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8일 금요일  
로동신문
조국이 값높은 칭호로 내세워준 사람들

2024.10.16. 《로동신문》 4면


공훈과학자 리일훈동무

 

의학연구원 종양연구소 실장 공훈과학자 박사 리일훈동무는 인민들의 건강증진을 위해 수십년세월 한직종에서 성실하게 일해왔다.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그가 연구소에 배치된것은 지금으로부터 30여년전이였다.처음 연구과제를 받았을 때 그의 가슴은 하루빨리 효능높은 치료약을 만들어 당의 은덕에 보답할 일념으로 세차게 높뛰였다.

하지만 청춘의 욕망만으로는 생소한 탐구의 길을 끝까지 이어갈수 없었다.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초행길을 헤쳐야 하는 과학연구사업이 결코 헐한 일이 아님을 그는 거듭되는 실패속에서 날이 갈수록 절감했던것이다.

마음이 나약해질 때마다 리일훈동무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여난 자기를 품들여 키워주고 내세워준 당과 국가의 크나큰 사랑과 은정을 되새기며, 인민의 건강증진을 책임진 과학자라는 사명감을 자각하며 더욱 분발하여 일떠서 고심분투하였다.사색과 탐구의 날과 달이 살같이 흘러가는 속에 그와 연구집단은 그렇게도 고대하던 새로운 왁찐을 만드는데 끝내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 만족해하지 않았다.그처럼 바라던 성공의 언덕이였지만 그는 그것을 출발점으로 하여 또다시 먼길을 가기로 결심하였다.

우리 당에서 그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인민들의 건강증진을 확실하게 담보하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스스로 자신을 채찍질하며 그는 연구성과를 더 공고히 다져나가기 위해 자신의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바쳐나갔다.

한해두해 해가 바뀌는 속에 그는 끝내 사람들의 병치료에 효과적으로 이바지할수 있는 훌륭한 연구성과를 이룩하고야말았다.그 나날 그는 첨단기술제품등록증서를 수여받고 8명의 박사, 석사들을 키워냈으며 2023년 8월에는 공훈과학자의 값높은 영예를 지니게 되였다.

리일훈동무는 오늘도 인민들의 건강증진에 적극 이바지할수 있는 값진 연구성과를 더 많이 내놓기 위한 사색과 탐구의 나날을 줄기차게 이어가고있다.

본사기자

 

공훈건설자 김주영동무

 

평양곡산공장 부원 김주영동무의 가정에는 공장에 찾아오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찍은 영광의 기념사진이 정히 모셔져있다.기념사진을 우러를 때마다 그는 무한한 행복감에 잠겨 자기의 한생을 긍지스럽게 돌이켜보군 한다.

어느한 단과대학(당시)을 졸업하고 공장에 첫 자욱을 내디딘 수십년전 어느날 그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령도업적이 뜨겁게 깃들어있는 공장을 돌아보며 영광의 일터를 더욱 빛내이는 길에 자기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가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결심하였다.

그 맹세를 지켜 그는 하루하루를 불같이 살았다.

기술서적들과 참고도서에 파묻혀 새날을 맞이한적도 수없이 많았고 선 하나, 점 하나를 두고 오랜 시간 고심한 나날도 헤아릴수 없었다.

그렇게 그는 온넋을 바쳐 하나하나의 설계도면을 완성하면서 늘 건설현장에서 살다싶이 하였다.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고 지칠 때도 적지 않았지만 그는 당의 령도업적을 길이 빛내이는데 이바지하려는 불같은 지향으로 그 모든 고비들을 완강하게 이겨내며 혁명사적교양실과 연혁소개실, 현대적인 생산공정들을 일떠세우는데 자기의 힘과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바쳐나갔다.수백건을 헤아리는 수많은 설계를 완성하는 나날에 그는 위대한 장군님의 표창장을 수여받고 여러 대회에도 참가하는 남다른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그렇듯 오랜 세월 애국의 한길만을 걸어온 그를 우리 당과 국가에서는 또다시 공훈건설자로 값높이 내세워주었다.

그는 오늘도 절세위인들의 령도의 자욱이 뜨겁게 새겨진 일터에서 일하는 크나큰 영예와 긍지를 안고 맡은 일에 전심전력하고있다.

본사기자

 

공훈뜨락또르운전수 김봉남동무

 

지난 뜻깊은 2월의 명절을 맞으며 송림시 청운농장 김봉남동무는 공훈뜨락또르운전수칭호를 수여받았다.그 소식에 접한 농장마을사람들은 지난 수십년간 누가 보건말건 설비관리, 기술관리를 주인답게 하면서 고향땅에 순결한 량심을 바쳐온 그를 열렬히 축하해주었다.

자기 기대를 눈동자와 같이 애호관리하는 주인다운 일본새와 높은 책임성 그리고 무한한 헌신성을 지닌 사람, 이것이 김봉남동무에 대한 농장일군들과 농장원들의 한결같은 평가이다.

처음 뜨락또르운전수가 되였을 때 그의 가슴은 당의 믿음에 충성으로 보답할 열의로 세차게 높뛰였다.

하지만 욕망 하나만으로는 맡은 일을 제대로 할수 없었다.뜨락또르에 정통하고 만가동, 만부하의 동음을 높이 울릴 때 진짜배기농촌기계화초병이 될수 있다는것을 자각한 그는 오랜 운전수들에게서 하루빨리 경험과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이악하게 노력하면서 밤에는 밤대로 기술서적에 파묻혀 시간가는줄 모르고 학습하였다.하여 몇달만에 그 어떤 고장원인도 제때에 찾아내여 자체로 수리할수 있는 기술기능을 소유한 그는 뜨락또르를 자기 몸의 한 부분처럼 여기고 애지중지 관리하였다.

뜨락또르의 부속품을 자체로 해결하는것만으로는 성차지 않아 실리가 있게 개조하여 많은 연유를 절약하였으며 보습날을 새롭게 제작하여 작업능률을 훨씬 높이는데 이바지하였다.

그 나날 10여명의 운전수들을 키운 그는 이 나라의 농장벌들에서 늘 볼수 있는 평범한 농촌기계화초병인 자신을 그처럼 값높이 내세워준 당과 국가의 크나큰 은덕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기 위해 지금도 올해 농사결속을 위한 투쟁의 앞장에서 헌신의 땀을 아낌없이 바쳐가고있다.

본사기자 김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