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0일 일요일  
로동신문
우리 혁명의 세대 선전일군들처럼 사상사업을 하자

2024.10.20. 《로동신문》 3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혁명에서는 사상사업이 언제나 첫째가는 중대사로 나서고 혁명의 개척기에 벌써 사상사업의 위대한 전통이 마련되였습니다.》

지금 당결정관철을 위한 투쟁이 힘있게 벌어지고있는 그 어느 일터에 가보아도 항일유격대식으로 대중속에 들어가 화선식으로 정치사업을 벌리는 참된 당일군들의 모습을 볼수 있다.

사람들의 사상의 힘, 대중의 정신력만 불러일으키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것은 간고했던 항일혁명투쟁사가 남긴 력사의 진리이다.

오늘도 삼지연혁명전적지에 포연서린 군복차림으로 거연하게 서있는 《진격의 나팔수》군상을 경건히 바라보느라면 항일전의 그 나날 원쑤격멸에로 전체 조선인민을 불러일으키던 투사들의 모습이 우렷이 떠오른다.

돌이켜보면 적수공권으로 시작한 혁명의 초행길을 헤친 항일혁명투사들에게 있어서 가장 강위력한 무기는 다름아닌 사상이였다.혁명의 1세들은 사상의 힘으로 동지도 얻고 무기도 해결하였으며 그 힘으로 제국주의강적도 물리쳤다.

위대한 수령님의 직접적인 발기와 지도밑에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창간된 조국광복회기관지 《3.1월간》과 《서광》, 《종소리》, 《철혈》…

우리 인민의 가슴마다에 투쟁의 불씨를 안겨주고 광범한 대중을 혁명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킨 강위력한 무기였던 그 출판물들 하나하나에는 리동백, 김영국, 림춘추, 최경화, 강위룡동지를 비롯한 우리 혁명의 첫 세대 선전일군들의 진하디진한 피와 땀이 깊이 슴배여있다.

그들은 전투에서도 한다하는 싸움군들이였다.하지만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으로 대원들과 광범한 군중을 무장시키기 위한 사업에서는 누구도 따를수 없는 정치사업의 능수들이였고 거기에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친 참된 선전일군들이였다.

종이 한장, 등사잉크 한방울을 얻자고 해도 피를 흘리고 목숨을 내대야 했던 그 시기 천고의 밀림속에서 하나의 독자적인 기관지를 창간할수 있은것은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서라도 광범한 군중을 위대한 수령님을 따르는 길에 굳게 묶어세우려는 항일의 선전일군들의 불굴의 신념과 의지를 떠나 생각할수 없다.

그들의 가슴속에는 자기들이 쓰는 한자한자의 글과 한장한장의 출판물이 그대로 원쑤를 무찌르는 총탄이 되고 폭탄이 된다는 일념이 꽉 차있었다.하기에 항일혁명투사 김택동지를 비롯한 출판소성원들은 결사의 각오를 안고 유격대는 물론 여러 지역의 혁명조직들과 광범한 군중을 대상으로 하여 어려운 속에서도 수많은 출판물들을 찍어낼수 있었다.

결코 조건이 좋아서가 아니였다.늘 모자라는 인쇄자재를 구하는 일은 말그대로 피어린 투쟁이였다.군중이 혁명적으로 각성되여가는것을 제일 무서워한 적들은 유격대는 물론 혁명조직들에 등사원지는 고사하고 종이 한장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눈을 밝히고있었던것이다.

당시에는 등사기가 유일한 출판설비인것으로 하여 등사원지가 떨어지면 출판물을 찍어낼수가 없었다.하지만 출판소성원들은 등사원지가 떨어졌다고 해서 자기들이 맡은 중요한 혁명사업을 중도에서 포기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고무판에 글자를 새겨 찍어보자는 의견이 나왔으나 그것도 쉽게 해결할수는 없는것이였다.토의끝에 그들은 고무판대신에 나무판을 리용할것을 결심하고 달라붙었다.

지금 우리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진 밀림속의 목판인쇄는 바로 그렇게 시작된것이였다.나무판에 글자를 새겨서라도 혁명적인 출판물을 만들어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어야 한다는 불같은 자각이 그들로 하여금 평시에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수 없는 결심을 내리게 하였던것이다.

