을 파고들었던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알수 없었다.평양으로 돌아간 대학생들이 경일이를 위해 어떤 날과 날을 보내고있는가를.

대학생들은 경일이의 다리를 고칠수 있는 의사를 찾던 끝에 의술이 높기로 소문난 평양의학대학병원 사지정형외과 과장 김건영동무를 찾아갔다.

그때 김건영동무는 문류성학생이 가져온 경일이의 다리가 찍혀진 사진을 보고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치료경험이 풍부한 그였지만 그와 같은 상태는 처음 보았던것이다.그러나 한 어린 생명을 위해 의학적한계를 뛰여넘을 용단으로 그는 머리를 힘있게 끄덕였다.

어느날 김경숙동무에게 대학생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평양의 의사선생님들이 경일이의 다리를 치료할수 있다고 했다는 기쁜 전화였다.

이렇게 되여 지난해 8월 평양의학대학병원에서는 경일이의 첫 수술이 진행되게 되였다.

수술은 힘겨웠다.어린아이다보니 수술시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혈관의 손상이나 경련으로 인한 피흐름장애로 하여 발바닥과 그 주위근육들, 연부조직이 괴사될수 있는 위험성이 너무 높았던것이다.의료일군들은 단 한번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긴장감으로 하여 온몸을 땀으로 화락하니 적시였다.

이렇듯 긴장한 수술의 한초한초가 흐르던 그때 병원으로 달려온 문류성동무를 비롯한 영화연출학과 학생들은 피면 피, 뼈면 뼈라도 경일이에게 필요되는것이라면 서슴없이 바치겠다고 절절히 말했다.대학생들의 훌륭한 소행을 알게 된 입원환자들도 의료일군들을 찾아와 경일이를 위해 무엇이든 다 바치겠다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초조감속에 여러 시간이 흘러 수술은 성과적으로 진행되였다.

모두가 기적이라고 했지만 과장 김건영, 간호원 신국화동무를 비롯한 의료일군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경일이가 걷는데 조금이라도 장애가 있다면 당의 보건전사로서의 본분을 다했다고 떳떳이 말할수 없는것이다.

하여 의료일군들은 첫 수술의 긴장을 풀새도 없이 다음번에 진행될 수술을 위해 인체모형을 놓고 거듭 모의를 했고 과적인 협의회를 수십차례 진행하였다.

이런 준비끝에 다시 조직된 긴장한 3차례의 수술과 거듭되는 회복치료의 나날이 흘렀다.

평양연극영화대학안의 많은 교직원들과 학생들도 경일이를 위해 자기들의 지성을 다하였다.

대학생들만이 아니였다.이름도 집주소도 직무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이 경일이가 대지를 마음껏 활보할 그날만을 고대하며 마음들을 합치고 또 합쳤다.

마침내 고마운 사람들의 뜨거운 정성속에 기적은 일어나고야말았다.

지난 5월 갓 걸음마를 아장아장 떼는 아기마냥 경일이가 태여나 처음으로 걸음마를 떼게 된것이다.

이날 경일이에게는 많은 신발이 생겼다.사지정형외과 의료일군들이 마련한 신발을 비롯하여 경일이가 걸음마를 뗀것을 축하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고르고골라서 사온 신발들이였다.

김경숙동무는 아들애의 발에 처음으로 신발을 신겨주며 눈물을 머금었다.아들애의 두손을 잡고 한걸음한걸음 첫걸음마를 떼여줄 때는 더는 참을수가 없어 《흑-》 하고 오열을 터뜨렸다.

그처럼 걸음마를 떼는 아들애의 모습을 보고싶었던 간절한 소원, 국제아동절이나 운동회때면 다른 아이들을 부러웁게 바라보기만 하던 아들애를 두고 애타던 마음, 응어리졌던 그 심정이 한순간에 다 풀리는 감격의 순간인것이다.

(경일아, 자식에게 생을 주고 첫걸음마를 떼여주는 품은 엄마의 품이라지만 너의 첫걸음마를 떼여준 품은 정녕 우리 사회주의제도의 고마운 품이구나.)

얼마후 김경숙동무는 평양을 떠나면서 아들애의 손목을 잡고 만수대언덕에 올라 고마움의 큰절을 삼가 올리였다.

(이 제도를 위해 나라의 쌀독을 책임진 농사군으로서의 본분을 다하겠습니다.그리고 경일이를 꼭 우리 제도를 총대로 굳건히 지키는 병사로 키우겠습니다.)

* *

이 감동적인 소식에 접하고 우리가 평양연극영화대학 학생들과 평양의학대학병원 사지정형외과 의료일군들을 만났을 때 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었다.

《응당 할바를 했을뿐입니다.우리 사회에서야 너무도 평범한 일이 아닙니까.》

그렇다.한 어린이의 첫걸음마를 떼여준 그 정성과 사랑, 그것은 정녕 어머니당의 품속에서 걸음마를 떼며 조국을 알고 혁명을 알며 성장한 우리 인민만이 발휘할수 있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치 않은 고상한 사상정신적풍모의 높은 발현이 아니겠는가.

글 및 사진 본사기자 박주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