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3일 월요일  
로동신문
세대가 바뀌고 혁명이 전진할수록 더욱 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을 지니자
오늘도 복수를 부르는 소년렬사

2024.10.19. 《로동신문》 6면


고원군계급교양관에는 나어린 소년렬사의 투쟁자료가 전시되여있다.

그가 바로 고원군인민유격대에서 정찰임무를 맡아 수행한 서강렴소년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서 반제계급교양의 도수를 높여 그들이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의 침략적, 략탈적본성에 대하여 똑똑히 알도록 하여야 합니다.》

서강렴소년이 고원군인민유격대에 입대한것은 1950년 10월중순이였다.

인민유격대에 입대한 나어린 그의 가슴속에서는 학교를 불사르고 마을사람들을 무참히 학살한 원쑤들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이 불길처럼 이글거렸다.

소년정찰병이 된 그는 지휘부에서 받은 임무를 언제나 훌륭히 수행하였으며 그가 알아낸 정찰자료들은 고원군인민유격대가 적들과의 싸움에서 매번 승리를 거둘수 있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뿐만아니라 적통치기관들과 곳곳에 《미국놈들에게 속지 말라》, 《인민군대의 진격은 멀지 않았다》 등의 삐라와 《미국놈의 주구가 되면 이런 운명을 면치 못한다》 등의 격문을 돌려 적들을 전률케 하고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는데도 적극 기여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임무수행을 위해 련락지점으로 향하였다.

하지만 그곳에는 적들이 변절자의 밀고를 받고 미리 매복하고있었다.

그를 체포한 원쑤들은 나어린 그를 쉽게 굴복시킬것이라고 어리석게 생각하고 달려들었다.

유격대에 들어가 어떤 일을 했는가.산에서 내려올 때 무슨 임무를 받았는가.…

하지만 적들의 끈질긴 심문과 온갖 악행에도 서강렴소년은 굴함이 없었다.

그의 입에서 울려나온것은 《모른다.》는 오직 한마디뿐이였다.

어느날 깊은 밤 철창으로 스며드는 별빛을 바라보는 그의 생각은 깊었다.

나라없던 그 세월 소작농의 둘째아들로 태여난 그는 해방이 되여서야 그처럼 바라던 배움의 꿈을 이룰수 있었다.

이런 그였기에 전쟁의 엄혹한 시련이 닥쳐오자 학교와 군사동원부에 제일먼저 찾아가 인민군대탄원을 열렬히 청원하였고 나이가 어려 입대하지 못하게 되자 전선원호사업에 그 누구보다 앞장섰다.…

악착한 고문은 계속되였다.적들은 매일같이 짐승처럼 달려들었다.차디찬 독감방에 여러 시간씩 앉혀놓기도 하였고 바줄로 몸을 묶어 매달아놓고 몽둥이로 사정없이 때리기도 하였다.

인민군대의 재진격으로 고원군에서 쫓겨나게 된 적들은 그를 사형장으로 끌어냈다.

소년의 가슴속에서는 증오의 피가 끓어번졌다.

《네놈들에게 오늘은 내가 죽지만 너희들이 망할 날이 멀지 않았다.개놈들에게 죽음을 주라!》

쩌렁쩌렁한 웨침소리는 고요한 공기를 세차게 흔들었다.

김일성장군 만세!》

나어린 소년은 이렇게 장렬한 최후를 마치였다.

오늘도 고원군계급교양관을 찾는 사람들은 서강렴을 비롯한 인민유격대원들의 불굴의 신념과 의지를 되새기며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을 천백배로 복수할 굳은 맹세를 가다듬고있다.

고영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