자체로 만든 도장칼을 가지고 자그마한 나무판에 보통 100~200자 지어 300자까지의 글을 새긴다는것은 헐한것이 아니였다.게다가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면서 앉은자리에서 오래동안 글자를 새기다나니 다리가 점점 휘여드는 사람도 있었다.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쉬는 시간만큼 출판물이 광범한 군중속에 늦게 들어가게 되고 혁명투쟁에 그만큼 지장을 주게 된다고 생각하며 누구 하나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 혁명의 첫 세대 선전일군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였다.

한번은 항일혁명투사 류경희동지가 며칠동안 맨 풀로만 끼니를 에우는 출판소성원들을 보다 못해 비상용으로 남겨두었던 한줌가량의 밀가루를 꺼내놓은적이 있었다.

그때에도 그들은 그 귀중한 식량마저 풀을 쑤어 소책자에 표지를 씌웠다.설사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광범한 군중에게 혁명적량식만은 기어이 안겨주어야 한다는것이 선렬들의 신조였던것이다.

그뿐이 아니다.투사들은 등사잉크가 떨어지면 봇나무껍질을 태워서라도 자체로 만들었고 등사로라가 없으면 갖풀에 송진을 섞어서 만들기도 하였다.자기들이 진행하는 사업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기에 투사들은 등사기나 출판기자재를 구하기 위해 지어는 귀중한 목숨도 서슴없이 바치였다.

그렇듯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혁명로선과 방침들을 해설선전하는 영예로운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기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싸운 항일의 선전일군들의 불굴의 정신은 그대로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의 가슴속에 투쟁의 불길을 지펴주는 불씨가 되였고 겹쌓이는 난관을 헤치면서도 진할줄 모르는 힘을 낳게 한 원천이였다.

밀림속의 출판소들에서 그렇게 만들어낸 혁명적출판물들은 그대로 사람들에게 혁명적량식을 주는 힘있는 정치적무기였다.《조국광복회10대강령》《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에 명시된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과 로선을 해설선전하는 출판물들은 각계각층 군중을 반일의 기치아래 하나로 묶어세우는데서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그 귀중한 혁명적량식이 있었기에 글 한자 제대로 모르던 투사들이 위대한 수령님께 무한히 충직한 혁명가로 성장할수 있었고 갈길 몰라 헤매이던 사람들도 위대한 수령님의 두리에 굳게 뭉쳐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안아오는데 이바지할수 있었다.

그때로부터 세월은 많이도 흘러왔다.하지만 오늘도 변하지 않은것은 바로 우리 혁명가들에게 있어서 사상사업은 언제나 첫째가는 중대사이라는것이다.

사상에 의하여 혁명의 명맥이 지켜지고 사상의 힘으로 혁명이 전진한다는것을 항일의 선전일군들은 자기의 더운 피로 조선혁명사에 뚜렷이 새겨놓았다.

오늘 당선전일군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아야 한다.항일의 선렬들처럼 대중에게 당의 사상과 로선을 깊이 심어주고 당정책관철에로 대중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투신하고있는가를.

혁명열, 투쟁열은 선전일군에게 있어서 생명과 같다.그 어떤 직위와 공명, 안일도 추구하지 않고 혁명열, 투쟁열에 넘쳐 대중을 당정책관철에로 불러일으키기 위해 한생을 깡그리 다 바치려는 고결한 인생관은 당선전일군의 중요한 풍모이다.

당선전일군들은 자기들이 조국의 운명, 사회주의의 운명, 인민의 운명을 걸머진 사상전의 제일기수들이라는것을 명심하고 사상사업에 사활을 걸고 나서야 한다.

오직 혁명밖에 모르고 일밖에 모르는 선전일군만이 언제나 당중앙과 숨결을 함께 할수 있으며 더 많은 일감을 맡아안고 늘 바쁘게 일할수 있다.

오늘 우리 혁명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혁명사상이 안고있는 진리의 힘을 남김없이 발양시키기 위한 사상전이라고 할수 있다.사회주의강국건설에서 우리가 믿을것은 결코 그 어떤 외부의 힘이나 지원이 아니라 우리 인민의 사상의 힘, 대중의 정신력이다.

어느 부문, 어느 단위를 막론하고 모든 당선전일군들이 사상사업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우리 혁명의 첫 세대 선전일군들이였던 항일혁명투사들처럼 사상사업을 화선식으로 박력있게 벌려나간다면 자기 부문, 자기 단위를 당이 바라는 쇠소리나는 집단으로 만들수 있으며 당결정관철을 위한 사업에서 보다 큰 전진을 이룩하게 될것이다.

안정철